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군 사냥 당일, 우리는 새벽 5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산으로 가는 동안 김애동과 나는 짧은 대화를 나눴는데, 그 사이에 또 무언가 부정적인 단어를 말했는지 선생님께서 이번 한 번은 막아줬지만, 다음은 막아줄 수 없다고 하셨다. 그 말에 긴장한 우리는 산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막함이 가득한 차가 등산로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김애동은 차 안에 있었고 나는 김보살과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기록을 위해서 따라 올랐다) 평일임에도 산을 오르기 위한 등산객들이 몇몇 보였다. 오히려 이 시간이기 때문에 등산객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객들은 전혀 등산복 차림이 아닌 우리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김보살과 나는 그런 시선들은 싹 무시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5분 정도 산을 오르자 김보살은 저기 산군님이 계신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다행히 산군님께서 입구 근처까지 와 계신 것이었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린 김보살은 등산객들이 보이지 않는 순간, 산군님을 업기 위해 등을 보인 채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김보살은 그대로 무언가를 업은 것처럼 양손을 등 뒤로 한 채 깍지를 끼고 그대로 산에서 내려왔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 문을 열어주자 김보살은 김애동에게 등을 보였고, 김애동은 그대로 산군님을 받아 자신의 품에 안았다. 지금부터는 차 문을 열어서는 안 되기에, 김보살과 김애동은 그대로 차로 B사로 이동했고 나는 B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따 봐."
"응. 대웅전에 있을게 끝나면 찾아와."
두 사람을 태운 차는 그대로 절로 향했다. 나는 절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아무것도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바닥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B사에는 여러 번 왔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절로 갈 수 있었다. 늘 인사를 드리던 사천왕문을 묵묵하게 지나고, 동자 동녀님들께 인사를 드리던 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대웅전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대웅전 안에는 많은 사람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놀라웠다. 오전 7시, 이 이른 시간부터 여기까지 와서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분들의 뒤로 이동하여 한쪽 구석에서 삼배를 올린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눈을 감고 계속해서 빌기 시작했다.
‘산군님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희들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살펴주세요.’
몇 번이고 같은 기도를 드리고 또 드렸다. 혹시라도 기도를 드리다가 잡생각이 들 것 같으면 바로 반야심경을 들으면서 (*이어폰을 사용했다) 작게 따라 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나의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김애동과 김보살이었다. 김애동은 가져온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김애동과 김보살은 내 옆에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렸고, 나는 감사 인사를 드린 뒤 대웅전을 빠져나왔다. 신발을 신으며 시계를 보니 9시를 좀 넘은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우리가 주차장에 주차하자마자 시작됐더라고. 우리가 오는 걸 알고 빨리 시작했대.”
“별일 없었어? 부정적인 생각은 안 했고?”
“끝날 때까지 나는 큰할머니께서 나와 계셨고, 김보살도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시느라고 부정적인 생각을 할 일이 없었어.”
“걱정한 게 무색하네.”
“그러니까. 그리고 오늘 온 악신들도 잔챙이들이 왔대.”
“선생님 말씀이, 귀신이 산군인 척하는 거 있다고 했잖아. 그거를 보고 산군이라 잘못 판단해서 잔챙이들만 왔대.” 의아해하는 나를 위해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셨고, 김보살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에게 전해주었다.
“이렇게 커다란 산에 있는 산군이 그렇게 약할 거로 생각한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더 당황했지만, 김보살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김보살의 신님들도 군대를 데리고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미 우리가 산군을 숨겼다는 것을 깨달은 악신들이 00산에서의 사냥을 빨리 끝내버려 전쟁을 치를 일조차 없게 된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커다란 일이 끝났다는 말에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B사를 돌아다니면서 동자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산군님이 계신 곳에서 산군님과 호랑동녀님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요즘 절에 가면 동자 동녀님들과 사진을 찍는데 그것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해주셨다. 사진을 공개하면 어딘지 알 수 있기에 공개할 수는 없지만, 호랑동녀님은 내 옆에 서 계시고, 산군님께서는 내 뒤에 커다랗게 엎드려 계시는데 꼬리로 나를 감싸 안아주셨다고 김보살과 김애동이 알려주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김애동은 드디어 다리 저당 잡힌 게 풀린 거냐면서 기쁜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우리에게 또 한 가지 사건이 터졌다. 산군을 숨기고 지킨 것으로 인해 김애동이 악신의 타깃이 된 것이었다.
