궁극의 즐거움은 몰입에서 나옵니다.
즐거움이란 몰입하는 동안 느끼는 감정이다.
무엇인가에 몰입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몰입이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쾌감을 주는지 안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몰입을 할 때, 시공간이 사라지면서 마치 새로운 세상에 들어와 있는 듯 한 느낌을 경험한다. 마치 내가 하고 있는 것과 그것을 하고 있는 의식만 남고 내 몸과 이 세상이 사라지는 느낌, 그것이 바로 즐거움이다. 그래서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은 삶을 즐거움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다.
몰입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래서 몰입이 주는 즐거움에도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소비할 때의 몰입이 주는 즐거움 : 영화를 감상하고 유튜브를 보고 책을 읽고 쇼핑을 하고 음식을 먹는 등의 소비를 할 때의 몰입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이때 느끼는 즐거움은 오래 지속되기 힘들고, 소비할 당시에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몰입일수록 즐거움의 지속시간이 짧아진다.
둘째, 생산할 때의 몰입이 주는 즐거움 : 음악을 만들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요리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등 생산을 할 때의 몰입이 있다. 몰입에 대한 결과에 집착하지 않을 때 진정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과정 자체를 즐길 때에만 훌륭한 결과를 낼 수 있다. 소비할 때의 몰입도 즐거움을 주지만 진짜 궁극적 오래가는 즐거움은 '나'를 표현하는 생산적인 과정에서 느끼는 몰입에서 경험할 수 있다.
생산하는 과정에서의 몰입은 삶을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하고 성장시킨다. 말하자면 그릇이 커지는 것이다.
생산의 과정에서 몰입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나'와 '세상'이 둘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내가 우주이고, 우주가 나임을 깨닫는 순간, 모든 '에고'의 문제가 사라지고 궁극의 즐거움만 남는다.
삶이 즐겁지 않은 것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삶이 즐겁지 않은 것은, 자신과 세상이 합일되는 몰입의 경험을 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삶이 즐겁지 않은 것은, 어느 한 가지의 나를 확장시키는 생산활동에 몰입하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느라 방해받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음악을 만들면서 영혼이 해방되는 즐거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운동을 하면서 에너지가 발산되는 즐거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요리를 하면서 삶이 더 풍부해지는 즐거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만나서 교류하고 이야기하면서 연결되는 즐거움을 느낀다.
삶을 즐거움으로 채우는 방법은 , 자신이 어떤 순간에 몰입을 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하는 것이다.
변화의 시작이자 핵심은 자신이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그리고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 -예를 들어 스마트폰 등- 을 멀리 하며 자신을 진정 즐겁게 하는 것에 몰입하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릴 때 몰입을 경험하고는 했다. 초등학생 때 즐거운 생활(그림 그리기(미술), 노래 부르기(음악), 운동하기(체육)등의 여러 가지 예체능과목을 한 데 묶어놓은 과목)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과목 이름이 '즐거운 생활'인 만큼 나의 가장 최애 교과목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이 즐거운 생활에 있는 과제 중 그림 그리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그림을 그릴 땐, 정말 엄청난 집중력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정성을 들여서 그리곤 했다. 그림을 그리며 즐기는 몰입의 순간은 중학교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지금도 딸이나 아내와 그림을 그리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몰입을 경험했던 순간들을 적어보자. 그리고 그 몰입의 경험을 최대한 많이 느낄 수 있도록 해보자.
내가 몰입의 즐거움을 느꼈던 순간들.
고등학교 때는 수학 문제를 풀 때 몰입을 경험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때 몰입을 경험한다.
흥미로운 새로운 것을 알게될 때 몰입을 경험한다.
좋은 책을 읽을 때 몰입을 경험한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내 생각을 글로 옮길 때 몰입을 경험한다.
딸과 그림을 같이 그릴 때 몰입을 경험한다.
다른 사람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때 몰입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