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무섭도록 질긴 악연을 끊어내다_2

by 오작오작

도화선녀님 덕분에 내게 골칫거리 중 하나였던 인연이 끊겼다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딱 하루뿐이었다. 매일같이 내 핸드폰에 뜨던 이름이 더는 뜨지 않아 행복해하던 나를 조롱하듯이 바로 또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미팅을 끝내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남아있는 부재중 전화. 그리고 그 번호가 그 사람이라는 것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부재중 이력을 지우고 그대로 주머니 안에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평소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놀았던 나지만 오늘만큼은 오늘 미팅 때 나왔던 일들을 정리하자 싶었다. 그런데, 왜 때문인지 그 이름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왠지 연락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전화를 걸 용기는 나지 않았다. 천천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카톡 창을 열었다.


- 미팅하느라 진동으로 했더니 전화 온 줄 몰랐어. 무슨 일이야?


그 카톡에 대한 답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답은 나에게 최악의 이야기 중 하나였다.


여느때처럼 전화를 건 그 사람은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 문장으로 내게 말했다. 정리하자면, ‘자살 기도를 해서 응급실이다.’였다. 손끝 하나로 너무나 가볍게 지울 수 있었던 부재중 이력의 무게가 수만 배로 늘어나 내 가슴에 쿵 하고 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 트라우마를 가둬두었던 두꺼운 벽을 너무 쉽게 깨트렸다. 나에게 전화로 유언을 남기고 자살 시도를 했던 한 언니와의 과거. 다행히 구조대원 분들이 빠르게 언니를 찾아내서 지금은 아이도 낳고 건강하게 살고 있지만, 그날의 일은 나에게 큰 트라우마 중 하나였다.

대체 왜 이 인연은 끊어지지 않는 것일까.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김보살과 김애동에게 찾아가 있었던 일을 말했다. 도저히 끊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언제쯤 끊어지는 거냐고. 그러자 갑자기 김보살의 몸에 한 동녀님이 찾아오셨다.

“누구세요?”

“도화동녀야. 인연 이야기하길래 찾아왔어.”


도화선녀님을 모시는 분인데 인연이 안 끊어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신 것이었다. 동녀님께서는 집을 여기저기 둘러보시다가 가위를 찾아서 손에 쥐고서는 나에게 그 사람을 떠올리라고 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지 더 떠올리라는 말에 눈을 감고 억지로 그 사람의 얼굴을 쥐어짜듯 떠올리고 있자 귀 옆에서 ‘싹둑’하고 가위로 자르는 소리가 들렸다.

“됐어! 원래 인연의 끈이 엉켜두게 만들어 놨거든. 그러다가 끊기는 건데, 그게 안 끊겨서 엉킨 곳 앞으로 잘랐어. 그럼 이만 갈게!”

(*나중에 동녀님이 줄을 끊으려고 하실 때 같이 본 김보살이 말하길, 인연의 끈이 마구 엉켜있는 부근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끊어지지 않게 한 검은손이 움켜쥐고 있었다고 했다.)

언제 끊어지는 것인지 전전긍긍하던 차에 아예 인연을 끊어주셨다니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그 가벼운 마음은 채 하루를 가지 못했다.

그날 밤, 문수문수님이 찾아오셨을 때 나는 인연의 끈이 끊겼다고 자랑했는데 문수문수님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거 끈질길 텐데...”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ㅠㅠ”

“그거 잘린 부분이 지금 묶여 있어. 그만큼 그 아이의 집념이 강해. 다시 도화동녀가 오면 아예 태워달라고 해.”

“네...”


그날 이후, 도화동녀님이 오시기를 기다렸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연락은 또다시 시작 되었다. 무서웠다. 또다시 연락을 안 받았다가 저번처럼 또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부재중이 뜬 날 그런 사건이 있었던 것이 우연이고, 그 사람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 사람의 목숨이 하나의 족쇄와도 같았다.

