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겠지만, 인연이란 것은 늘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끊어내고 싶은 인연, 하지만 사회생활을 위해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것.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바로 그랬다. 거의 매일같이 연락이 오던 사람이었는데, 신님들도 놀랄 정도로 끈질겼던 인연. 정말 힘들게 그 인연을 끊어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느 날 선녀님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김보살의 몸에 찾아오셨다. (*선녀님은 매우 다소곳하게 앉아계셨고, 말씀하시는 소리가 매우 작아 집중해서 들어야만 했다.) 복숭아를 키우고 계시는 도화선녀님이셨는데, 3,000년 된 복숭아나무에 악령이 붙어서 나무가 말라가고 있다고 했다. 선녀님의 말을 들은 선생님께서 대신 할머니로 충분할 거라고 하셨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신 할머니께서 나오셔서 가부좌를 틀고 앉으셨다.
“복숭아밭의 방향이 어느 쪽이니?”
“남쪽입니다.”
그 말에 대신할머니께서는 눈을 감으셨다. 이윽고, 대신 할머니의 눈에 복숭아밭이 들어왔는지 인상을 살짝 찌푸리시며 말하셨다.
“어쩌다 이런 것들이 붙었어?”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생긴 일이라...” “인간 세상에 갔다 왔어?”
“저는 저번에 오겠다고 말씀드린 뒤로 이번이 처음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악령이 안 보이거든? 그래서 남아있던 마물 들만 다 밟아 죽였다. 그 악령은 안 보이는데.”
“잠시 물어보겠습니다.”
선녀님은 같이 밭을 관리하는 다른 선녀님에게 악령에 대해서 물어보시기 시작했다.
“악령은 새벽에 태양께서 오셔서 퇴치해 주셨다고 합니다.” 잠시 후 눈 뜬 선녀님이 말했다.
“그럼 이 마물 들만 남았던 것이 맞구나. 앞으로는 조금씩 땅도 밟아주고 그래라. 지금은 인간들이 많이 밟고 다닌다고 하지만, 인간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너네 들이 키우는 거니 너네 들이 밟아야지. 그것만 하면 다 잘하고 있구나. 그리고 한 번 보겠니? 이 아이가(*김애동) 아직 서툴러 다 없앴는지 모르겠구나.”
선녀님은 눈을 감고 밭을 둘러보며 말했다.
“땅 안에 옮겨 붙은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땅에 흙 깊숙이 있습니다.”
“몇 번 밟으면 괜찮은데... 정 걱정되면 한 번 해볼까? 그런데 내가 바람을 불 수가 없어. 내 바람은 그곳을 지키는 애들이 다칠 수가 있어.”
“그러면 혹시 보살님께서 바람을 한 번 불어주실 수 있는지...”
“잠시만 기다려라.”
대신 할머니께서 눈을 감으셨고, 잠시 후 보살님께서 나오셨다.
“뿌리가 많이 다쳤구나.”
“그런데... 신녀님께서 아직 힘을 잘 못 쓰시는 것 같아서, 제가 좀 알려드려도 괜찮을지요.”
“그래, 고맙다.”
(*이때까지는 김애동이 이 길을 걸어가겠다고 마음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점이라, 아직은 미숙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보살님은 치유와 정화를 주로 하시는데, 그 기운을 부채에 싣고 바람을 날리기 위해선 도움을 받아야 했다.)
선녀님이 부채를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천천히 알려주기 시작했고, 김애동은 그것을 따라 부채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채를 살랑살랑 부치시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살님께서는 살짝 미소를 지은 채, 선녀님을 보시고는 다 되었다고 하셨다.
“혹시 복숭아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주시는 대로 가져가겠습니다.” 선녀님께서 김애동에게 말했다. (*김애동의 선녀님께서 복숭아를 비롯해 김애동이 바쳤던 과일들을 키우고 계신다)
“이 아이가 아직 주는 법을 모른단다. 네가 직접 꺼내 가거라.”
선녀님은 잠시 앞에 앉겠다고 정중하게 말을 하시고는 김애동의 가슴 부근에 손을 올리더니 손을 점점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아주 소중한 것을 옮기듯 손을 부드럽고 천천히 움직여 자신의 가슴으로 손을 옮겨 가져가셨다.
“그래, 도와준 대가로 이 아이와(*김보살) 한 스님과의 인연을 이어 줄 수 있겠니? 인연이 있게 해주고 싶거든.” (*도화 선녀님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잇거나 끊어주는 능력이 있다고 하셨다.)
