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노케 히메 (The Princess Mononoke, 1997)
1.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연관을 베이스로 변주된다. 나우시카와 비슷하다. 숲의 신, 특히 시시신은 오무, 아시타카와 산은 나우시카의 역할에 해당한다. 자연, 인간, 중재자가 등장해서, 파괴, 갈등, 회복의 서사를 이끌어간다. 그러나 갈등의 해결 측면에서 나우시카가 이상적이었다면, 모노노케 히메는 껄쩍지근한게 현실적이라고 해야 되나 뭐라고 해야 되나... 여튼 그런 점에서 다르다.
2. 작중 타타라 마을 여성 캐릭터들의 포지션이 독특하다. 철과 무기를 다루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남자들을 조롱한다. 이 작품에서 아시타카를 제외한 남자 캐릭터들은 좀처럼 뭘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흔히 전쟁은 남자들이 일으키고 수행하나 날이 상해 무뎌진 칼처럼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 전체가 자연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을 마냥 분리해서 바라보기는 힘들다. 그래도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서는 대체로 가부장적 스테레오 타입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편이다.
3. 인간은 대체로 무지하나 위협적이고, 숲의 신들은 그리스 신화처럼 인간적인 감정을 보이나 대체로 무력하다. 이 점에 집중하자 에보시와 타타라 마을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거나, 숲의 신과 인간 모두를 양비론으로 바라보는게 부당하게 느껴졌다.
타타라 마을은 에보시가 세운, 인간에게 박해받는 인간을 위한 마을이다. 그러나 동시에 에보시가 왕의 명령에 따라 자연을 파괴하기 위한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자연은 자신을 파괴하는 인간에게 저주를 내리고, 보통의 마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채 죽어가기에 에보시를 중심으로 뭉치며 자연에 대한 적의를 키운다. 물론 아시타카가 증오를 멈추라고 하지만, 일단 누구든 피를 보고 나면 멈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산이 끝까지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버리지 못했듯이. 사실 인간에 대한 자연의 공격은 기본적으로 자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내 생각에 이 작품에서 어물쩡 넘어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왕의 탐욕'과 그 탐욕에 종사하는 '부역자'들이다. 왕의 생각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생각에 대해서 문제삼지 않는다. 그 '문제 삼지 않음'으로 인해 자연은 개박살이 나고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다. 마을 사람들 또한 피해자지만,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그냥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문제로 퉁치자. 그래도 어쨌든 결과적으로 피를 보게 되는 건 언제나 피라미드의 밑바닥이다.
4. 재앙신 비주얼이 좀... 이걸 새벽이랑 아침에 걸쳐 봤는데 마지막 장면을 남겨놓고서 아침밥을 먹었다. 아빠가 오징어젓갈이 맛있다고 드시는데, 나는 차마 먹지 못했다. 나우시카에서 오무 디자인도 그렇고 참 이 할배 촉수 좋아한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