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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오작 Oct 15. 2024

#14 인간의 잔혹한 이기심을 엿보다

평소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의 절을 좋아하는 나. 사찰은 왠지 모르게 그냥 가만히 앉아서 있기만 해도 좋은 곳이었는데, 유독 스트레스가 많아진 마음의 안정을 위해 김보살, 김애동과 함께 절을 다녀온 어느 날이었다. 그 절에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절에 들어서자 김보살이 동자님들이 많이 뛰어놀고 계신다고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는 그냥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두리번거리기만 했을 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게 또 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일이 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절을 다 보고 나오는 길에 김애동은 자신의 남친을 위해 금강저 팔찌를 하나 샀다. 색동 실로 끈이 엮어져 있고, 작은 금강저가 있는 귀여운 팔찌였는데 김보살이 그 팔찌를 보고 반응했다.        

   

“그거 내 거야?”

“갖고 싶어? 그럼 가지고 가. 나야 또 사면되지.”          


 아무렇지 않게 팔찌를 내미는 김애동에게 김보살이 말했다.      

    

“내가 말한 거 아냐...”          


나와 김애동이 동시에 이마를 ‘탁’ 쳤다. 김보살 몸에 또 무언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운전해야 하니까 나오시면 안 돼요. 동자님!!!”

“바로 나가셨는지 아무 느낌이 안나.”      

    

바로 나간 건지 아무 느낌도 안 난다는 김보살의 말을 믿고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자마자 김애동은 남친을 만나러 가고 김보살과 나는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뒹굴뒹굴하고 있었는데, 김애동이 남친과 다 놀고 우리 집으로 오고 나서 일이 벌어졌다. 김보살이 또 미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늘 그렇듯, 김보살과 김애동은 마주 보고 앉아 몸속에 있는 무언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김보살의 몸속에 있던 동자님이 나오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가, 어디서 왔누?”

“00사에서...”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왜? 신줄이 있는데? 신줄이야. 우리 되게 용해.”

“우리?”

“우리 세 명 있어. 우리 되게 잘 맞춰.”

“아가, 다른 엄마가 있는데 왜 여기로 왔어?”     

“그 엄마 싫어. 그 엄마한테 가기 싫어.”           


동자님은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제까지 만났던 동자님과 애기씨들은 엄마를 무척 좋아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싫다는 말을 듣는 게 놀라웠고, 이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던 나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다.    

       

“그 엄마가 왜 싫어?”

“엄마 매일매일 와서 기도해. 너무 심해.”

“기도 잘하면 좋은 거지. 왜 싫어?”

“내가 금강저 사달라고 했는데, 그 팔찌 만 한 거. 그런데 이만한 거 샀어!”        

  

동자님이 양손으로 뻗으며 설명한 금강저의 크기는 성인의 팔목부터 팔꿈치 정도의 길이였다.    

    

“나는 팔찌 사달라고 했는데, 큰 게 더 좋다면서 큰 거 샀어.”

“엄마가 너희 말 잘 듣지 않는구나.”

“응. 엄마 신줄이 아닌데 신엄마가 무당으로 만들었어... 그래서 잘 안 들려.”  

        

동자님의 말에 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사기꾼.’ 그리고 '무당공장.' 사람들을 속여먹는 무당들 때문에 무당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 같았다. 이런 걸 볼 때면 나는 또 한 번 신이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무당은 ‘돈’에 눈이 멀면 안 된다고, 그저 신의 말을 전하며 인간을 돕는 존재라고 알고 있는데, 이렇게 사기 치는 무당들이 왜 버젓이 신당 앞에 있을 수 있는 걸까? 왜, 그 신은 그 무당을 때리지 않는 걸까? 아끼는 존재일수록 때로는 더 엄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으실 텐데. 그래서 눈앞에서 신이라는 동자를 보고 있는데도,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사사로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김애동은 부채를 동자님에게 살랑살랑 부치며 엄마에게로 이끌어주었다. 잠시 후, 김보살이 다시 돌아왔는데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왜 동자님의 기운이 아직도 느껴지지? 아직 있나?”   

       

계속 방 곳곳을 둘러보는 김보살의 모습에 김애동이 다시 앞에 앉혔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불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동자님이 있었다. 세 동자님 중 막내 격이었는데, 손을 놓쳤다고. 그래서 돌아가라고 했는데 길을 모른다는 말에 잠시 이야기를 더 나눴다. 이 동자님은 형과 달리 엄마에게 호의적이었다.       


“우리 엄마 기도 엄청 열심히 해. 잘하는데...”

“그런데 너희 목소리를 잘 못 듣는다며.”

“응... 그래서 조금 속상해.”

“그래서 도와달라고 안 간 거야?”           


동자님은 속내를 들킨 게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엄마를 내가 어떻게 알고 만나?”

“우리 엄마 매일 4시에서 5시 사이에 그 절에서 기도해. 하얀 옷 입고 기도해.”    

      

도와주려는 마음을 느꼈는지 동자님이 반색하면서 말했다.         