그리고 며칠 뒤 김애동, 김보살과 함께 수다를 떨다가 내가 너무 힘들다고 이 인연이 너무 질기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는데, 김애동이 갑자기 누가 자기한테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고 누구 없으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김보살의 몸에서 나와 김애동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슴 쪽에 누가 앉았구나. 눌러앉으려는 건 아니고, 방문한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김보살의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기 때문에 신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면서 누가 왔는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때 갑자기 김애동이 선생님께 말했다.

“할머니, 잠시 뒤로 가 있어.”

김애동의 몸에 방문하신 분이 김보살의 몸에 들어가기 위해 선생님께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김보살의 몸 상태 때문에 못 들어오신 것인지 다시 김애동의 몸에 들어가셨다. 그리곤 나와 김보살을 보며 말했다.

“이 언니는 몸이 안 받고, 이 언니는 받지를 못하네.”

선생님께서 김보살의 몸에서 나와 누가 온 것인지 보려 하는데, 계속 제대로 보질 못하시자 김애동의 몸속에 계신 신님이 조금 속상한 듯이 말씀하셨다.


“할머니, 나 인연을 관장해. 도화만 인연을 관장하는 게 아니야. 인간의 결혼을 관장하고, 신의 결혼을 관장하고. 인간관계도 하고... 할머니 나 못 알아보면 배신이야.”

결국 선생님께서는 보이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하셨고, 인연을 관장하는 신님은 조금 삐지신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내 인연을 끊어주러 왔다고, 그 아이 몸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셨다. 그러자 잠시 김보살의 몸에 기운을 넣어주셨고, 이내 인연을 관장하는 신님이 김보살의 몸에 들어오셨다.

“음... 어디 보자... 불에 안 타네...?”

인연을 관장하는 신님은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시고는 내 뒤에서 양 손바닥을 보이도록 팔을 살짝 벌려 내리신 채 눈을 감으셨다가 뜨면서 말하셨다.

“천신의 번개를 내리쳤는데도 안 끊기네. 그럼 잘게 잘라 볼까?”

다시 눈을 감으신 신님은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유 징그러워. 으 징그러워...”

(*나중에 김보살에게 물어보니 인연의 끈이 거의 비브라늄처럼 단단하게 생겼는데, 잘게 자르니까 손이 쑤욱 나와서 잘게 자른 상태의 끈을 한번 훑었고, 그러자 다시 원래 대로 인연의 끈이 이어졌다고 했다. 이후 곧바로 인연의 끈 주변으로 스프링처럼 손이 빙글빙글 감더니 내 쪽 인연의 끈 시작 부근을 잡았다고.)

신님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시더니 말했다.


“그 언니 손으로 일해야 하지?”라고 하셨는데 그렇다고 하니 잠시 다른 신님들과 상의해 보고 오신다고 하시곤 사라지셨다. 그러자 김애동의 용궁애기씨께서 나오시며 말하셨다.


“그 언니가 죽거나, 아니면 그 언니 옆에 붙어있는 아줌마(*영)를 죽이거나.”

“손을 자르려고 하시는 것 같던데...” 김보살이 말했다.

“손을 자르는 게 제일 낫긴 해. 그럼 그 실체 손도 잘릴 거야.”

“손이... 잘려요?!” 깜짝 놀란 내가 말했다.

“아니! 진짜 손이 잘린다는 게 아니고, 손으로 일을 다신 못 할 거야. 그 언니 악귀가 아주 득실득실 해.”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에게 손으로 하는 일을 못 한다는 건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게 어떤 심정일지 예상이 되기에 그 방법은 차마 시도하겠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근데 저한테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예요?”


신님들이 인연의 끈을 자르는 데에 힘들어할 만큼 커다란 집착이 왜 있는 것일까. 그것도 몇 번 보지 않은 나에게.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여쭈었다.


“이 악귀들이 언니를 봤으니까. 더 가까이 친해지려는 거지.”

“저를 잡아먹으려고요?”

“응. 그리고 언니를 잡아먹어야 그 언니가 살아. 언니는 액받이야.”

“무섭네요...”

“그 언니는 죽어서도 언니한테 붙으려고 할 거야. 그 언니야의 최고 미련이 언니야.”


