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그랬기를 바라…
나는 어린 시절 추억을 먹고 산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서 괴로운 부분도 많지만 좋은 부분도 있다. 새록새록 옛날 생각을 하나씩 꺼내서 지친 중년의 나에게 선물한다.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서 자란 나는 이런저런 추억이 많다. 마루에 앉아 듣던 빗소리, 땅강아지가 집을 찾아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또 보며 막대기로 장난도 쳤다. 엄마가 꽃을 심으셨던 작은 화단에는 샐비어, 맨드라미, 코스모스가 피었고 졌다. 샐비어 꽃을 쪽쪽 빨아먹기도 하고 닭 볏을 닮은 맨드라미를 찾아보기도 했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춤추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눈이 많이 오던 날 마당은 눈이 부신 하양이었다. 비료포대 썰매를 타러 가기 위해 마당에 쌓여있던 지푸라기를 단단히 챙겨 넣었다. 하루 종일 실컷 놀고 돌아오면 마당에 쌓여있던 눈은 어느새 정리가 되어 있었다. 엄마가 해 놓으셨던 거겠지. 엄마. 아득히 먼 옛날, 우리 집 마당을 생각하면 그곳에는 늘 엄마가 있다. 나보다 어리던 엄마.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엄마와의 추억이 있다.
20대 중반에 시집을 와서 30대까지 보낸 그 집에서 엄마는 처음 만났을 때 중학생이던 시동생을 돌보기도 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매일 밭일도 했다. 공부를 잘해서 명문여고에 들어갔던 엄마는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는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그냥 집에 있다가 시집을 온 것이다. 그렇게 들어온 집이 그리 잘 사는 집도 아니고, 상대가 국민학교 선생이라는 것만 믿고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 된 사람이 괴팍한 성격이라 맘고생도 많이 하셨다. 내가 알기로는 부모들이 선을 보라고 해서 만나고 결혼한 걸로 알고 있다.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집에서 시키는 결혼을 했는데 뽑기가 잘 못 된 것이다. 이제 와서 돌이길 수 없는 일이고, 그로 인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참 알 수 없는 인생이다.
그 마당에서 제일 바쁘던 사람이 엄마였다. 손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널고, 고무 대야에다 물을 받아 자식 넷을 씻기고, 매일 세끼 식사를 준비하며 수없이 부엌과 시암을 오가던 엄마였다. 해가 뜨면 마당에 고추를 널어 말리고 저녁에는 광에 들여놓던 사람도 엄마였다. 그 많던 집안일을 대신해 주러 시집을 간 거였을까? 그 시절 지금의 나보다 어리던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그래도 엄마는 마당에서 놀던 한창 예쁘던 자식들을 보며 행복했겠지? 이 글을 쓰며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아들이 말해준다. 할머니는 그때 힘들어도 보람이 있으셨을 거라고. 엄마. 그랬어? 힘들어도 조금은 행복했어? 오늘 엄마께 전화로 여쭤봐야겠다. 그리고 말해야지.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