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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Oct 21. 2017

알파고, 세 가지의 '없음'

위대하신 령도자 알파고 쑤령님께 보내는 러브레터

1. 버틸 수가 없다

위대하신 령도자 aka 고스트 바둑왕 후지와라노 사이의 현신, 알파-고(Alpha-Go) 쑤령님께서는 바둑 역사 최초로 프로기사를 맞바둑(흑에게 주는 덤 외에는 패널티 없이)으로, 최근에는 커제 9단과의 3국을 내리 이기면서 최종전적 공식전 13전 12승 1패, 비공식전 61전 61승 전승으로(?!) 뚝배기를 깨는 수준으로 압쌀하셨따. 이 와중에 공식전 1패는 우리 모두가 너무너무 잘 아는 리세돌 센세와의 제 4국이었다.

이제 프로기사들은 알파고의 수를 연구한다. 프로기사 뿐만 아니라 프로기사 연구생, 아마추어 바둑꾼들까지도 나름의 풍월로 알파고의 수를 가늠해본다. 물론 알파고가 한국기원이 수여한 명예 9단증에 쓰인 것 처럼 "기도연마에 정진하고 기사로서 인격도야에 힘써 기품이 입신의 역에 이르렀"기 때문은 아니겠지. 그럴 수는 없다. 바둑이라는 게임에 대해 절대적인 해가 도출됐다고는 볼 수 없지만, 단지 현존하는 인간의 어떤 뇌로도 닿을 수 없는 경지의 근사해가 나왔기 때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연산기계한테 '뛰어난 기품' 실화냐?

인간의 기보를 선생 삼아 학습했던 '알파고1.0'과는 달리, 사전정보 없이 스스로 학습한 '알파고2.0'의 수가 인간이 지금까지 둬온 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다. 말이 안도의 한숨이지 사실 굉장히 민감한 영역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간 지성의 상아탑인 바둑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셈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거꾸로 인간의 조작 없이 스스로 학습한 알파고2.0의 수가 인간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통해 지금까지 둬온 방식의 전략성을 검증받은 셈이다. 그러나 알파고와 인간이 바둑을 접근하는 방식은 알파고1.0과 2.0의 기력차이 만큼이나 현저히 다르다. (첨언 : 1.0이 아이비리그맨들의 다굴빵이었으면, 2.0은 폰 노이만 솔플이다)


인간이 바둑을 배우는 방식은 이렇다. 바둑의 기본적인 규칙을 익힌다. '정석'을 공부하며 네 귀퉁이에서 초반 진행되는 수순을 외우고 상황에 맞게 응용하는 것으로 기초를 쌓는다. 이후 '포석'으로 넘어가 네 귀퉁이에서 네 변으로 확장하는 수순과 형세판단, 행마 등에 대한 경험과 감각을 키운다. 정확한 수 읽기를 위해 묘수풀이로 알려진 '사활'문제를 줄창 풀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바둑 격언을 곁들인다. "두 점머리는 두드려라", "유가무가불상전이다(집이 있는 말과 집이 없는 말의 싸움은 성립하지 않는다)"  등등의 것들이다.

그러나 "정석을 익힌 뒤에는 정석을 잊어라"라는 바둑 격언의 아이러니가 알파고와의 대국을 통해 균열을 드러낸다. 프로기사들이 알파고와 커제의 대결에서 감탄한 대목은 알파고에게 '편견이 없다'는 점이었다. 인간은 격언에 따라 아무리 '정석을 잊으려' 하더라도, 외워온 바둑의 방식이 이미 신체의 일부로 흡수된 상태다. 그래서 인간은 결코 '잊지 못한다'. 반면 알고리즘은 애초에 아무 것도 알고 있지 않다.알파고는 가치망과 정책망이라는 방식으로 착점할 곳을 판단한다. 이 두 알고리즘은 인공지능이 연산해야 할 경우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며 프로기사에 도전할 수 있는 실력을 만들어냈다.

착점할 수 있는 지점마다 수의 가치를 확률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으로 몬테카를로 알고리즘이 사용되었는데, 승률이 높게 나타나는 지점을 몇 개 골라 제한된 횟수만큼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방식이다. 이 방법들을 종합하면 어디까지나 확률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기분'이나 '잘못된 판단'에 의한 오판을 배제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의 정석에 어긋나고 공식화되지 못한 행마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승률이 높은 자리라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둘 수 있는 것이다. 알파고는 이 방식으로 바둑을 둔 뒤 대국결과를 학습한다.