그러면서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친하다는 동생을 통해 그 사람의 부고 소식을 듣더라도 장례식장엔 찾아가지 말라고 했다. 나에게 바로 붙을 거라고. 소름이 돋았다. 몇 번 만나지 않은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집착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잠시 후 인연을 관장하는 신님이 임시방편이라며 나에게 기운을 넣어주셨고, 이것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보일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일단은 차단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 사람에게서 카톡이 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숨부터 나왔다. 카톡을 읽어야 할지 말지 망설이는데, 희 동자님께서 찾아오셨다.

“문을 계속 두드렸는데 반응이 없더라?”

“제가 인연을 끊는 것 때문에 좀 바빴어요.”

“그래? 손 좀 줘봐.”


희 동자님은 내게 손을 올려 기억을 읽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눈을 뜨며 말하셨다.

“그거 안 끊어져. 근데 언제 연락 왔어?”

“방금요... 카톡 왔었어요.”

“사념이 묻었다. 어깨 위에. 신녀 누나한테 털어달라고 해.”


그 말에 난 바로 김애동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애동은 부채로 내 양어깨와 머리를 치고는 부채로 바람을 부쳐 줬다. 그리고 희 동자님께서 김보살의 가방에서 성수 통을 꺼내더니 김애동에게 주며 나에게 뿌려주라고 하셨다. 김애동은 내 머리와 양어깨에 뿌렸고, 그걸 지켜보시던 동자님은 김애동에게 앞으로 성수 통을 하나 준비해서 가지고 다니라고 했다. 지금처럼 쓸 일이 있을 거라면서. (*그 말에 김애동은 며칠 뒤 성당에 방문해 성수 통을 구입했고 쭉 들고 다니고 있다.)


성수를 맞으며 하루라도 빨리 인연을 관장하는 신님께서 방법을 찾아와 주시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며칠 뒤, 인연을 관장하는 신님이 회의를 끝내고 김보살의 몸에 내려오셨다.

“우리가 그 아이의 생명을 앗을 순 없어. 그리고 순리도 거스를 수 없고.”

“제가 그 사람과 인연이 생기는 게 순리인가요?”

“아니. 그 아이가 가야 할 곳. 그래서 우리가 생각한 방법이 상제의 힘을 빌리는 거야.”

“상제님이요?”

“응. 상제의 지팡이로 그 인연의 끈을 꾹 누르면 그게 점점 얇아지다가 끊길 거야.”

“그런데 상제님을 어떻게 받죠...”
“직접 상제가 올 순 없으니까 동자를 보낼 건데, 상을 최대한 귀엽게 꾸며놔. 초코랑, 초코 우유 같은 걸로. 그럼 그날 동자가 상제의 지팡이를 들고 와서 인연의 끈을 밟은 채 지팡이로 꾹 누르고 있을 거야.”

“그럼 그게 끝난 뒤엔 상제님께 어떤 걸 드려야 할까요?”

“보통 해산물을 바치지. 그런데 인연의 끈이 매우 질겨서 오래 걸릴 거야. 내가 그렇게 질긴 건 처음 봤다.”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으시다가 김애동을 보더니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셨고, 나를 보고는 단아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 머리 위를 보시고는 이미 사관모를 쓰고 있어서 다른 길로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면서 잘 있으라 말씀해 주시고는 가셨다.

이후, 나는 매우 분주해졌다. 내 인연의 끈을 끊어줄 동자님이 오시는데 최대한 잘 모시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힌트는 오로지 초코... 더 정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바로 B사의 지붕동자님이셨다.


인연을 관장하는 신님이 오셨던 다음날 지붕동자님이 찾아오셨는데, 상제님을 모시는 동자님을 아시냐고 하니 안다고 하셨다. 그래서 혹시 좋아하는 음식을 아시냐고 여쭤보니 정말 최선을 다해 기억해 내주셨다.

“설탕으로 만든 건데... 씹으면 바사삭 거려. 이름이 머... 머...”

“머랭이요?”

“어 그래! 그거 맞아! 그리고 초코샌드위치 같은 건데... 오예스랑 비슷해.”

