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살과 같이 태안에 놀러 갔을 때 일이다. 15화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태안에 도착한 우리는 해가 진 뒤 창가에 티테이블을 옮겨 놓고 용궁동자님이 즐겨드시던 간식을 올려 두었다. 그리곤 김보살이 용궁동자님을 부르면 용궁동자님이 오셔서 간식을 드셨는데, 용궁동자님이 올라가신 뒤로는 김보살의 몸에 오래 계실 수 없어서 김보살 몸에 들어와 드시지는 못하셨다. 그래서 나는 김보살이 말해주는 것에만 의지해 용궁동자님이 간식을 잘 드시고 계시는지,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상상으로 대체해야만 했다. (*쉽게 찾아오실 수 있도록 미리 몇 월 며칠 태안 쪽으로 갈 거라고 지도로 보여드렸었다)
동자님이 간식을 다 드시고 가신 뒤, 일찍 잠들기 싫었던 우리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유튜브 보면서 간식을 먹기로 결정했다. 김보살, 김애동 그리고 나는 평소에도 무당 관련 유튜브나, 폐가 관련 유튜브를 종종 보곤 했다. (*폐가를 볼 때면 김애동과 김보살은 진짜 귀신이 있다 없다, 어디에 있다 이런 것들을 말해주곤 했고 늘 결론은 '왜 저런 곳을 가는 걸까...'라는 걸로 끝난다.)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무당들이 폐가를 찾아가는 유튜브를 틀고 영상을 보기 시작할 때였다. 영상을 시작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너무 아파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려고 김보살을 본 나는 멈칫했다. 김보살이 화면을 응시한 채 오른손을 무언가 쥐고 있는 것처럼 손을 오므린 채로 짧게 흔들었다 멈추고, 짧게 흔들었다 멈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방울을 흔드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나는 소리쳤다.
“흔들지 마!”
신줄을 닫기 위해서 점 관련 된 것을 직접 하면 안 되는 사람이 방울을 흔들다니. 내 외침에 김보살이 말했다.
"누가 나한테 씌었었어. 이거 더 보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그대로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그리곤 김보살은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눈을 떴다.
"지금 선생님이랑 씌었던 신이랑 싸우셨어. 그분은 이 영상이 진짜 지금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셨었나 봐. 귀신이 너무 많다고 퇴치해야 한다고 하고, 선생님은 저건 영상이라고 이미 다 지난 일이라 못한다고 그러면서 싸우셨어. 선생님이 이기셨고."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용궁동자님이 깜짝 놀라서 걱정돼서 보러 오셨다가 가셨어."
우리에게 일이 생기자 바로 와주셨다는 말에 바다를 보며 용궁동자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인사했다.
이후 이 일에 대해서 김애동에게 카톡으로 보고했는데, 그런 걸 음기가 강한 바다 옆에서 왜 보냐고 혼났다. 그러면서 김보살은 앞으로 무당이 직접적으로 방울을 흔든다거나 무언가 하는 것을 보면 안 된다고 했다. (*폐가 체험 영상 보는 걸 즐기는 김보살은 매우 시무룩했다.)
이렇게 일이 일단락된 줄 알았는데, 사건은 그 뒤에 터졌다.
며칠 뒤, 김애동이 김보살이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나한테 전해왔다. 김애동이 말하길, 그날도 아침에 신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호랑애기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단다.
“저기 화난 할머니 누구야?”라고.
“누구요?”
김애동은 의아한 상태로 방에서 나와 김보살 방 쪽으로 갔다고 했다. 김보살은 일을 하고 있다가 김애동과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눈빛이 변해서는 김애동의 신당으로 달려갔다고. 그리곤 신상들이 모셔져 있는 서랍장 앞에 턱 하고 무릎을 꿇고 앉더니, 무구가 담겨 있는 서랍을 열고는 방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고 했다. 김보살의 뒤를 따라왔던 김애동은 깜짝 놀라서 왼팔로 김보살의 목을 감고, 오른손으로 방울을 못 잡게 김보살의 손을 눌렀다. 그러자 김보살이 씨익씨익 거칠게 호흡하더니 김애동을 뿌리쳤고, 김애동이 방바닥으로 쓰러졌다가 일어난 순간 김보살의 손에는 방울이 들려있었다고 했다. 김애동은 필사적으로 다시 달려가 다시 김보살의 몸을 속박했고, 다행히 방울을 흔들지는 못했단다.
몸을 속박당한 채 씨익씨익 숨을 고르는 김보살의 몸에 힘이 좀 빠지자 김애동이 방울을 손에서 빼 옆에 내려놓고는 소리쳤다고 했다.
"너 누구야!! 어디서 왔어!"
그러자 김보살의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히히, 히히히히."
계속해서 누구냐고 묻는 물음에도 김보살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계속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고 했다. 김애동은 그 순간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혹시라도 악귀가 든 것은 아닐까 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김보살의 몸에서 꺼내야 했기에 다시 외쳤다고 했다.
