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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킴 Jan 10. 2021

비가 오는 아침

- 그 날의 온도


비가 오던 어느 봄날 썼던 일기









비 오는 날! 기분이 좋아지는 빗소리.



아침 7시, 축 처진 몸으로 잠에서 깨어나니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 밖은 젖은 도로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로 가득했다. 그 소리만 들어도 비가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 길을 뚫고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의 분주함이 느껴졌다. 속도 모르고 나는 그 소리만을 즐기곤 한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여유를 부리다가 학교에 가는 희승이가 알람 소리를 듣고도 꿈나라를 헤매길래 조용히 불러 깨웠더니 피곤하다며 투정을 부린다. 아빠는 허리, 엄마는 어깨가 쑤셔서 스트레칭으로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 9살 먹은 아이의 몸도 비에 반응하는 걸까? 다리를 주물러주니 겨우겨우 일어나며 먹을 것을 달란다.


희승이에게 ‘먹을 것’이란 밥이 아닌 다른 무엇이다. 주로 아침으로는 바나나, 사과, 키위, 빵, 떡, 요구르트, 시리얼 등을 먹는다. 오늘은 사과밖에 없으니 밥 먹고 사과를 먹고 가라고 했다. 싫단다. 평소라면 “그냥 있는 거 먹어”라고 말했을 텐데 오늘의 나는 양구한테 “같이 빵집에 다녀오자"라고 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보통 미리 준비를 해놓거나,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에는 보통 쿠리가 혼자서 빵집에 다녀온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 둘이서 대충 옷을 껴입고 나섰다. 비가 오는 아침 거리에 나가니 기분이 좋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이 우산을 들고 걷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도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활동이 오후로 맞춰져 있는 나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자동차 창문으로 떨어지는 비를 슥슥 가르는 와이퍼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시원해진다. 오늘 내리는 이 비가 참 좋다.


샌드위치를 먹여서 학교에 보내고 쿠리랑 둘이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내리는 비가 왜 이렇게 좋은지 너무 궁금해서 연신 “왜 이렇게 좋지?”를 말하는 나를 보며 “며칠 사이 미세먼지가 많았는데 비 덕분에 공기가 맑아져서 더 좋은 거 아닐까?”라고 쿠리가 말했다. 그것도 맞다. 일주일 정도 미세먼지가 최악이었으니까. 하지만 딱 그것은 아니었다. 내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이유는 바로 ‘온도’였다. 비가 와도 더 이상 춥지 않고, 춥지 않으니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 그거였어! 온도가 다른 거야. 온도.” 나는 무슨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행복한 표정으로 연거푸 말했다. 





비가 올 때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적당한 온도, 나는 그때 내리는 비를 좋아하는 거였다. 둘이서 우산을 쓰고 걸을 때 한쪽 어깨가 조금 젖어도 개의치 않고, 어쩌다가 흠뻑 맞아도 기분 좋은 그 비가 참 좋다.







올여름에 비가 오면 희승이랑 비 맞으러 나가야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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