“초코샌드위치요?”

“응. 위에는 바삭하고 가운데는 초코가 있어.”


위에는 바삭하고 가운데는 초코라는 말에 김애동과 내가 열심히 그 디저트가 무엇인지 고민하다 외쳤다.

“혹시 마카롱이요? 이거 맞나요?”


나는 핸드폰으로 마카롱을 검색해서 보여드리니 맞다고 해주셨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거 있는데, 먹으면 쫀득쫀득해.”

쫀득쫀득한 것이 무엇일까. 김애동과 나는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캐러멜, 찹쌀떡 등 말해봤지만 오답만 쌓일 뿐이었다.


“나라 이름 같은 거였는데... 브라질 같은 거.”

갑자기 내 머릿속에 전구가 켜졌다.


“브라우니!”

“맞아! 그거 제일 좋아해. 거기에 귀엽게 그림 그려서 먹더라고.”

“어... 그림 잘 못 그리는데...”

“그 동자는 엄청 기분파라서, 기분이 좋아야 힘을 더 잘 써.”

“열심히 그려보겠습니다!”


내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지붕동자님은 웃으면서 열심히 해보라고 하시곤 가셨는데, 잠시 후 김보살에게 그 동자님이 코끼리를 좋아한다는 정보도 전해주셨다.

다음날, 단골 카페에서 브라우니를 사고 쿠팡에서 그림 그리기 용 초콜릿 펜도 사서 상제님을 모시는 동자님을 모시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했다. 그리고 오시기로 한 날, 두 번의 시도 끝에 브라우니 위에 코끼리를 그려놓고, 마카롱과 함께 캐릭터 머랭도 구입해서 차려놓으니 오시자마자 매우 좋아하셨다. 오신 동자님은 상제님을 모시는 동동자님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대접받는 거 처음이야! 인간들은 늘 소만 바치더라.”라고 하시면서 맛있게 드시기 시작했다.


브라우니 그림을 보시면서 아까워서 어떻게 먹냐고 하시더니 전자레인지에 좀 돌려오라고 하셔서 돌린 뒤 드시기 편하게 잘라드리니 매우 맛있게 드셨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야 좀 더 쫀득하다고 하시는 맛잘알 이셨다.)

기분좋게 브라우니를 한 입 하신 동자님은 “지팡이를 도끼로 만들었어!”라며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머랭을 드셔보시고는 “아니다 전기톱으로 바꿨어!”라고 하시더니 마카롱을 드시고는 너무 맛있다고 감탄하시더니 “그냥 상제님께 완전히 끊어달라고 말할게!”라고 하셨다.


이후 마지막으로 솜사탕도 드렸는데, 캐릭터 띠부띠부실이 동봉되어 있는 것이었다. 동동자님은 띠부띠부씰을 양손으로 덮어서 기운을 넣어주시곤 나에게 물었다.

“혹시 매일 가지고 다니는 물건 있어?”

“핸드폰이요!”


동동자님은 내 핸드폰에 스티커를 붙여주시더니 여기에다 손을 올리고 인연을 끊고 싶다고 생각하면 끊어질 거라고 하시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일에 대한 예방도 해주셨다. 그리고는 손 좀 달라고 하시더니 내 손을 잡고 눈을 감으셨다.

“화려하게도 끊어놓으셨네. 찌꺼기들이 좀 남아있으니까 그거 치워줄게. 끊어진 거 알면 다시 이으려고 할 테니까.”

(*김보살 말에 의하면 남아있는 찌꺼기들을 다 태워주셨다고)

그리고는 인연의 끈 뿌리까지 뽑아주신다고 했는데, 내 쪽은 순조롭게 뽑히는지 ‘아이고 잘 뽑히네~’라고 하시면서 뽑았다. 그리고 그 사람 쪽 인연의 끈 뿌리를 뽑으시는지 잠시 내 손을 잡은 채 가만히 계셨다.

“저기도 뽑았다.”

