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 노르웨이의 숲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이 생각났다. 턴테이블 위에 잘 닦인 레코드를 올려놓고 바늘을 접지시킨다. 레코드와 바늘이 살을 부대끼며 내는 잡음을 느끼고 싶었지만 내게 턴테이블이나 레코드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그냥 핸드폰의 조악한 스피커를 턴테이블 삼아 틀어놓고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을 뿐이다. 창 밖으로 눈을 돌려 송도의 야경을 바라보면 꽤 괜찮은 무드다. 이럴 때 숨을 폐 끝 깊숙하게 끌어당겼다가 천천히 놓아주면 모든 근심이 쓸려내려 가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나의 작은 여가다.
올드 재즈의 관악기와 드럼 소리가 주는 질감은 언제 들어도 특별하다. 그러나 나는 마일스 데이비스나 쳇 베이커 같은 이름들의 음악들을 구분하지 못한다. 심지어 지금의 연주가 이 곡의 어디쯤에 와있는지, 곡이 바뀌기는 한 건지 조차 알 수가 없다. 재즈의 기본은 즉흥연주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가요에 익숙해져 있는 내 귀는 4분의 4박자 기반의 루프가 아니고서는 금세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내게 재즈를 체계화시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경험과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 우울한 분위기의 재즈를 들으면서 노르웨이의 숲을 다 읽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점잔을 빼고자 한다면 아마 각 주인공들이 겪은 상실과 청춘의 휘발성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평가하며 주절대야 할 것이다. 사실은 정말 그러려고 했고 정말 그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의 사실은, 상실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미도리 같은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세 번, 네 번, 다섯 번 생각했다. 엄밀히 따진다면 '미도리'라는 캐릭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대목이나, 자신의 삶을 버텨내는 생명력이 못 견디게 아름다웠다.
"완벽한 사랑을?"
"그게 아냐.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를 바라진 않아.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투정을 마음껏 부리는 거야. 완벽한 투정. 이를테면 지금 내가 너한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 그러면 넌 모든 걸 내팽개치고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헉헉 숨을 헐떡이며 돌아와 '자, 미도리, 딸기 쇼트케이크.' 하고 내밀어. 그러면 내가 '흥, 이제 이딴 건 먹고 싶지도 않아.'라며 그것을 창밖으로 집어던져 버려. 내가 바라는 건 바로 그런 거야.
"그건 사랑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 같은데." 난 좀 어이가 없었다.
"있다니까. 네가 잘 모를 뿐이야. 여자한테는 그런 게 무지무지 소중할 때가 있거든."
"딸기 쇼트케이크를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게?"
"그렇다니까. 난 남자애가 이렇게 말해 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미도리. 내가 잘못했어. 네가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기 싫어졌다는 거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난 정말 당나귀 똥만큼 멍청하고 센스가 없어. 사과하는 의미에서 다른 걸 하나 사다 줄게. 뭐가 좋아? 초콜릿 무스, 아니면 치즈 케이크?'"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난, 그만큼 더 상대를 사랑해 주는 거지."
- 137p
물론 딸기 쇼트케이크에 대해서 얘기하는 대목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심심치 않게 접해봤기 때문에 새롭진 않았지만, 사랑을 갈구하고 그 사랑의 욕망을 숨김없이 내보이는, 그러면서 다소 엉뚱한 면모를 보이는 미도리의 모습이 플롯 위에서 그려져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봄봄'의 점순이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미도리는 틱틱대면서 챙겨줄 거 다 챙겨주는 점순이랑은 좀 다르긴 하다. 손에 잡힐 듯 잡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나는 살아 움직이는, 피가 흐르는 여자야." 라면서, 왜 페이지 속에서 나오지를 못하니!
각설하고, 300 페이지 즈음 미도리가 와타나베에게 영어 가정법이 일상생활에서 쓸모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대목이 있었다. 여기서 와타나베는 '구체적으로 뭔가에 쓸모가 있기보다는 사물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훈련이 되지 않을까 싶어'라고 대답한다. 미도리는 너처럼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라면서 감탄한다. 그래 놓고 뒤에 가서 이런 얘기를 해놓는다.
""인생이란 비스킷 깡통이라 생각하면 돼." (...)
"비스킷 깡통에는 여러 종류 비스킷이 있는데 좋아하는 것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먹어 치우면 나중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는 거야. 나는 괴로운 일이 있으면 늘 그런 생각을 해. 지금 이걸 해두면 나중에는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깡통이라고."
"그거 철학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정말이야. 나는 경험적으로 배웠어." 미도리는 말했다.
- 419p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와타나베가 "그거 철학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라고 말하는 반면, 미도리는 "그렇지만 정말이야. 나는 경험적으로 배웠어"라고 말하기 때문에 사랑스럽다. 비록 고통스러울지언정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거기서 긍정적인 뭔가를 배워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이지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내어줘 버릴 수 있을 것도 같다.
재즈음악의 악기와 마디가 구분되지 않는다고 해서 나처럼 책을 휘적휘적 불만스레 넘기며 걱정하지 않고, 그저 귀에 들리는 음악 자체를 즐길 수 있을 것만 같다. '노르웨이의 숲'의 모든 주인공들이 나오코가 말한 '깊은 우물'을 갖고 있는 반면, 미도리에게서는 그것이 느껴지지 않아서 더욱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자꾸 '나를 사랑하냐고' 물어봐도, '온 세상 정글의 호랑이가 모두 녹아서 버터가 되어 버릴 만큼 좋아' 같은 비유를 찾아내 대답해 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