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문 앞에 계신 것 같아.”
김보살, 김애동, 나 이렇게 셋이 우리 집에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보살이 말했다. 동녀님인 것 같다면서 동녀님을 받겠다고 말한 김보살은 갑자기 바닥에 그대로 자리를 잡고 누웠다.
“동녀님? 누구셔요?”
“호랑동녀...”
힘이 없어서 제대로 앉아있는 것도 힘든 상태라며 겨우겨우 목소리를 내시는 모습에 김애동은 심각해진 표정으로 무슨일이신지 물었다.
“산군님이 아파서 나도 힘을 낼 수가 없어... 도와줘...”
“디에 계셔요?”
“00산...” 00산은 B사가 있는 곳이었다.
“저희가 11일에 B사에 갈 일이 있는데, 그때까지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동녀님이 오신 날은 1일이었다. B사의 지붕동자님께서 김보살의 큰 사고 수를 막아주셨기 때문에 이건 그냥 해 줄 수는 없고, 공양해 주어야 한다고 해서 B사에 과일을 바칠 예정이었다.)
“기다릴 수 있어... 기다릴게...”
그렇게 말하시고는 그대로 돌아가셨다. 목소리가 너무 힘겨웠기에 B사에 가는 날짜를 당겨보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나와 김보살은 생업으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조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7일, 모두가 스케줄이 비어 더 빨리 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호랑동녀님께 7일에 가겠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기다리겠다는 응답이 왔다고 했다. 우리는 제발 그때까지는 무사하시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하루빨리 7일이 되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김애동이 반드시 산군님을 치료해 드려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우리 집에 놀러 와 김애동을 본 동자님들이 하나같이 큰 사고가 날 것이라고 하시며 그 사고로 김애동은 다리 한쪽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덧 붙이셨다. 어떤 사고인지 불안해하는 김애동의 모습에 김보살이 동자님의 눈으로 본 것을 말하길, 김애동이 사고를 당하는 순간을 본 것은 아니고, 그전을 보았는데 김애동의 집에서 우리 집으로 오는 길목을 걷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고당하는 순간을 본 것이 아니라서 어떤 사고가 나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산군을 살리고, 그 대가로 다리를 받으면 된다.” 다리 걱정에 끙끙대는 김애동에게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말해주셨다.
“그럼... 산군님을 못 고치면...”
“다리도 잃는 거지."
선생님의 말씀에 김애동이 입을 꾹 다물었다. 선생님께서는 김애동을 바라보시다 말씀을 이었다.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우선 무당 같은 존재라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들켜선 안 된다.”
“거기서 부채를 들고 춤춰야 하는데 어떻게 안 들켜요ㅠㅠ”
“조심히 잘해야지. 그리고 절대 다른 것에 현혹되면 안 된다. 거기 산군인 척하는 귀신이 하나 있어. 그 귀신에게 홀려 그 귀신을 치료하면 또 산군을 못 지키게 된다.”
“그럼 제 다리도 잃는 거고요...”
“그렇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이 아이가 보이잖니. 호랑동녀가 붙어있는 호랑이를 치료하면 된다.”
(*이때 당시는 아직 김애동이 존재들을 느끼기만 할 뿐, 보지는 못할 때였다.)
선생님은 본인이 들어와 계신 김보살의 몸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그래도 방법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 하나로 마음을 편히 가지기엔 김애동의 대가가 너무 컸다. 다리를 하나 잃어버린다니. 김애동의 걱정은 점점 커질 뿐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산군님을 자기 능력으로 치료해 드릴 수 있을지 걱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때는 이 길을 걸어가기로 한 지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 김애동의 걱정 때문인 것인지 그날 밤, B사의 지붕동자님께서 찾아오셨다. 지붕동자님께 11일에 B사 가기로 했던 걸 7일에 가게 될 것 같다면서 호랑동녀님이 찾아왔던 이야기를 하자 지붕동자님께서 마시던 음료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그 죽은 산군? 그걸 어떻게 살려?”
"아직 안 죽었다고..."
"그건 거의 죽은 거지."
“그렇게 심각한가요...?”
“지금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면 살릴 수도 있겠다.”
“저 어떡해요ㅠㅠ 산군님 돌아가시면 제 다리도 잃어요.”
“한 가지 꼼수가 있어.”
“뭔가요?”
“치료를 하러 갔는데 치료를 하기 전에 산군이 죽으면, 용궁동자가 데리고 간 용 있잖아. 그 용한테 ‘산군 형님~’이라고 한 번 불러달라고 해. 그럼 그 산군이 00 산에 산군이 되어 줄 거야. 그리고 그 용한텐 대가로 여의주가 될 수 있는 물건을 주고.” (*이전에 집에 무서운 귀신이 나왔을 때, 우리 집 근처에 있었던 그 산군님으로 그때 용용이가 부른 것이 맞았다... 그리고 소속되어 있는 산이 없으신 분이라고 했다.)
