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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Feb 01. 2017

자이언티, 안경알 너머의 세상 보기

Zion.T - [OO](2017, 정규 2집)

Zion.T - 영화관

"여백이라는 작은 주먹으로 KO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구나." 얻어맞은 뒤통수가 얼얼함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새삼스러운 일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이미 그에게 울타리는 없다.

내심 1집 <Red Light>처럼 그루비하고 댄서블한 음악을 기다리긴 했다. 발암의 온상 네이버 뮤직 댓글 상태가 엉망인 걸 보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나 보다. 하지만 부드럽게 달콤한 티라미수 같은 분위기의 네오 소울 장르까지도 이제는 확실한 그의 주전공이다. 여기에 곁들이는 위트 있는 비유 속에 뼈를 박아 놓은 가사들은 좋은 아메리카노처럼 진하고 풍미 깊은 여운을 남긴다. 2번 트랙 '노래'를 제외한 전 트랙에 참여한 PEEJAY와의 궁합도 눈 여겨볼 만하다. 곡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YG의 입김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의외의 사실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이 앨범에서 눈여겨볼 만했던 지점을 몇 가지 늘어놔 보고 싶다. 특히 1번 트랙 '영화관'에서 나른하게 풀어지는 보컬에도 불구하고 가사에서 함축하고 있는 메시지에서 오는 긴장이 인상적이었다. '마주 앉아서 바라본 살색 스크린'에 빛을 쏘는, 영사기의 렌즈를 닮은 '푸른색 눈동자' 그녀의 '내 눈을 자꾸 의심하게 만드는' '다음 대사'에 집중하다 보면 의식하게 되는 나의 '자리'까지 이어지는 가사 말이다. 영화는 끝남과 동시에 불이 켜지며, 관객을 현실이라는 빛의 장막 너머로 쫓아내 버린다는 사실을 가사 위에 덧대보면 묘한 감상을 일으킨다.

5번 트랙 '나쁜 놈들'에서는 하이햇을 마치 힙합의 트랩 장르와 유사하게 쪼개는데, '부자가 되고 싶어'라는 가사와 섞이며 당연히 돈에 대한 얘기를 할 것 같은 모션을 준다. 그러나 바로 다음 '예쁜 짓을 해서 네 사랑을 벌고 싶어'에서 그 모션은 페이크를 위한 선행 동작이었음이 드러난다. 또한 1인칭 화법에서 '누구에게나'로 이어지는 가사는 개인적 감상을 대중적 공감대로 끌어올리는데, '누구에게나 다른 이름이 있어 / 나쁜 놈'과 같은 인상적인 라인으로 마무리하며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작사 의도를 깔끔하게 마감하는 센스가 돋보인다.

7번 트랙 '바람(2015)'에서 읊고 있는 바와는 다르게 그는 이 앨범 내에서 빈지노, 지드래곤 같은 거물과의 협업에서도 곡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탁월한 균형감을 보여주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좋은 곡들의 배치와 그 곡들을 관통하는 무드의 밸런스를 잃지 않는 좋은 프로듀싱에도 불구하고 남는 단 하나의 결점이 있다. 이전 정규 앨범에 비해 3곡이나 줄어든 트랙 수가 못내 아쉽다. 진한 감상의 여운을 한 곡의 인스트루멘탈 트랙으로 퉁치기에는 너무 짧은 러닝 타임이지 않았나. 그래도 자이언티의 안경알 너머로 훔쳐본 세상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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