“혹시 그 스님이 있는 곳의 전체적인 지도를 볼 수 있을까요?”
선녀님의 말에 나는 핸드폰으로 지도를 켜서 우리가 자주 가는 A사를 보여드렸다. 선녀님께서는 위성지도로서울시가 다 보일 정도로 지도를 보시더니, 조금씩 절이 보이도록 확대해 달라고 하시며 유심히 지켜보셨다. 그리고 A사의 모습이 보였을 때, 절을 찬찬히살펴보시며 말했다.
“저기 계시는군요.”
“매번 수련한다고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입구까지 나오기는 힘들 것 같고요. 여기, 이곳까지는 나오시게 해 보겠습니다. 지금은 제가 부채가 없기 때문에 돌아가서 그곳에서 인연을 잇겠습니다.”
“그래. 이 아이는(*김애동) 이 아이들 셋에 대한 우정을 묶어주거라.”
“둘이 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녀와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더 있다고 하는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 만나지 못할 경우엔 또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하셨다.)
“아직 못 만났잖아.”
“그럼 그 둘을 만날 수 있는 인연의 끈도 연결하면 어떨까요?”
“그것도 괜찮겠구나. 그렇게 해줄래?”
“여기에서 기도로 이어주고, 돌아가서 마무리하겠습니다.”
“해준 것에 비해 내가 많이 받았구나.”
“아닙니다. 제가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선녀님의 말에 보살님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셨다.
“이슬을 뿌려놨다. 땅이 점점 더 비옥해질 게야. 그리고 바람도 잘 도착했어.”
선녀님은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러다 나를 보고는 내게도 무언가 주어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보살님께서는 네가 주고 싶으면 주고 가라고 하셨다. 선녀님은 앉아있는 내게 다가와 앞에 서셨다. 그리고는 잠깐만 손을 대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하시며 머리 위에 손을 대셨다.
“끊어야 할 인연이 있습니다. 갑자기 끊어진다고 하여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끊어야 할 인연이 하나가 아닙니다.”
선녀님께서는 그렇게 내게 현재 만들어진 악연이 끊길 수 있도록 해주셨고, 앞으로도 악연이 잘 생기지 않도록 비호를 주셨다. 사실, 선녀님께서 끊어야 할 인연이 있다고 말해주셨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김애동도, 김보살도 같은 사람을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끊어야 할 인연이 하나가 아니란 말에 대체 누구인지 당혹스러웠으나, 앞으로 생길 인연도 말하는 것까지 포함이라고 말해 주셔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떠올린 사람은 같은 프로젝트를 했던, 일로 만난 사람이었다. 거의 1년 가까이 같은 프로젝트를 했지만, 프리랜서 특성상 재택에서 근무하고 정말 중요한 회의 때만 모였었는데, 1년 동안 얼굴을 3번 정도 본 나에게 매일 같이 연락하던 사람이었다. 일 이야기로 시작해서 자기 힘든 이야기를 하고,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에서도 약 최고로 받는다는 등 매번 우울한 이야기만 하던 사람.
사실, 이 사람은 친한 동생이 소개해줬기에 그 동생의 면을 생각해서 연락을 끊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연락이 이어질수록 내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프로젝트가 끝나서 연락이 안 오겠거니 싶었는데, 그 인연은 끝날 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 인연을 끊어주신다니! 기쁜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이후 동자님을 만나 뵙고 이 인연은 질기로 질긴 악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이야기는 다음 주에...)
*덧
스님을 만나려고 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김보살이 무언가 고민이 있었고, 그 고민을 위해선 스님과의 대화가 필요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가는 A사 동자님들께서 A사의 한 스님을 만나면 될 거라고 조언을 해주시고, 그분은 동자님들을 볼 수 있기에 슬쩍 귀띔까지 해 주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도 계속 만나지 못했었는데, 김애동이 말하길 우리가 절에 오면 오히려 더 밖으로 안 나오고 계신다고 했다. 우리가 오는 것을 느끼고 계신다고. 그리고 어째선지 그 스님과 김애동은 마음속으로 간단한 소통이 가능했는데, A사 스님께서 우리를 불편해하는 것을 느끼고 B사 동자님들의 조언을 받아 B사로 가게 됐다고 말하니 A사 스님께서 A사로 오시라고 하셨다고. 그래서 길일을 잡았지만... 결국 A사 스님은 만나지 못했고, B사의 스님을 찾아간 김보살은 스님과의 대화에서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혹시 나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 깨달음을 얻을 인연을 만날 시기가 아니라고 하셔서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