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_ 엄마! 나 남자 친구 있어.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있어. 아니 결혼해야만 하는 남자애가 있어.

by 슬슬킴

그렇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은 남자가 아니라, 결혼을 해야만 하는 남자가 생겼던 것이다. 뱃속에 아이가 생긴 걸 말하기 전에 엄마와의 눈치게임에 들어간 것이다.


먼저 엄마께 전화로 운을 띄웠다.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고. 내가 20대 후반이 되면서 엄마는 줄곳 내가 결혼을 하기를 바랐기에 싫지 않은 눈치였다. 엄마는 한번 내려와서 궁합을 보러 가자고 하셨다. 우리 엄마는 지금은 교회 권사님이시고 그 당시에는 장로님이셨다. 그 차이를 나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


시간을 내서 주말에 집에 내려갔다. 아무렇지 않게 엄마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셨다. 머리를 얌전하게 빗어 쪽을 지신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할머니는 무당 같은 느낌은 아니었고 역술인처럼 보였다. 연세가 족히 80세는 되어 보이시는 할머니는 두 사람의 생년 월시를 적으시더니 매우 낡은 책을 이리저리 넘기며 보셨다. 그리고 종이에 적는 둥 마는 둥 뭔가를 쓰셨다. 그 책은 글씨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낡아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주나 궁합이 아니라 그냥 점을 보신 것 같았다.


할머니의 첫 말씀은


"둘이 여관은 이미 다녀왔네~."였다.


'응? 갑자기?'


뭐 나이 먹고 연애하면서 당연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라 나는 놀라지도 않았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에이~할머니!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우리 딸 믿어요."


'응??? 갑자기???'


할머니의 이야기보다 엄마의 반응이 더 웃겨서 속으로 피식 웃었던 게 생각이 난다. 나이 서른에 남자랑 플라토닉 사랑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엄마가 귀여웠다.


엄마! 나도 나름 순수했어. 남들보다 한참 늦었고 또 경력(?)도 화려하지가 않아. ㅋㅋ



할머니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시라도 애가 들어서면 절대 없애면 안 돼. 복덩이야. 아니 애를 지금 그냥 만들어. 내년 동지쯤 나오면 애 사주가 정말 좋아."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하시더니 -둘이 합이 세 개 들었다.- -나이 차이도 딱 좋고 엄청 잘 살 것이다.- 어쩌고 저쩌고... 하시는데 엄마는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없으시다는 듯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셨다.


그때, 할머니가 실드를 쳐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라? 할머니 용하신데?' 싶으면서 이것저것 여쭤봤었다. 당연히 믿거나 말거나지만...


대충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길에 마루에서 신발을 챙겨 신고 있는데 방 안에서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기 낳으면 같이 한번 와~!"




한 두 달 후쯤에 엄마한테 임신한 사실을 알렸더니 엄마는 웃으시면서 "점쟁이 할머니가 그렇게 말했다고 덜컥 임신을 하냐?"라고 하셨다. 나중에 아빠가 반대를 했을 때는 조금 심각했지만, 엄마는 내 임신 사실을 주변에 숨기지 않으셨고 요즘은 혼수로 아기도 갖고 가지 않냐고 말씀하셨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는 몰라도 엄마의 그런 태도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나는 내가 임신한 사실이 부끄러웠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기뻤다. 물론, 운이 좋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쿠리 같은 신랑을 만난 것, 그리고 편안한 시댁을 만난 건 진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덜컥 임신이 되었는데 남자가 그지 같거나 시댁이 그지 같았다면... 인생 겁나게 우울했겠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매우 행복하므로 만족이다. 둘 다 그림을 그리는 애들이라서 가난함이라는 난제가 가끔 우리를 괴롭히지만 아이가 생겨서 결혼을 하게 되고 별거 없는 인생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희승과 쿠리! 귀여운 내 연하남들! (3년 전쯤 찍은 사진)





그나저나, 할머니는 살아계실까? 장수하시며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의도이든 아니든 나에게 힘을 주었던 할머니! 감사합니다.






- 다음화에 계속...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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