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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킴 Feb 14. 2021

신랑이 세뱃돈을 줬다.

__ 5만 원으로 뭘 하지? :)


고마워. 많은 것들이.
모든 걱정이 잘 풀려 갈 거야.
사랑해. 새해 복 많이 받어요.




아침에 일어나니 포스트잇에 짧은 메모와 함께 5만 원 신권 한 장을 놓고 간 쿠리. 크하하. 우선 귀엽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서투른 글씨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따뜻하다. 


주중에 하루만 쉬고 하루 12시간 뼈 빠지게 일하는 쿠리를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무겁다. 그림만 그릴 줄 아는 쿠리가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다가 회칼을 잡게 되었다. 일을 배워보라며 실장님이 쿠리를 시흥으로 데려간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요즘은 수요일에 쉬는데 쉬기 전날 밤에 시흥으로 쿠리를 데리러 간다. 야간 운전이 조금 힘들긴 해도 집에 오는 하루를 기다리고 있을 쿠리를 생각하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다. 이제 나도 일하게 되면 밤에 데리러 가는 게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웬만하면 하던 대로 하고 싶다. 1년만 채우고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으니 조금만 참으면 된다. 





쿠리가 회칼을 잡고 일하게 되다니.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어.





실장님이 쿠리에게 시흥으로 가자고 제안을 했을 때 우리는 함께 고민을 했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실장님에게 말했더니 다시 한번 설득을 했다. 어차피 일을 할 거라면 칼 쓰는 기술이 빨리 향상될 수 있다는 점과 쿠리를 좋아해 주는 실장님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하고 1년만 떨어져 지내기로 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지만 초보자에게는 칼 잡을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 좋은 기회다.


그렇지만 쿠리가 가던 날에 나는 엄청 울었다. 외국으로 나가는 것도 아닌데, 일주일에 한 번은 볼 수 있는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미리 숙소를 구하고 짐도 옮겨놓고 집에 와서 자고 새벽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첫 출근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엉엉 울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양구 갔어."라고 했더니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뭐? 갔어? 똑바로 말해봐. 이것아!" 하는데 엄마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엄마는 순간 쿠리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들으셨던 것이다. 내가 너무 대성통곡을 하며 말해서 사고가 난 줄 아셨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뻘쭘해져서 "아니, 시흥으로 일하러 갔다고......"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눈물이 뚝 멈췄다.


엄마는 "미친것아,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라며 살짝 울먹이셨다. 오메, 난 그냥 슬프니까 엄마 생각이 난 건데 주책맞게 대성통곡을 해서 늙은 엄마 간 떨어질 뻔했던 것이다. 아무튼 엄마는 어디 외국으로 돈 벌러 나갔냐면서 좋은 기회로 간 거니까 울지 말라고 위로해주셨다. 쿠리는 꼼꼼해서 잘 배워올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쿠리에게 해주며 같이 한참을 웃었다. -엄마 미안!ㅋㅋㅋ-


그렇게 울며 며칠을 보내다 보니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벌써 반년이다. 이제는 떨어져 지내는 게 슬프지는 않다. 그래도 셋이서 같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역시 가족은 같이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역할이 있고 아빠 역할이 있는 거라고 느껴진다. 둘이서만 지낼 때는 심각한 것 같은 문제도 셋이서 있으면 금세 풀린다. 조금만 더 참아야겠다. 이제 곧 나도 일을 시작하니까 쿠리 어깨의 짐이 조금은 덜어지기를 바란다. 




(덧)

그나저나 5만 원으로 뭘 하지? 

희승이랑 떡볶이나 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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