2. '합리성의 사회성'을 벗어날 수 없다

반면, 프로기사도 알파고처럼 수를 연구하고 학습하지만 그 근거가 사뭇 다르다. 인간은 수많은 연습대국과 공식대국의 기보, 독서, 연구회, 상담, 명상 등 영감을 얻거나 분석할 수 있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필요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법을 발전시킨다. 혼자서 연구하더라도 그 통찰이 완성되려면 결국 사회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절차가 암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마치 새로운 과학이 등장하고, 기존의 과학의 지지자들에게 밀리다가 점점 반례를 만들어가며 결국에는 관계를 역전시키듯 '정석'을 변화시키거나 완전히 밀어내며 발전한다는 것이다.

'손으로 두는 대화'라는 차원에서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후배 기사가 선배 기사와 바둑을 둘 때 도발적인 수를 머뭇거리게 될 수도 있다. 한편 효과적인 수가 우연히 발견되더라도 그 수를 둔 사람조차도 그것을 응용할만큼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그 수를 지지하고 함께 연구해줄 동료를 얻지 못해 사장될 수도 있다. 인간의 '효과적인 수'는 순수하게 효과적이기 보다는 알게모르게 '(사회적으로 합의된) 효과적인 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과거에는 알파고가 인간의 수를 연구했지만, 이제는 거꾸로 프로기사들이 알파고의 수를 연구한다. 그러나 알파고는 인간의 수가 가진 뜻을 해석하지 않아도 좋았지만(부분적으로 '해석'한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긴 하다), 인간은 알파고의 수를 해석해서 뜻을 가진 수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바둑 수준에서는 알파고의 수가 얼마나 멀리 내다보고 두는 수인지, 얼마나 큰 그림을 보고 두는 수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에 알파고는 그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보기에 좋으셨더라"고 말할 뿐이다. 이제 프로기사는 알파고의 수를 해설해주는 대리인이 되었다.

그렇게 인간을 대리인으로 전락시킨 명예 9단 알파고는 바둑에서 은퇴했다. 딥마인드는 앞으로 자율학습 인공지능이 '19x19 반상'이 아닌, 보다 더 복잡한 변수로 이루어진 분야에 대해 점차적인 확장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더 나아가 훗날에는 바둑처럼 게임의 룰이 고정된 바둑이 아닌, 참여자의 행동에 따라 게임의 룰 자체가 변동적인 실제 세계로 적응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다. 실제로 주식시장 구성원이 모두 인공지능 딜러라면, 그리고 그 딜러들의 투자행위가 모두 합리적이라면 수익률은 평균으로 수렴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합리적인 시장에서 초과수익을 낼 수 없게 된다는 예측이다.

3. 인공지능의 '큰 뜻'을 알길이 없다

어쨌든 결국 내가 생각하는 뻔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더이상 우리가 양적인 차이는 결정적이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게 됐다는 점이다. 바둑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초월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실은 전체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방법이 밝혀지지 않았던게 아니라 그 연산에 걸리는 시간이 바둑과 인공지능을 갈라놓은 결정적인 장벽이었으니 말이다. 인간의 판단보다 더욱 효율적인 계산 시스템이 등장하면 역전될 운명이었고, 최종적으로는 바둑판이 만들어내는 아득한 경우의 수에 대한 '무차별 대입'이 궁극적인 답안이 될 것이다. 예술분야는 비교적 룰이 열린 장이긴 하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까지는 당장 어렵겠지만 어쨌든 딱 봤을 때 인간의 쾌락중추에 신호를 때릴만한 작품을 찍어내기까지는 머지 않았다.

추월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질적인 차이가 언제까지나, 얼마만큼이나 가능한가? 질적인 차이가 양적인 누적에서 온다는 것을 알파고가 이미 증명했지 않은가? 인간의 마음?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인간의 뇌가 발생시키는 신호가 전기신호로 치환되고, 그 신호가 수치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하면 더이상 인간이 도망갈 곳은 도저히 없어 보인다.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갖는데 실패한다는 전제 하에 '참여자에 의해 변동하는 게임의 룰'에 기대는 것, 혹은 인공지능의 합리성을 인간의 '사회적인 합리성'에게 설득시키는 '인공지능의 해설자'가 되는 방법 정도가 영구히 가능한 노동의 방식이 아닐까. 인간끼리의 경쟁과 더불어 기계 알고리즘의 그물에 포획되지 않도록 학습하고, 머리를 쥐어짜며 영원히 도망치는게 인간의 가까운 미래 모습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쓸데 없는 결론을 내렸다.



댓글 :


1. 