“그걸로 되는 건가요?”
“응. 그러면 돼. 만약에 치료를 시도할 거라면, 산군을 부를 순 없어. 다른 산군을 부르거나, 치료하거나.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해.”
김애동은 늦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치료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 보겠다며 더 확률을 높이기 위해 며칠 동안이지만 열심히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7일. 우선 B사에 바칠 과일을 사기 위해서 B사 근처 마트에 들렀다. 마트에 온 김에 동자님들 간식도 좀 살까 싶어 어떤 것들을 좋아하실지 고민하며 마트를 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김보살의 몸에 지붕동자님이 들어오셨다. 우리가 온 것이 느껴져서 오신 것이었는데, 같이 마트를 돌아보면서 직접 드실 간식을 고르셨다. (*생크림빵과 단호박인절미를 고르셨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네?”
“좀 빨리 왔다.”
의아해하는 우리를 두고 지붕동자님은 더 이상 말이 없으셨고, 주차장까지 함께 오셔서 차 안에서 간식을 드시고는 이따 보자고 하시고는 가셨다. 그리고 그 의문은 00 산에 도착해 산군님을 뵙고서 풀리게 되었다.
00 산 안으로 들어가 그나마 대지가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으니 호랑동녀님이 김보살의 몸에 들어오시곤 산군님을 모시고 오겠다고 하셨고, 그동안 김애동은 가져온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잠시 후 동녀님이 돌아오셨다. 여기에 산군님을 모시겠다면서 산군님이 자리를 잡자 어디에 계신지 알려주셨다. 이후, 김애동은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와 호랑동녀님은 일반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유튜브를 찍으러 온 사람인 것처럼 각자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는 척했었는데... 나중에 선생님께서 들켰다고 하셨다.) 3분~5분 정도 춤을 춘 김애동은 다 끝났다고 하면서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호랑동녀님을 바라보았다.
“산군님께서 많이 아프지 않으신 것 같은데요...? 동녀님도 전과 다르게 쌩쌩하시고.”
김애동의 질문에 호랑동녀님이 답을 해주셨는데, 한 무당이 산군님께서 아픈 것을 느끼고 산 안에서 굿을 했다고 했다. 음식을 차리고 굿을 한 탓에 쫓겨났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찾아오고 쫓겨나고를 반복하다 결국엔 출입금지를 당했다고.
“굿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저는... 그냥 춤추면 된다고 하셨는데...”
“언니는 신녀잖아. 여하튼, 그래서 감기몸살 정도...? 그 정도로 아프셔.”
“그럼 제 다리는...”
“잠시만 기다려봐. 선생님이 나오실 거야.”
잠시 후 김보살의 몸에서 선생님께서 나오시더니 산군과 이야기를 하고 왔다고 말해주셨다. 다리를 미리 고쳐주고, 나중에 산군님께 꼭 도움을 주기로 했다고. 선생님께서는 김애동에게 다리를 해결해야 하니 일단 다리를 바위 위에 올리라고 하셨는데, 약간 다리를 비튼 채로 올려야 해서 자세가 불편한지 김애동이 비틀거렸다.
“자세가 불편해도 좀만 가만히 있어 보렴. 자, 날 잡고 서 있거라,”
선생님께 의지한 채 서 있기를 30초 정도 지났을까. 선생님께서 완전히 끝났다고 말씀하시며, 잃어야 했던 김애동의 운명의 다리를 산군님이 물어뜯고, 새로 다리를 나게 해 주셨다고 설명해 주시고는 김보살의 몸 안으로 들어가셨다. 곧바로 호랑동녀님께서 김보살의 몸에 들어오셨는데, 오늘 고맙다고 하시면서 산의 입구 초입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며 산군님께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언제일지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킬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 한 달여 뒤, 김애동이 산군님께 약속했던 것을 이행해야 할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바로 '산군 사냥'. 악신들이 주기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산군을 사냥하고 그 영기를 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과 계약한 산군은 사냥하지 않는데, 인간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알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래서 김애동이 해야 할 일은 000 산의 산군님을 만나 목 뒤에 손바닥을 찍어 인간과 계약한 산군이라는 증표를 남기고, 산군을 지키는 보호막을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호막을 치며 산군을 지키는 것이 가장 걱정되는 것이었는데, 산군 사냥이 시작되기 전부터 춤을 추기 시작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때까지 춤을 춰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희가 언제 가야 하나요?"
"그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그게 일어나려는 것만 알게 된 것뿐이다."
