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처럼 김애동, 김보살과 함께 심야괴담회를 보려고 할 때였다. 그날 김보살은 몸이 좋지 않아서 잠들어 있었는데, 김애동은 김보살에게 옆으로 가라고 했다가 옆에 있는 빈백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런 건 왜 보는 거니?”
영상을 플레이하려던 나는 그대로 멈추고 김애동을 바라보았다. 신이 오신 것이었다. (*당시 김애동의 많은 신님 중 어떤 분과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어 신님이라고 표기했다) 김보살은 잠들어 있었기에 그렇게 신님과 나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소소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제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은 없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 친구가 정말 갑자기 죽었는데 신이 사랑해서 데려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신이 정말 그러신가요?”
“실제로 데리고 가는 신도 있지. 그런데 네 친구는 그런 건 아니란다. 신 중에는 사랑해서라기보다는 ‘갖고 싶다’라는 소유욕으로 사람을 데리고 가는 신도 있단다. 그렇게 데려가면 평생 옆에 두면서 자기를 사랑하라고 하지. 그렇게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을 그 신을 사랑하기를 강요당한 채로 살아야 한단다. 그런데 네 친구는 아주 잘 있구나.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네. 그리고 신이 사랑하는 인간이라면 인생을 살고 오는 것을 기다려준단다.”
정말 그런 신도 있다는 말에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 친구는 위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말에 안심됐다. 그리고 또 다른 의문을 신님께 물었다.
“그럼 왜 나쁜 짓을 하는 악을 데리고 가지 않으시는 건가요?”
“그건 정해진 수명이 있기에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란다. 현세에서 악을 저지른 사람은 죄를 깨닫고 참회를 할 때까지 죽어서 벌을 받는단다. 그 시간은 무한정 한 것이 아니라서 정해진 기간 안에 깨닫지 못하면 다시 태어나서 그 업을 청산해야 하지. 그렇기에 더 힘든 삶을 살게 된단다. 그리고 죽어서 자기가 왜 고달픈 삶을 살게 되었는지, 전생을 알게 되지. 만약 힘든 삶을 살고 있을 때 힘들다고 악을 저지르면 계속 그 업이 쌓이게 되고, 다시 태어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단다. 최종적으로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평안인데 계속해서 악을 저지르는 게 반복되면 신의 품으로 돌아오는 게 점점 멀어지는 것이지. 그런데 이건 신이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그렇게 선택한 것이란다. 신은 언제든 품에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어.”
신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과거 한 동자님이 떠올랐다. 인간의 무분별한 산 개발로 인해 동자님은 더 이상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점점 힘이 약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매우 슬퍼하시면서도 “인간을 미워하진 않지만, 인간이 하는 행위가 밉다.”라고 하셨다.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으면서도 인간을 사랑한다 하셨다. 그 외에도 경험했던 일들이 떠오르며 또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전부터 신님들은 인간들에게 무언가 베푸셨겠죠? 제가 경험한 바로는 신님들은 제가 드리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그런데 왜 인간들은 신님들을 내치게 됐을까요?”
“화가 났을 거다. 신에게 와서 빌어보니 작은 건 들어주고 큰 건 안 들어주었을 테니까. 하지만 신도 업보가 있어서 모든 걸 들어줄 수는 없다. 그러니 왜 이건 안 들어주냐고 화가 나서 신을 등졌을 거야. 그리고 옛날에는 자연재해가 신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잖니. 우리는 신에게 이렇게 잘했는데 왜 신은 우리에게 벌을 주냐며 원망한 거지.”
과거 선녀님이 나에게 글을 써줬으면 한다고 하면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인간들이 신 탓을 하는데 신은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고. 인간이 신을 버렸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하셨던 말. 내가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는 사이 신님이 나에게 물었다.
“얘야, 무당들이 신을 받지 않았을 때 신들이 왜 무당들을 때리는 것 같니?”
“받지 않아서 화나신 것 아닌가요?”
“나 여기 있다고 알아달라고. 나 좀 봐 달라고 그러는 거다. 외면하지 말라고, 여기 있다고.”
자신이 버젓이 있는데도 자신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인간들에게 신들도 상처받으신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신을 오롯이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저는 신을 100% 믿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신님들은 미래를 보실 수 있기에 저에게 뭐가 그리 걱정이냐 말씀하시지만, 저는 당장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걸요. 그렇기에 미래가 불안하고, 신님들의 말을 온전히 믿으면서 가기 힘듭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너희들은 언제나 신에게 의문을 가져도 된단다. 하지만 의심은 하지 말 거라. 그럼 된다.”
이날 그렇게 신님과 약 2시간가량 대화를 나누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죄송스럽게도 기억나는 이야기들은 이렇게 인 것 같다. 어쩌면 불손할지 모르는 나의 질문에도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해주신 신님께 감사드렸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