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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오작 Oct 01. 2024

#12 신은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

어느 날 김보살과 함께 팔당댐 근처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한 다리를 건너게 됐는데 다리의 시작 부분에 용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곳이 ‘용담대교’였다) 용 조각 뒤로 보이는 커다란 강줄기를 보며 김보살에게 물었다.      


“전에 커다란 강에서 큰 용을 봤다고 했잖아. 그게 여기였나?”

“여기에도 커다란 용이 살았었지... 그런데 먼 옛날 인간이 그 용을 죽여서 지금은 없어. 그래서 그때 커다란 재해가 일어났었지.”

“엥?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갑자기 선녀님이 들어와서 알려주셨어...”     


김보살의 이야기에 나는 긴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녀님! 지금 나오시면 안 돼요! 운전 중이에요!”

“선녀님 운전하실 줄 아신대.”     


선녀님이 운전하실 줄 안다고 하니까 왠지 모를 안도감(?)에 다시 나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왜 용을 죽인 걸까?’      


드넓게 펼쳐진 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과거에는 신을 숭배하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대체 무슨 이유가 있었던 걸까. 과거에 있었을 일들이 궁금했지만, 그때의 내가 알 방법은 없었다.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김보살의 말이 이어졌다.      


“선녀님 말이 중랑천에도 용이 한 마리 살고 있는데 천이 너무 오염돼서 힘을 못 쓰고 있대. 거기를 떠나면 되는 건데, 인간이 좋아서 거길 안 떠나고 있대.”     

 

그 용은 인간의 어떤 점이 좋은 걸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용을 위해 기도를 하는 걸까?     

 

그렇게 한동안 선녀님의 말을 기억만 하고 있다가 문득 어떤 재해가 인간들에게 닥쳤던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강이니 ‘홍수’로 찾아봤는데, 1972년에 남한강에서 대홍수가 일어났다는 내용을 봤다. 그래서 그 기사를 김보살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1972년에 엄청 큰 홍수가 났다는데? 이거 맞아?”

“지금 선녀님이 오셔서 그때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어떤 재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엄청 소리 지르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어. 그리고 한복인 듯 아닌 듯한 옷을 입고 있는데 여자분들은 바지를 입기도 했어.”   

   

한복 같은 복장에 바지를 입었다는 말을 힌트 삼아서 검색해 보니 고구려 시대에 여자들도 바지를 입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고.구.려.시.대.      


100년 전 기록도 찾기 힘들 것 같은데 무려 고구려시대라니. 그래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기록을 찾아봤는데. 기상청에서 만든 <한국기상기록집>에서 힌트를 하나 발견했다.

출처: 한국기상기록집 1.


혹시 이것이 아닌지 김보살에게 물어봤다. “이건가? 잘 모르겠네...” 아리송한 반응을 보이며 다시 핸드폰을 하자 나는 다시 기록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잠시 후 김보살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때 재해로 죽은 사람이 567명이래. 원래 용제를 지냈었는데 오랫동안 지내지 않아서 용이 죽었대. 그래서 재해가 일어난 거고.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들이 잘못한 것을 깨닫고 다시 용제를 지내기 시작했지만, 이미 용은 죽어서 늦었대. 그리고 그 뒤에 전쟁이 일어나서 또 많은 사람이 죽었대.”      


선녀님이 갑자기 찾아오신 거였다.      


“선녀님께서도 내가 글로 쓰려고 하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를 해주신 건가?”

“사실을 알리고 싶으시대. 사람들이 신 탓을 하는데, 우리가 자기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너희가 신을 버린 거라고 알려주고 싶으시대.”     


그랬다. 인간들은 커다란 일에 신의 탓을 하곤 했지만, 신은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 선녀님의 말을 들으며 어떻게 해서든 뒷받침해 줄 만한 근거를 찾아서 함께 증빙하고 싶었지만, 내 능력이 안 되는지 그 기록을 찾지는 못했다. 혹시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때의 기록을 봐 보고 싶다.      


지금 이 글이 올라가는 순간에는 그 기록이 없어서 사실을 증명하진 못하겠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보았다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     

 

나 역시도 눈앞에서 비현실적인 일들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게 100% 실제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아직도 의문이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주의적인 생각이 100% 믿기지 않는다고 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나에게 손해가 올 것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도움이 된다면 될 것으로 생각했을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건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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