  

“알겠어. 우리가 모레 그 시간에 갈 테니까 우리 알아보고 인사해 줘야 해?”       

   

동자님은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기 때문인지 방 안을 돌아다녔는데, 그러다 한 가지에 시선이 꽂혔다. 바로 짱구 피규어. 편의점에서 랜덤으로 뽑는 그 피규어였는데, 빨간색 파워레인저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짱구 피규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걸 가지고 가서 손에 쥐고 놀았다.    

  

그리고 단골 카페에서 음료를 시키면 늘 하나씩같이 주는 미니 약과들. 약과를 좋아하시는 건지 드리니 맛있게 드셨다.           


“헤헤... 이거 먹은 거 형한텐 비밀로 해야지.”     

     

그렇게 약과를 3개 정도 드셨을 때, 김애동이 형을 불렀는데 두 사람에겐 형이 화들짝 놀라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형이 보였던 것일까, 동자님은 그대로 인사를 하고 김보살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다음날, 내일 3형제 동자의 엄마라는 분을 만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셋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는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내가 말했다.   

   

“‘정말 미친 사람이 하는 말인 것 같지만, 당신 동자님이 저희한테 도와달라고 하셔서요... 잠시만 참고 저희 말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구구절절이 말해야 하나...”

“어떻게 봐도 정신 나가 보일 것 같아... 거기다 내가 도와줘야 하는데, 그걸 잘 따라줄지도 모르겠다.”      


김애동이 걱정되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내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분이 아예 동자말을 못 듣는 것은 아닌 것 같으니, 내일 절에서 만남이 있을 거라고 귀띔 정도는 미리 해달라고 하면 어때?”    

  

내 말에 김애동은 그래야겠다며 자세를 잡고 3형제 동자님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자님들은 김애동의 부름에 오지 못했다.    

  

“애들이... 잡혀 있는데...?”     


김애동의 말에 김보살도 눈을 감았다. 곧 김보살의 눈에 무언가 보였는지 김보살이 인상을 찌푸렸다. 

   

“응... 세 분이 옹기종기 모여서 울고 있어. 무서워하고 계셔.”

“그 신내림 해줬다는 무당이 신을 묶어버리는 굿을 했네.”     


동자들을 찾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그 무당은 어디 가고, 돌아오자마자 세 동자들이 떠나지 못하게 묶어버렸다니. 나는 그 말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엄마가 싫다면서 가기 싫다고 울먹이던 첫째 동자님이 생각나며 가슴이 아팠다. "여기 있으면 안 돼...?"라고 말하셨던 그 모습, 그 대사가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큰할머니 엄청 화나셨네. 신을 묶은 그 신을 찾아가셨는데, 그 무당도 우리가 찾은 거 눈치챘어. 우리가 자기 신한테 뭔가 하려니 눈치챘나 봐.”    

  

큰할머니는 말 그대로 굿을 했다는 신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질질 끌고 오셨다고 했다. 그리고는 정말 호되게 때렸다고.      


‘신이... 신을 묶어버리는 악랄한 행위에 응해줬다고...?’     


또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아직 신에 대해서 깊은 믿음이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순간 김애동, 김보살 그리고 나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세 동자님들을 보내야 했다는 미안함과 안타까움.  

    

“동자들을 풀어줄 방법은 있지만 매우 힘들고, 번거로워질 거다.”

     

우리의 마음을 느낀 것인지 큰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김애동은 잠시 고민에 휩싸였다. 그리곤 아직 자기가 애동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떠올리며 눈을 꾹 감았다. 도와주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거였다. 대신 큰할머니께서 가끔 그 무당의 신을 때릴 거라고 하셨다.   

   

“동자님들의 슬픔이 너무 깊게 전해져 와...”     


김보살은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렇다고 도와달라고 할 수도,  찾아갈 방법도 없기에 우리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김애동과 김보살은 그 절에 다녀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3형제의 엄마가 늘 기도하러 온다던 그 시간 동안 그곳에서 죽치고 기다려봤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 사람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혹시 만나면 이거라도 전해달라고 들고 갔었는데...”     


김보살의 손에는 짱구 피규어가 들려있었다.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어주길 바라며 들고 갔던 작은 피규어. 그 피규어를 가지고 놀던 동자가 생각나 울컥했지만, 그저 그것뿐.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었다.  

    

지금도 3형제 동자님들에게 ‘엄마에게 돌아가셔야죠.’라면서 다독이던 그 순간을 도려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다고 우리가 모실 수도 없기에 결국 가시라고 말해야 했을 그 상황이 화가 난다. 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다른 존재를 해 하는 걸까? 3형제 동자님의 엄마라는 분은 이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걸까? 신엄마일 그 무당의 말에 속고 있는 걸까? 그 어떤 것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이 글이 3형제 동자님의 몸주라는 분에게 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막내 동자님이 손에 꼭 쥐고 놀았던 짱구 피규어 (*우측 빨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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