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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Aug 14. 2017

30년 전의 제국주의 로맨스 되짚기

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 1986)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6)'는 카렌 블릭센이라는 덴마크 여성의 자서전을 토대로 1986년 개봉된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녀의 시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1919년, 1차 세계대전의 종전 직후 케냐의 한 마을에 정착한다. 영화 속 그녀의 독백에 따르면 전쟁이 남자의 몫이라면, 인내는 여자의 몫이다. 그 대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브로와 데니스, 두 남성들은 그녀 삶의 울타리 안팎으로 쉴새없이 드나들고 그녀는 그저 그들을 기다린다. 이 도식의 연장선 상에서 남성들은 사냥을 선호하여 온 초원을 헤집고 다니고, 그녀는 커피 농사에 힘을 쏟으며 묘목이 자랄 때까지 돌본다.

그러나 카렌의 이러한 뿌리내림은 그저 식물적인 것에서 그치지만은 않는다. 직접 농장에 나가 일손을 도우며, 농장에서 일할 원주민 키쿠유 부족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전쟁하는 남성들의 편견을 깨고 험난한 초원길을 가로질러 군수물자를 전달하기도 한다. 학교를 세우고 선교사를 고용해 키쿠유 아이들에게 영어와 성경을 가르친다. 이렇듯 그녀는 원하는 것을 이뤄내기 위해 기꺼이 땀을 흘릴 줄 아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대표하는 듯 하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처음에 여자라는 이유로 쫓겨났던 남성들의 친목 클럽에서 인정 받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는 그녀의 시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 내내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그녀의 성향을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카렌은 케냐로 건너오기 전 남작 부인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브로라는 친구와 계약 결혼을 한다. 브로와 카렌은 철저히 교환관계지만 카렌은 브로에게서 교환 이상의 소유를 원한다. 브로는 ‘나를 진지하게 사랑하게 된 건 아니겠지?’라고 물으며 그 점을 재확인한다. 그저 ‘남작 부인’이라는 이름을 제공하는 사람일 뿐이니 말이다. 카렌이 뭔가를 더 원한다면 그가 교환에 응할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브로는 또 다른 교환을 찾아 떠났고 카렌은 그를 소유할 수 없었다.

데니스는 브로의 반대편에 서있는 등장인물이지만 카렌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관습, 영토 구획, 편견, 법이 인간의 삶을 부당하게 축소시키고 옭아맨다는 입장을 영화 내내 내비친다. 그가 보기에 카렌의 자선사업은 일방적이고 시혜적이고 나르시즘적인 소유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렇기에 카렌의 청혼을 그러한 소유의 또다른 형태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데니스는 영화의 마지막에 카렌에게 동의하는 듯 하지만 결국 비행기 사고로 죽음을 맞으며 영원히 카렌이 가질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그 아쉬움 때문인지 카렌은 그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마친 후 흙을 한 줌 쥐어들지만 쉽게 놓지 못한다.

즉 카렌은 여성으로서 남성적 지배에 저항하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해 아프리카 그 자체를 수동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소유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유되기를 원하지 않는 대상들의 주체성을 박탈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들판에 흐르는 물은 본래 '뭄바사'의 것이니 함부로 할 수 없다. 심지어 자기 다리에 난 상처에 손을 대는 것도 다리의 의사를 물어보는 절차가 필요한 곳이다. 이것이 미개하다고 여겨지는 뭄바사 사람들의 세계인식이다. 흑인 육체 노동자들의 대사가 한 마디도 주어지지 않는 이 영화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낭만적인 로맨스를 온전히 느낀다는 것은, 2017년에 1986년의 이 영화를 다시 본다는 행위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시대착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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