"너 누구야!"
"얘가 날 가뒀어!!"
그 말에 김보살 몸속에 갇힌 존재가 신이란 것을 깨달은 김애동은 그대로 옆으로 눕혔다고 했다. 다행히 김보살은 김애동의 손길을 따라 그대로 바닥에 누웠고, 김애동은 김보살의 가슴에 오른손을 올리고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고.
"내가 누구로 보이니."
“할머니... 할머니...”
김애동의 몸에 실린 큰할머니의 말에 김보살 속 존재가 ‘할머니’를 중얼거렸다고 했다. 그리고는 조금 차분해진 것 같자 큰할머니는 그 존재에게 물었다.
“이곳에 왜 왔니.”
“갑자기 빨려 들어와서 이곳에 갇혔어요. 나를 보고 감히 방울을 흔들었어요.”
"어떻게 해야 그 화가 풀리겠니."
"너무 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방법이 없겠니?"
"제 이야기를 꼭 글 쓰는 아이에게 전해줘서 글로 써주세요. 이렇게 신이 인간에게 갇혀서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게 알려지도록 써주세요.”
"그러도록 하마."
그렇게 약속을 하고 김애동이 부채로 바닷바람을 불어 용궁할머니가 잘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용궁할머니가 말한 대로 나에게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이야기를 들은 나는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우리가 영상을 보고 있을 때 들어왔던 신은, 과거 용제를 치르던 큰 무당이었다가 지금은 바다를 지키는 수문장 같은 신이 되신 상태라고 했다. 그런데 귀신들이 많이 나오는 영상을 보고 지금 이곳에 귀신이 많다고 착각하여 신줄이 있는 김보살의 몸에 들어왔다고. 그래서 귀신을 퇴치하려고 방울을 흔들었는데, 영상이니 그 귀신들에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었고, 하필 그 신님이 바라봤던 시선 쪽에 계시던 용궁할머니가 영향을 받아 강제로 김보살의 몸에 들어오셨다고 했다.
그런데 김보살의 체질이 특이 체질이라, 자신의 약한 몸을 보완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주변의 귀신이나 신들을 몸속으로 끌어당겨 가두고는 그대로 삼켜 자신의 에너지로 쓴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용궁할머니 입장에서는 강제로 몸에 가두더니 그대로 잡아먹을 생각을 하니까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 올랐던 것이었다.
용궁할머니가 급이 다른 강한 신이시다 보니 김보살의 공간에서 빠져나오셨고, 김보살이 가장 두려워하는 신줄을 열어 버리려고 방울을 흔들려고 했던 것이라고. 신줄을 강제로 열어버리고 용궁할머니가 몸을 빠져나가버리면 그 안에 귀신이 들어찬다고 했다. 김보살이 받아야 했던 신은 못 오는 상태인 데다가 그 신도 엄청 큰 신이었기에 그걸 채우기 위해 엄청난 수의 귀신이 들어앉았을 거라고. 그러면 김보살은 매일 같이 그 귀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미쳐가다가 결국 죽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올라가지도 못한 채 원귀가 되어 이승을 떠돌아야만 했을 거라고 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김보살 몸에 용궁할머니가 갇히셨는데, 깜짝 놀라서 오셨던 용궁동자님이랑 선생님은 왜 모르셨을까?"
나의 의문에 선생님이 말해주셨다. 김보살의 몸속에 갇히면 그 공간은 그 누구도 알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강한 신이 아니라면 강제로 빨려 들어와 갇힌 채 그대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김보살의 업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신은 인간에게 이런 힘을 주신 것일까? 아예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몰랐다면 발생조차 하지 않았을 신의 고통과 분노가 너무 무거운 것 같다.
덧.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김애동의 애기씨가 김애동의 몸에 실려서 놀고 계시던 중 김보살의 눈을 보더니 "이게 누구야?"라고 해서 몸 안에 있는 존재를 알게 됐는데, 그 존재는 귀신이었다. 귀신이 갑자기 자기가 빨려 들어왔다면서 어차피 못 살아나갈 거 빨리 죽여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언제까지 갇혀있어야 하는지 모르느니 그냥 죽여달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때 자기만 있는 게 아니라면서 한 산신도 빨려 들어와 있다고 했다. 김보살의 몸에 빨려 들어오는 순간 싸우고 있던 산신님을 잡고 같이 들어왔다고...
산신님은 김애동과 이것저것 꺼내주는 것에 대한 대가에 대한 딜을 하셨는데, 꺼내드리는 대가로 산신님이 소중이 키우시고 있는 산삼의 위치를 알려달라 말하는 김애동에게 양아치라고 하시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하셨고, 김보살의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 막으려는 신줄이 혹시라도 열리지 않도록 더 단단하게 막아주시는 것으로 합의 볼 수 있었다. (*강제로 갇히게 된 산신님은 우리와의 대화에서 ‘불쌍한 나...’라며 속상해하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