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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오작 Oct 08. 2024

#13 동녀가 숨바꼭질한 이유

어느 날 김보살의 몸에 한 선녀가 찾아왔다. 


"나 여기에 있으면 안 돼?" 

"안 되지."


선녀의 말에 바로 큰할머니께서 나와 말하셨다. 그러자 선녀는 잠시 큰할머니를 보다가 그대로 물러갔는데,  며칠 후 또다시 그 선녀가 찾아왔다. 


"나 그냥 여기서 머물면 안 돼?"

"안 돼."

"저 점사 진짜 잘 보는데."

"그 아이는 그런 곳이 아니다. 선녀가 여기 내려와 있다는 건 동자-동녀가 있다는 건데, 어디 가고 혼자 있니."

"동녀를 잃어버렸어요."


큰할머니께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선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으신 채로 잠시 계시다 입을 여시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면 찾을 수 있을 거야.”    

 

큰할머니의 말에 선녀는 감사 인사를 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나는 혹시라도 동녀님이 어디서 울고 계시는 건 아닌지, 어디 잘못된 것은 아닌지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잠시 뒤, 한 동녀님이 씩씩거리면서 김보살의 몸에 들어왔다. 선녀님이 찾고 있다던 그 동녀였다.     


“할머니 왜 방향을 이상한 곳으로 가르쳐줘! 이상한 곳으로 가니까 내가 헐레벌떡 뛰어나왔잖아!”

“그러게 누가 숨어있으라고 했니? 내가 그렇게 안 알려줬으면 네가 나왔을까?”     


큰할머니 말에 동녀님은 입을 꾹 다물었다. (*몇몇 동자·동녀님들을 만나 뵌 바로는 뭔가 불리한 상황이 되면 입을 꾹 다물거나, 고개를 최대한 돌려서 외면하시곤 했다.)      


“온 김에 뭐라도 먹고 가련?”     


김애동의 말에 나는 집에 있는 간식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평소 동자님들이 잘 드시는 초콜릿을 꺼내서 드렸더니 맛있게 드셨고, 집에 조청도 있다고 하자 조청도 드시고 싶다고 했다. 조청을 큰 수저로 퍼 올리고, 티스푼으로 흐르는 조청을 돌돌 말아서 드리니 맛있게 드시면서 말했다.      


“우리 엄마도 나한테 이렇게 해줬었어. 그래서 조청 좋아해.”   

   

그렇게 조청을 몇 숟가락 더 드신 동녀는 인사를 하고 선녀와 함께 몸주에게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그 일이 끝난 줄 알았는데, 며칠 뒤 동녀님이 다시 김보살의 몸에 찾아왔다. 몸주인 엄마가 자기를 잘 챙겨주지 않는다고 했다. 전에 먹었던 맛있는 게 생각나서 왔다며 먹고 싶다고 하자 김보살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몸속에 있는 용궁동자님이 내 것이라고 안 된다고 한다면서 두 분이 싸우고 계신다고 했다. (*이 시기는 아직 용궁동자님이 올라가시기 전이었다) 그 말을 들은 큰할머니가 말하셨다.      


“여기가 탁아소냐! 에휴…. 동자야, 지금 이 동녀는 엄마가 잘 챙겨주지 않아서 배고프고 힘든 상태야.”    

 

그 말에 용궁동자님은 얼마 전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난 것인지 간식을 양보했다. 용궁동자님은 정말 먹는 것을 좋아하셔서 김보살이 저녁을 많이 먹지 못하게 할 정도 셨기에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간식을 양보받은 동녀님이 초콜릿을 한 입 먹고는 용궁동자님에게 씩 웃으며 자랑했다.     

 

“맛있겠지~?” 

    

하지만 용궁동자님은 말이 없으셨다. (*나중에 김보살에게 물으니 매우 슬퍼하고 계셨었다고 했다.)    

  

김애동의 몸에 실리신 큰할머니는 조청을 먹을 수 있게 큰 수저로 조청을 떠 올리고, 티스푼으로 흘러내리는 조청을 말아주면서 물었다.   

   

“아가 이름이 뭐니?”

“천신동녀야.” 

    

천신동녀님이 간식을 드시는 동안 이것저것 여쭤봤는데, 몸주(무당)는 천신동녀님, 선녀님 그리고 산군님을 모시고 있다고 했다. 무려 5,000년을 살아온 산군님을. 동녀님도 500살이나 되신 분이었는데, 자기를 잘 모시지 않아 몸주에게 신벌주셨다고 했다. 손님을 받고 있을 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도록 입을 막아버리셨다고. 그리곤 잠시 숨어버리셨던 것이었다. 선녀님과 멀리 떨어지진 않았지만, 찾기는 힘든 곳에. 


그런데, 선녀님과 함께 다시 돌아가보니 자신에게 신벌을 준 동녀님이 괘씸하다 생각한 것인지, 무당은 선녀 그림과 동녀상을 치워버렸다고 했다.     

 

“엄마가 다시 이렇게 조청 해줬으면 용서해 주려고 했는데, 안 될 거 같아. 평소엔 사탕도 줬는데 이젠 사탕도 안 줘. 그냥 올라가려고.”    

 

동녀님의 목소리에 나는 속으로 놀랐다. 몸주에게 조금의 미련도 남지 않은 너무 담담한 말투였기 때문이었다. 원래 쿨하신 분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 조금씩 마음을 흘려보내다 보니 이제는 남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무당은 이제 동녀님과의 인연이 완전히 끊겼다는 것이었다.        

  

동녀님이 올라가려고 하기에 선녀님도 함께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산군님은 잠시 그 무당을 지켜볼 예정이라고. 그리고 선녀님과 동녀님이 잘 올라가도록 힘을 줬다고 했다.   

   

동녀님의 말을 들은 큰할머니 역시 잘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비춰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동녀님은 이제 갈 시간이 되었다며 선녀님과 함께 그대로 원래 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동녀님이 가시고 나서 나는 입을 열었다.      

“산군이라는 큰 신이 계시기에 그분에게만 신경을 쓴 걸까?”

“글쎄, 그래도 점사는 동녀님이 봐주셨을 텐데... 아무튼, 그 무당은 오래 못 가겠다.”      


김애동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의 생각이지만, 그 무당은 아마도 신님들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주시려고 하니 오만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마치, 자기가 무언가라도 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점사를 주지 않는 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알아보는 것보다 먼저 분풀이를 할 만큼. 아니면 큰 신이 계시니 다른 신은 있으나 마나 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궁금한 부분이 많지만, 누군지도,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그 무당에게서 답을 들을 방법은 없을 것 같다.     


 


*** 나름 쿠키 ***

이후 용궁동자님이 다시 오셔서 간식을 드셨는데, 싸웠던 분이 500살이셨다고 하니 “그렇게 나이가 많았어?”라고 깜짝 놀라며 간식을 드셨다. 용궁동자님의 나이는 프라이버시를 위해(?) 비밀에 부치지만, 살짝 대략적으로만 말한다면 천신동녀님의 반도 살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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