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지노의 입대로 살펴보는 '한국형 랩스타'의 곤란
빈지노가 5월 29일 6사단으로 입대했다. 육군이니까 2019년 2월 28일 전역이다. 작년에 드디어 정규 1집 [12]를 냈고, 자신의 공백기를 메워줄 'Ambition Musik' 3총사도 연착륙에 성공했으며, 입대 당일 아쉬운대로 재지팩트 [Waves Like] EP를 내놓기도 했으니 할 건 다 했다. 그러나 여전히 눈길이 가는 장면은 여자친구 '스테파니 미초바'의 존재와 '입대'라는 제도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이젠 유명해져서 군대도 절대 뺄 수 없어 난
근데 난 예측이 뻔한 타입이 될 수도 없어
- Flexin
그냥 그만해도 돼, 어차피 얼마 뒤엔 군대를
가야 할 테고 또 그땐, 멈춰지는 거지 모든 게
- Imagine Time
지금 저를 괴롭히는 게 뭐냐면, 한국 나이로 30살이 되면
사회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저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요
미묘한 압박감을 받아서, 나아가려고 해도 뭔가가 잡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30살이 뭐라고.
대학입시를 준비했었던 거, 사회가 요구해서 했었던 거, 또 군대에 가야 되는 거
계속 나에게 뭔가를 바라잖아요
그래도 난 하고 싶은 걸 할 자격이 있고, 그렇게 어리지도 않고, 그렇게 늙지도 않았고
남들이랑 나를 비교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고
내 기준에 맞게 자신을 평가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 <Sellev>와의 인터뷰
재력이야 뭐 늘 내 뒤를 바칠
테고 세련미야 뭐 예술하면 automatically
I own it, 다음 걱정 군대 말곤 없네
한번 갈 거 두 번 갈일 없게 안 피할래
- Journey
그저 'Being Myself' 하며 살고 싶을 뿐인 그는 아직도 군대 문제에 대해 스스로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 듯 하다. 그에게 입대란 '시간의 정지'이고, '수행해야 할 의무'이고, '강요'이고, '손실의 최소화를 궁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가야 하니까 그저 마지 못해 갈 뿐. 개인이 사회의 완고한 질서와 충돌할 때 백에 아흔 아홉은 체념에서 그치기 마련이다. 어쨌든 언젠가 그는 전역을 할 것이므로 결국에는 답을 내릴 것이다.
잠시 다른 이야기로 점프해서, 일단 도끼가 물꼬를 트고, 더콰이엇이 영감을 줬으며, 빈지노가 실현시킨 '한국형 랩스타' 아이덴티티를 전제로 이야기를 되는 대로 풀어 나가보자. [11:11] 이후 빈지노의 캐릭터는 그 이전 시기의 랩퍼들 혹은 자기 자신과도 질적으로 달라진다. 이 단절은 빌스택스의 그것만큼 급진적이지는 않으며, 어느 정도의 연결고리는 유지하고 있다. 이 변화는 그의 디스코그래피 속에서 유연하고도 대담하게 실현되어 간다.
피스쿨, 핫클립, 재지팩트, [24:26], [11:11], [Up All Night], [12], 다시 한번 재지팩트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빈지노라는 자아의 발아와 확장을 목격할 수 있다. 반면 동시에 세계는 자아의 비대화 정도에 반비례해서 축소한다. 부를 얻게 되면서 그는 점점 주위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된 것이다. "난 자유롭고 싶어('Break')"라는 고백이 어찌 보면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그가 영감 받는 장소를 서울에서 세계 각국의 여행지로 이동시켰고, 그 자체를 자신의 차별점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될 것이다. ('We are going to'의 방콕-LA-파리, 'Journey'의 멕시코 등)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실험, 음악씬에서의 자기 증명, 사회적 영향력으로의 확장, 자아의 진정한 실현으로 거침없이 옮아온 그의 관심사는 [12]에 이르러 급격한 감속 끝에 정지한다. 그를 멈춰 세운 것은 애써 유예해온 '사회적 의무'라는 장벽의 존재였다. 어느 순간부터 빈지노라는 캐릭터의 이미지는 자의반 타의반('스테파니 미초바'와의 교제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우 이국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을 벗어나 세계로 확장되었던 자아가 극복한 줄 알았던 '사회'라는 것에 의해, 공이 높이 던져 올려졌다가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듯, 그는 '낮은 한국'에서도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아찔한 추락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정된 추락에 대한 압박감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정규 1집 [12]에서는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시간에 대한 다소 강박적인 태도가 거의 모든 곡에서 분명하게 혹은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명절과 가족이라는 제도가 다소 뜬금없이 등장하는 'January'는 다소 의미심장하다. 'I Don't Mind'에서 여자친구를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자유롭게 '출국'했던 그가 'January'에서는 한국적 전통의 상징인 '떡국'을 위해 '외국인 여자친구'를 데리고 '귀국'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새해 첫날에는 한국 전통 음식 떡국도 손수 만들어봤다. (...) 당장 한국으로 시집을 와 생활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한국의 맛(?)을 알고 있었다.
