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슬킴 Oct 19. 2020

설거지, 좋아하세요?

미루고 미루다 보면 좋은 일도 생겨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그럴 일이 있었다. 평소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는 나와 10년 넘게 살고 있는 신랑이 얼마 전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슬한아, 고마워! 네 덕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봐도 이젠 아무렇지가 않아~!”     


헛! 이건 지금 나를 비꼬는 말인가? 고개를 휙 돌려 그를 봤다. 그는 진정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내 덕에 내려놓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설거지가 쌓여있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은 떨어져 지내고 있고,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기 때문에 집안일에는 손도 못 대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있을 때 신랑은 주 6일 일을 하면서도 집안일을 나보다 더 많이 했다. 특히, 설거지! 내가 설거지를 싫어하기 때문에! -     



나는 설거지를 싫어하지만 수세미 4-5개를 동시에 쓴다. 용도는 이렇게 나뉜다. 기름진 그릇, 기름기 없는 그릇, 헹굼 용, 컵, 싱크대 바닥을 닦는 것 정도이다.      

일반 그릇용, 컵 씻기용

 

기름진 그릇용, 헹굼용






고무장갑도 두 개를 번갈아 가며 쓴다. 습기를 충분히 제거한 후에 사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고무장갑 안에 면장갑도 꼭 챙긴다.  내 손은 소중하니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이래서 내가 설거지를 싫어하는 건가? 뭐가 이리 복잡해? 


설거지를 그렇게도 싫어하면서 나는 그릇이나 컵을 무지하게 많이 사용한다.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니 더 그렇다. 세끼 밥, 중간에 2-3번의 간식, 반찬을 하거나 냉장고 정리를 하는 날에 설거지는 산처럼 쌓이고 그걸 보고 있으면 설거지 괴물이 나를 덮치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난다.      


설령 설거지 괴물이 나를 덮치더라도 밥을 먹거나 간식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는 게 싫다. 먹었으면 좀 쉬어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밥을 차리는 것도 힘들었는데 먹고 바로 설거지를? 누가 밥을 차려주면 생각해보겠다. 밥을 먹고 티타임을 갖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서서 바로 설거지라니... 혼자 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먹은 것만 얼른 해버리면 그만일 테니까.   

   

가만히 서서 해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빨래도 청소도 움직이면서 가능한데 설거지는 가만히 서서 해야 한다. 가만히 누워있는 건 자신 있는데 서 있는 건 좀이 쑤신다. 


그렇다. 그냥 싫다.     

매거진의 이전글 낙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