산군 사냥이 시작되는 정확한 날짜가 정해지고 그 시기가 다가오면 선생님도 그날을 알 수 있었는데, 아직 시기가 좀 남은 것 같다면서 김애동에게 계속해서 수련하며 준비하라고만 하실 뿐이었다.
그렇게 산군 사냥 날짜가 정해지기를 기다리며 그날에 대한 수련과 준비를 하는 김애동을 보며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런데, B사에 들어가면 보호막을 치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나는 순수한 호기심에 물었다. 사천왕님들이 삿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지키고 계신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마침 오셨던 B사의 지붕동자님께서 그래도 괜찮다고 하셨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무복을 입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복을 입은 채로 절에 들어가는 건 좀...”
“사천왕문 지나면 절 안에 들어간 거잖아? 사천왕문 안에도 주차장 있으니까 거기에 주차하고 차 안에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괜찮아.”
지붕동자님의 말에 김애동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작게 크기를 줄이신 산군님을 김보살이 산에서 모시고 내려와 김애동의 품에 안겨주고, 그대로 B사 안의 주차장에서 사냥이 끝날 때까지 품에 안고 있는 것이었다. 00 산에서 춤을 추는 것보다 훨씬 난도가 낮아진 것에 김애동이 기뻐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셨다.
“사냥이 시작되는 날,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사냥이 끝날 때까지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을 해선 안 된다.”
“보통 얼마나 걸리는데요...?”
“모르지. 그래도 보통 3시쯤엔 끝나는 것 같았다.”
“몇 시까지 저희가 가야 하는데요...?”
“처음부터 지키려면 아침 7시까지는 가야지. 아니면 오후에 1시쯤 가서 다친 것을 치유해 줘도 괜찮고.”
산군님도 힘이 있기 때문에 오후에 가도 죽지 않았을 거라, 어쨌든 살리기만 하면 된다면서 몇 시에 갈지는 우리들이 정하면 된다고 하셨다. 김애동은 결국 아침 7시까지 가는 것을 택했다.
“저랑 김보살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건가요?” 내가 선생님께 여쭸다.
“너희 둘은 생각하는 건 괜찮지만, 입 밖으로 말을 꺼내면 안 돼. 너희 둘은 그 시간 동안 잠을 자도 괜찮고, 핸드폰을 해도 괜찮다. 하지만 신녀는 그러면 안 돼.”
선생님의 말에 김애동의 표정이 굳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긴 시간 동안 부정한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된다니. 그리고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었는데, 산군을 모셔와 차 안에 태운 후에는 절대로 차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평소 화장실을 자주 가는 나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저는 화장실을 자주 가기 때문에... 차라리 밖에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만약 기도를 하려면 절대로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말고 바로 대웅전으로 가서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만약 대웅전에 가기 전에 다른 동자나 동녀들에게 인사를 한다면 기도를 하지 말고 절 안에서 시간을 보내면 되고.”
평소 나는 보이지 않더라도 동자 동녀님들이 계시는 곳에 가서 왔다고 인사를 드리고, 손을 흔들면서 인사하기도 하는데 그 행동들을 하지 말고 대웅전으로 곧바로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의 고민은 해결되었지만, 김애동은 계속해서 고민에 휩싸인 것 같았다.
그래도 해야만 하는 것이기에, 김애동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은 것을 습관화하기 위해서 자기가 말할 때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지적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김애동이 말을 할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부정적인 단어가 섞였다.’라면서 말씀해 주셨는데, 생각 없이 툭툭 뱉어내는 말에 부정적인 단어가 종종 섞여 있어 김애동은 점점 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럼 노래를 부르는 건 어때?” 계속해서 고민하는 김애동을 도와줄 방법을 고민하다가 떠오른 방법을 말했다.
“좋은 생각이다!” 김애동은 신나서 노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의외로 시간이 빨리 흐르기도 하고,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며칠 뒤, 선생님께서 산군 사냥의 날짜가 정해졌다고 알려주셨다.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날짜였다. 날짜가 확정되니 정말로 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몸에 와닿았다. 직접 행하지 않는 나도 이렇게 긴장되는데, 김애동은 얼마나 긴장될지 감히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산군 사냥 전날, 지붕동자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주의 사항이 있다고 찾아오신 것이었다.
“차 안에 있다가, 그림자가 진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을 수 있거든? 이건 일반인도 느낄 수 있을 정도라서, 그림자가 진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때 10초 정도 숨을 쉬면 안 돼. 그래야 들키지 않고 잘 넘길 수 있어.”
“그것 외에 지켜야 할 게 또 있을까요?”
“아니, 이건 정말 만약의 상황을 알려주러 온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죠ㅠㅠ 제 다리가 걸려 있다고요...”
지붕동자님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시고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을 위해 긴장으로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부르며, 최대한 일찍 잠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