(*김보살 말에 의하면 뿌리에 수많은 손들이 나와서 감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인연을 잇기 위해 실 같은 것들이 삐죽 나오기 시작했는데, 동자님이 그 실을 휘어잡고는 그대로 뿌리를 뽑으셨다고 한다.)

“저기서 또 연결하려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이제 뿌리가 없어서 약하니까 아무 동자나 부르면 끊어주거나 태워줄 수 있을 거야. 거기는 계속 인연을 이으려고 할 거야. 살기 위해서.”

“제가 액받이 같은 거라고...”

“만약 계속 연락이 되면 누나야가 위험해. 누나의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 그걸 잃어버리게 돼. 누나는 돈이네. 원래 누나는 무슨 일을 하면 그게 잘 되는 사람이거든? 근데 연결이 되면 그걸 다 뺏기는 거야. 일이 계속 안 들어오고, 아니면 일이 어그러지고,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엄청 힘들어서 못 할 정도가 되고. 그리고... 누나는 이런 거로 ‘죽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 거야.”


동자님의 말씀에 좀 마음이 찔렸다. 들어오는 일은 점점 더 나를 압박했고, 내게서 더 좋은 것, 더, 더 좋은 것을 요구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일들 때문에 나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깊고 깊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럼 그 사람을 차단하면 될까요?”

“응 그렇게 해. 혹시라도 먼저 연락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사람을 차단해 버렸다.

“그럼 상제님께 바칠 해산물 준비도 해야겠네요.”

“혹시 길일을 잡아야 하나요?” 김애동이 물었다.

“10일!”

“시간은 상관없나요?”

“해가 떠 있는 동안 해야 해.”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 나중에 또 올 거니까 이거(*마카롱&머랭) 잘 숨겨놔!)”

“네~ 또 오세요~”


그렇게 차단을 하고 맘 편한 생활을 하면서 보내던 나는 길일이 다가오자 해산물을 준비했다. 상제님께서는 문어와 가리비를 좋아한다고 하셔서 문어와 가리비를 준비해서 삶고 쪄서 음식을 준비했다.

그리고 오후 3시, 옥탑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상을 차린 뒤, 일의 당사자인 내가 가운데 서서 삼배를 드렸다. 상제님께서 와서 드시기 시작하셨다고 김애동이 말했다. 이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셨고, 앉아서 상제님께서 다 드시는 것을 기다렸다.


“상제님께서 ‘음식을 준비한 너의 정성이 매우 기특하구나.’라고 하셔.” 김애동이 상제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동동자님도 김보살의 몸에 오셨다.


“상제님이 고맙다고 하셔. 얼마만의 해산물이냐고 매우 좋아하고 계셔.”라고 동동자님께서도 상제님의 말을 전해주셨다. (*그리고 동동자님을 잘 부탁한다고 하셨는데, 이후 종종 동동자님이 놀러오셔서 간식을 드시고곤 하신다.)

사실 상제님께서는 해산물을 매우 좋아하시는데, 인간들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만 바친다고 하셨다...

그렇게 상제님께서 다 드신 뒤, 우리가 먹을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문어는 라면에 넣어 끓여 먹고 가리비는 초장에 찍어서 맛있게 먹으며 힘겹게 겨우겨우 인연을 끊어낸 것에 대해 소소한 축하파티를 가졌다.


어쩌면 그냥 차단하는 것만으로 인연이 끊기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지인으로 얽힌 사람이라 어떻게든 그 이야기가 들어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사람을 소개해준 친한 동생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늘 친한 동생과 전화통화를 하면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기에 나에겐 더 신기한 일이었다. 부디, 앞으로는 만날일 없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덧.

동동자님이 오셔서 인연의 뿌리를 뽑아주신 다음날, 희 동자님이 오셨을 때 인연의 끈을 끊어냈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시 거미줄처럼 가늘게 인연이 이어졌다고 하시면서 태워주셨다. 하루 만에 다시 인연을 연결한 그 집착에 소름이 돋았는데, 그 말을 들은 동동자님이 다시 오셔서 아예 시도조차 못하게 무언가 해주셨다고 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김보살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연락이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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