“처음으로 떡국을 만들었는데, 제가 맛을 낼 수 있을지 좀 긴장을 했죠.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내가 산 재료가 떡국 재료로 맞는지’였어요. 그렇게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었는데 다들 맛있어하더라고요. 기쁘고 놀랍고 행복했어요. 앞으로 더 많은 레시피를 배울 거예요. 김치 만들기를 포함해서 말이죠(웃음).”
- 스테파니 미초바 인터뷰, 레이디 경향, 2016.01.06
더 이상 아무 것도 거리낄게 없는 '랩스타'가 된 줄 알았는데 결국 음악은 사회적 제도 안에 갇혀있었다. 무력감에서 온 스트레스가 [12]를 노골적으로 감싸고 있다. 이 곤란함은 오늘날 '한국의 랩스타'들의 허약함으로 확장된다. 입대 문제가 갑작스럽게도 이토록 어색하고 중대하게 느껴지는 것은 최근 한국힙합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변화와 연관이 깊다.
'한국적 힙합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은 이미 오래전 시효가 만료됐다. 미국힙합의 사운드 뿐만 아니라 정서 및 내용적인 측면까지 급격하게 동기화가 진행되어온 근 몇 년이었다. '일리네어 레코즈'가 최초의 용기를 냈고, '쇼미더머니'에 의해 힙합의 시간은 무르익었다.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한 이들은 '미국식 성공서사'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찼고, 이는 '한국형 랩스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정체성은 급격하게 지상으로부터 발이 떨어져 공중으로 떠올랐다. 한국의 자칭 랩스타들의 관심과 음악적 배경이 한국적 삶으로부터 떠나 '저 높은 곳에 있는 미국의 음악'의 흡수와 재현에 대한 경쟁으로 옮아갔기 때문이다. 이 경쟁의 심화는 한국적 맥락의 소거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랩스타에게는 실질적으로 맞설만한 '거대한 적'이나, '방탕한 생활'에 관련된 현실적인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의 랩스타들의 가사에서는 근본적인 공허함이 발생한다.
한국형 랩스타들의 '리얼힙합'에는 실체가 없다. 천재노창은 'CHING CHANG CHONG'에서 "총 쏘는 새낀 어차피 한국엔 없잖아 진짜 swag"이라며 조롱한다. '리얼'의 기준이 미국식으로 '총'에 맞춰져 있는 한 아무도 '리얼힙합'을 할 수 없는 셈이다. 그렇기에 '레퍼런스'라는 명목 하에 그들의 패션이나 애티튜드를 카피해서라도 빈 구멍을 메꿔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그러나 먼 훗날 씨잼의 '동충하초 헤어스타일'은 바리깡에 밀려나갈 것이다. 그 장면을 상상해보라. 삭발이라는 전체주의적 압력 앞에서 한국의 랩스타는 전적으로 무기력하다.
사실 이런 무기력의 문제는 일리네어 이전의 한국힙합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2007년 발매된 소울컴퍼니 [OB vol.1]의 '영장을 받아든(제리케이)'은 분명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단지 지금의 한국힙합이 한국적 맥락으로부터 스스로 격리되기를 선택하면서 '삭발'을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따름이다. '삭발에 대한 침묵'은 변화하기 전 과거에 어느 정도 시기를 걸치고 있는 기성랩퍼들 보다는 쇼미더머니 이후 세대의 랩퍼들에게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즉, 빈지노는 그저 '삭발'이라는 곤란함의 시작을 알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