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 '어린이라는 세계' 33쪽
지금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 책’의 33페이지를 읽은 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세요.
재미있는 것은 스스로를 착하다고 하는 어린이는 드물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 역시 친구한테 준비물을 잘 빌려주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고, 종종 솔선수범하면서도 그렇다. 겸손해서일까? 그보다는 '착하다'는 말의 힘이 너무 강력해서 차마 손을 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말은 남에게 들어야 의미 있다는 것을 어린이도 알기 때문이다. '착한 어린이'라는 말에는 '남의 평가'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때 '남'은 주로 어른들이다. 부모님, 선생님, 산타 할아버지 같은. '착하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는 어린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 잃어버린 강아지 찾는 걸 도와 달라거나 짐 옮기는 걸 도와 달라는 식으로, 어린이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서 어린이를 유인하는 범죄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에 불이 붙는 것 같다. 슬프고 두려운 일이지만, 가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애쓰다 멍드는 어린이가 어딘가에 늘 있다. 그렇다고 어린이에게 착한 마음을 버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윤이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그럴 때 나눠 주면 안 되는 거야!" 할 수는 없다. 친구를 돕는 어린이에게 "너 진짜로 이거 원하서 하는 거야? 진짜로, 진짜로 진심이야? 하고 캐물을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어린이의 착한 마음이 걱정스러웠다. <어린이라는 세계 33쪽>
옆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 희승이에게 물었다.
"희승아 너는 네가 착하다고 생각해?"
"....... 몰라!"
착하다
-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
착하다는 게 어느 정도의 선은 있겠지만 결국은 각자의 판단이다. 어려운 문제다. 나는 희승이가 너무 곱고 바르고 상냥하지 않아도 괜찮다. 적당히 곱고 바르고 상냥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반에 결이 고운 여자 친구가 한 명 있다. 친구에게 배려는 물론이고 선생님들이 원하는 일을 척척 해낸다. 처음에는 '어떻게 4살이 이럴 수가 있지?' 하며 신기하고 기특했다. "얘들아~이제 정리하자!"는 내 말에 그 아이는 항상 솔선수범했다. 고마웠다. 신학기라 바쁘고, 담임 생활이 처음이라 정신이 없었는데 4살 아이 한 명의 도움도 큰 힘이 되었다.
같이 생활을 한 지 3일이 지나고 4일이 지나갔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생활 속에서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이 반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다. 벌써부터 단짝이 되어버린 여자 친구들은 2~3명이서 붙어 앉았고 놀이시간도 그들끼리만 보냈다.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마음대로 움직였고 단 한 명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놀이시간을 보내고 장난감을 정리할 때 매번 그 아이만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속이 상했다.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찝찝했다. '착하면 무조건 다 배려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러던 중에 그 아이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고 너무 배려하고 참고 심지어 잘 울지도 않는 아이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배려를 잘하는 아이에게 "너무 배려하지 말라!"는 말은 옳지 않다. 배려하지 않는 아이에게 "친구에게 양보해야 하는 거다. 친구가 갖고 놀던 장난감은 뺏지 않아야 한다."라고 가르쳐야 한다.
나는 아직 부족하지만 아이들과의 생활을 잘해나가고 싶다.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공부해가며 문제가 생기면 슬기롭게 해결해나가고 싶다.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 빛난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여서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