음... 같이 헛소리하는 타이밍인 부분이죠?
사실 해석이라는 것도 언젠가 로봇이 훨씬 잘할 것이고, 해석이란 게 전적으로 인간의 필요라는 점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우리는 야구를 볼 때 저게 씽카볼인제 투나씽에서 바깥쪽으로 뺄 타이밍인지 아니면 이 643 더블이 왜 위대한 건지 알 필요가 업습니다. 걍 보면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바둑은 걍 볼 수 없죠. 심리배틀물을 볼 때 이해가 안 가면 재미가 없는 것처럼. 대체로 이해해야 재밌는 싸움은 도태됩니다. 도태되어 왔습니다. 기술이 고도화를 이루면서 애를 써야만 보이는 것들, 바둑은 모르지만 이 행마가 왜 어쩌고 이게 어뜨케 흑집을 살리고 이런 대단한 것들이 어렵게어렵게 해야 보이는 은근한 수가 될수록 사람들 쳐다도 안 봅니다. 

이해해야 볼 수 있다는 건 현대에서 가장 안 대중적인 겁니다. 어차피 사람들 쳐다도 보지 않는 장르였습니다. 본격문학이 그렇죠. 이 새끼들 무슨 실험을 하고 있는지 알고 보는 게 아닌 이상 재미가 없으니까요. 커리가 슛 쏘는 거는 설명이 필요가 없죠. 걍 농구람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해해야 보이는 지적 유희들 어차피 인간이 이해하는 한에서 재밌는 거죠. 기계가 백날 훌륭한 수를 둬봐야 결국 이해 못하면 그 장르 죽을 것 같아요. 상식과는 반대로 게임에서 승리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애초에 기계가 우리보다 바둑을 잘 두는지 못 두는지는 별로 안 중요해요. 놀이로서 바둑을 이해한다면... 알파고는 인간의 수준만큼 멍청해질 필요가 있어요. 안 그러면 인간은 해설 붙이지도 않을 겁니다. 기계도 언젠가 하나도 안 신기해질 거잖아요. 일어나면 비타를 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알파고가 대국한다면 그게 뭐 신기하다고 분석하겠어요. 분석이 필요한 건 분석을 듣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있을 때만... 그런 거잖아요. 

결국 인간이 눈물 따흐흑 흘리면서 해석맨조차 못할 거라는 거죠. 기계한테 자의식이 없을까요? 자의식을 흉내내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구글 신경망 번역이 적당한 성과를 내면 무엇부터 할까요? 다시 특정 작가, 스타일의 문장들 학습해서 번역할 때 스타일을 넣는 걸 실험하지 않겠어요? 그 다음에 코퍼스 분석이든 뭐든 분석 때려서 어쩌고 한 다음에 개인화된 번역까지 제공할껄요? 내가 번역한 것처럼 읽히는 그런 문장이 대령될 텐데 기계한테 자의식이 없다고 할 수 없죠.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방에 중국인이 있는지 로봇이 있는지 알 수 없어요.
없을 겁니다. 인간 고유의 그런 거 없슬 겁니다. 그런 믿음을 일단 버리고 봐야죠.



2.

저는 세이버를 사실 신뢰하지 않아요. 그 세이버 매트리션들의 기본적인 전제는 모든 것에서 개인의 '외적인' 지표는 다 제거하고 개인의 순수한 능력을 계산한 뒤에, 그것들로 팀을 재구성하자! 이런 마인드가 깔려있잖아요. 그 발상의 결정체가 요즘 가장 흔하게 쓰는 WAR같은 지표구요. WAR 높은 애들로 구성하면 결국 우리가 이 시즌 끝나면 몇 승 할 건지 다 알 수가 있다구! 이런 거잖아요. 

여기서는 각 변수의 독립성을 가정하구 있어요. 그러니까 이 친구의 타격감이 다른 친구의 타격감과는 무관하다, 이런 거죠. 근데 그럴 리가 없어요. 애초부터 여기엔 상관관계를 측정하기 위한 최소의 단위, 그걸 설정해놓고 있어요. 그게 바로 슨슈 개인이죠.

우리는 그 슨슈 개인이라는 단위를 통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어요. 승리에 기여하는 목록을 더 많이 추릴 수 있고 실제로 더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근데 그건 말씀하신 것처럼 툴이죠. 우리가 만든 툴보다 더 많이 이해하는 알파고 슨생님 나오시겠죠. 개인으로 환원하지 않고 팀단위의 유기적 분석을 해서 개인단위의 운용 이상을 보여주는 분께서 우리의 밥상을 엎어버리고 머니볼 어쩌고 다 없어지겠죠. 알파고 각동니뮤ㅠㅠㅠㅠ

근데 그래도 괜찮아요. 미래의 타석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계시는 군요. 아닙니다. 로봇이 타석에 들어설 거잖아요. 후훗. (끝내기 범타, 끝내기 병살)


3.
아뇨. 기계맨은 무엇도 이길 수 없어요. 이길 생각이 없어요. 블로그의 기계맨은 아무것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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