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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Mar 20. 2018

'엄마'는 여전히 '희생'의 아이콘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시사회 @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

0. 시놉시스

비가 오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믿기 힘든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수아(손예진 분)’. 그로부터 1년 뒤 장마가 시작되는 어느 여름 날, 세상을 떠나기 전과 다름없는 모습의 ‘수아’가 나타난다. 하지만 ‘수아’는 ‘우진(소지섭 분)’이 누구인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난, 너와 다시 사랑에 빠졌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에 젖은 ‘우진’과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와의 이야기가 궁금한 ‘수아’. ‘우진’이 들려주는 첫 만남, 첫 사랑, 첫 데이트, 첫 행복의 순간을 함께 나누며 ‘수아’는 ‘우진’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데… 기다려 주세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1. 김연수 작가는 말했다.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하나는 주인공에게 욕망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장애물과 역경을 넘어서며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다만 이 방법에는 한 가지 제약조건이 있는데, 그건 바로 주인공의 욕망에 설득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연애소설이라면 주인공이 사랑의 대상을 만나고, 몇 가지 사건을 통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장면을 공들여 묘사해야 한다.


이보다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주인공에게 새로운 욕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걸 뺏는 방법이다. 주인공에게는 참 안된 일이긴 하지만 이야기에 추가적인 설득력을 부여할 필요 없이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서 이야기가 곧바로 출발한다. <테이큰>에서 "I don't know who you are"로 시작하는 리암 니슨 아저씨의 분노 가득한 대사를 떠올려 보자. 자기 딸을 되찾는데 별다른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김연수 작가는 그래서 이 두 번째의 방식이 이야기 구조를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 즐겨 쓰인다고 설명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구조는 독특한 편이라고 평할 수 있다. 아빠 우진, 엄마 수아, 그리고 아들 지호라는 3인 가족에서 엄마를 '뺏었다가 줬다 뺏는' 변칙적인 구조인데다가, 남편과 아내의 회상이 서로를 완성하고, 회상이 다시 현실을 완성하는, 다층적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의 전개는 관람객에게 '익숙한 신선함'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거기에 소지섭, 손예진의 빛나는 비주얼과 아역 김지환 군의 열연이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유머와 감동의 포인트들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하고 있다.


2.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줄여 표현하자면, '크게 실패한 건 없다' 쯤 될 것 같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자면 딱히 대단히 잘 만들었다는 느낌도 없으며, 어딘가 분명히 실패한 지점이 있다는 뜻이다.


가장 먼저 '엄마'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엄마의 부재'를 남겨진 가족 구성원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가 있고 없고에 따라 무엇이 달라지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엄마가 없는 초반부의 아빠와 아들은 아침 식사를 허둥대며 준비하고, 셔츠 단추도 제대로 못 채우는 상태로 등장한다.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에 대한 집착적인 그리움을 표현한다.


'구름나라 펭귄' 동화의 내용처럼 엄마가 등장한 이후에는 달라진다. 아이는 그간 채우지 못했던 사랑을 한껏 채우며 일상을 회복한다. 엄마가 과거의 기억을 되찾으면서 자신이 다시 사라지게 될 것을 깨닫고 가장 먼저 아이에게 계란후라이 부치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엄마는 가까운 사람인 홍구(고창석 분)에게 아들을 위한 부탁을 한다. 하필 그의 직업이 앞치마를 두른 직업인 빵가게 주인이었으며 수아가 없는 동안 우진의 가족을 실질적으로 돌봐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생각해볼만 하다. 홍구는 수아의 존재를 일부분 대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엄마는 가족에게 '사랑'과 '가사 노동'으로서만 존재한다.



물론 이것 또한 사랑의 한 방식이라고 항변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사랑'이군" 하고 끄덕거리게 만드는데는 충분한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우진과 수아의 사랑에 대해 관객에게 어떤 설득을 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아빠인 우진은 학생 시절 수영 특기생이었다. 그러나 신체적인 이상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전부였던 수영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선수의 길을 포기하고, 그 충격에 수아와도 이별한다. 그리고 시골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결심한다.


엄마인 수아는 학생 시절 대단한 우등생이었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이후 갑작스레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결말에서 그 이유가 드러나긴 하지만) 귀향해 모든 걸 잃은 우진의 곁으로 돌아온다. 수아는 우진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와의 사이에서 아들 지호를 낳고 그 후 건강이 악화되어 젊은 나이에 때 이른 죽음을 맞게 된다.


정리하자면 우진에게 사랑이란 그 자체로 '선물'이지만, 수아에게 사랑이란 정상적인 삶을 위한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만 얻을 수 있는 '희생'이다. 그리고 감독은 일방적인 희생으로서 성립하는 불균형에 대해 어떠한 부가 설명도 없이 그저 운명적 사랑으로 포장하는 게 전부다. 이런 비현실성이 성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리틀 포레스트>가 도피의 장소로 시골을 설정했듯,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감독 역시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느 산골짜기를 배경으로 택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여전히 이 영화는 볼만 하다. 주연 배우들의 훈훈한 외모를 감상하는게 좋다면(나쁜게 아니다), 조금은 낯 뜨거운 신파가 내 취향이라면(진심으로 나쁜게 아니다), 결손가정 그 자체를 인정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정상가족으로서의 가능성을 남겨놓음으로서 희망을 찾는 내용이 끌린다면(이건 솔직히 좀 그렇다), 나처럼 이렇게 굳이 꼬아서 보는걸 피곤하게 생각하는 취향이라면(솔직히 내가 이상한 편이다), 그렇다면 적극 추천한다. 그러나 여전히 '엄마'는 '희생'을 통해서만 운명적인 사랑을 찾을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리기엔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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