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연, 정지돈, <문학의 기쁨>
"잘 쓴 책은 왜 안 더 비싼지 모르겠네"
"잘 쓴 걸 어떻게 알아요?"
"심의위원회 같은걸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서서비행은 얼마에요."
"삼백만원."
- 이거 좀 재밌는 지점인데 일반적으로 상품의 가격은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결정된다. 한 권에 만원쯤 하는 책은 가격이 충분한가? 그럴리가. 가격대비 내용의 질을 놓고 따져보자면, 어떤 책의 가격은 매우 적절하고, 어떤 책은 터무니 없이 비싸고, 어떤 책은 터무니 없이 헐값에 팔리고 있을 것이다.
-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자. 대량 생산 되어 희소가치가 없다. 틀린 말은 아닌데... 음, 희소가치가 없다는 설명보다는 일단 싼 값에 많이 찍어낼 수 있게 됐다고 하자. 그래서 싸졌다고. 책을 만들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굉장히 귀했고, 비쌌다.
- 그 다음으로는 개별 상품의 원가를 측정하기 곤란하다. 과자를 만든다고 하면, 원가에 부가가치를 좀 얹어서 팔거다. 그러나 소설의 경우 원가를 산출하기 곤란하다. 책을 찍어낼 때 인쇄비용에 작가의 인건비를 계산해야 할텐데 그게 좀 안될건 없겠지만 불가능에 가까울거다. 어찌어찌 계산이 된다고 해도 과자와는 성격이 좀 다른게, 과자는 고객이 그 과자를 섭취하면서 소모되지만, 책은 찍어내는대로 팔아치울 수 있는 이를테면 '무한증식하는 과자'쯤 되는거 아닌가 싶다. 아니면 처음부터 '인세'라는 비즈니스 모델은 투여한 노동력의 크기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좋다.
- 여튼 어차피 많이 찍어서 손해볼게 없다면, 오히려 프레싱 결정 이후 추가비용은 덜 들어간다는 측면에서 일단 싸게 많이 파는 박리다매식 전략으로 전체 매출액을 올리는게 유리해 보인다.
- 오히려 만약 오히려 책 가격이 소장가치와 연결되어 있어서 수요-공급 쪽의 영향을 받는다면 많이 찍어낸 책은 가격이 폭락할 것이다. 말이 안된다. 책의 경우 수요와 공급이 아니라, 수요와 총 매출액이 대응한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코너가 존재하는 것이다. 많이 파는 것이 첫째, 책의 내용이 두 번째.
- 그러나 여전한 문제는 <오종택 자서전>과 <사피엔스>의 가격이 동일하다면 그건 좀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오종택 자서전>을 사려는 미친놈은 없을테지만). 정보 불균형은 독자 입장에서도 곤란하다. 가격이 품질의 지표가 되어주지 못한다면, 독자는 뭘 보고 고르지? 이 불쏘시개 같은 책을 가장 쉽게 따져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아무래도 평론일 것이다.
- 엥? 평론? 요즘 누가 읽기도 힘든 평론을 읽냐? 그리고 작품 고르겠다고 평론집에 또 돈을 써야한다는 무한 루프에 빠지게 된다. 그 평론을 평가하기 위해 평론의 평론이 필요하고... 아, 물론 네이버 블로그 이런 곳도 대안은 아니다. 게다가 평론은 작품의 가치를 온전히 반영하는가? <문학의 기쁨>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등단'이라는 제도 뭐시기 하면서 <관료제 유토피아>를 인용한다. 안된다는 뜻이다.
- 독자들이 각자 느끼는 효용의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가치를 평가해서 가격을 매긴다는 발상 자체가 무용할 수도 있다. 이야... 그러면 그냥 어느 것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걸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