“이 아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게 연꽃에 숨겼는데 그래도 들켰어요.” 큰할머니께서 나와 말씀하셨다. 이에 선생님께서는 김보살의 가방을 뒤지시더니 성수(*김보살이 성지에서 떠 온 것이었다)로 김애동을 지키는 임시 연꽃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눈을 감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던 김애동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선생님을 죽일 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김애동과 선생님의 눈이 마주치자, 선생님께서 김애동의 몸에 악신이 들어온 것을 깨달으시고는 표정을 굳히셨다.
“그러게 왜 끼어들어. 네가 끼어들어서 계획이 다 망가졌어.” 김애동의 안에 들어온 악신이 말했다.
“네가 어찌할 상대가 아니다.” 선생님께서 악신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악신은 비웃기라도 하듯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너는 안 되겠지만 이 아이는 칠 수 있지.”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선생님께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셨다. 그리고 잠시 후 악신이 사라졌는데, 김애동 몸에 큰할머니께서 나오시고는 쫓아내셨다고 했다.
“아휴, 거 아주 잔챙이야.”
“별거 아니오?”
“방금 우두머리까지 보였는데, 너무 별거 아니야. 전쟁해도 재미가 없겠어.”
상대가 너무 약해 재미가 없을 상황이 마음에 안 드신 건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계시던 선생님께서는 부채로 김애동의 머리와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를 한 번씩 치시더니 부채를 펴서 김애동 앞에서 훅하고 강하게 바람을 불어주셨다.
“세 번 정도 치는 건 막아줄 거다.”
“앞으로 계속 저를 칠까요?”
“그렇겠지.”
“그런데, 악신들은 인간을 바로 공격할 수 없다면서요? 그건 큰 죄라고...”
“악신들을 모시는 무당들이 있다. 그 무당들이 치기도 할 거야.”
“아... 악신을 모시는 무당이 하나가 아니에요?”
우리는 악신을 모시는 무당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신이 악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신다는 것이었다. 대체 악신을 모시는 이유가 무엇이냐 여쭈었고, 그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바로 ‘돈’ 때문이었다. 악신은 무당에게 큰돈을 벌게 해 줄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생각보다 사람에게 해를 끼쳐달라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가격은 높기 때문이라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의 가격이 비싼 이유는, 저주나 살을 날리는 모든 것이 무당의 생명을 깎는 것이기 때문이라고도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지만, 일찍 죽게 된다고. (*무당이 살을 날렸을 때 상대가 받아쳐서 살이 돌아오게 될 경우, 일반 신을 모시는 무당은 다치지만 악신은 되돌아온 살을 양분 삼아 자기가 먹기 때문에 무당에게 오지 않아 악신을 모시는 무당들은 거리낌 없이 그것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죽은 무당은 죽어서 죄를 받는지에 대해 여쭈니, 악신을 모시는 무당들은 죽고 나면 악신을 모시는 곳으로 가서 쭉 종노릇 하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야기해 주신 이야기가, 실제로 무당 중에 자기가 죽을 때가 되자 그곳에 가기 싫어서 천주교에 가서 세례를 받은 무당이 있었다고 했다. 다른 종교에 귀의하게 되면 악신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악신이 지켜만 보고 있었냐고 여쭤보니 예비신자 교육을 받는 동안, 악신은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어떻게 하는지 계속 지켜만 보다가 천주교에 온전히 귀의하게 되는 마지막 과정인 고해성사 전에 그 무당을 죽여버렸다고 했다. 이렇게 미래가 아주 깜깜함에도 불구하고 일확천금을 위해 악신을 모시는 무당들. 돈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팔아버리다니, 돈의 힘이 새삼 대단하고 느껴졌다.
그렇게 그 무당들과 언제까지 엮여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지내던 찰나, 한 무당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버렸다. 바로 김보살에게 살을 날린 것이었다.
“어... 뭐지... 나 진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나처럼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도 없을 텐데 왜 이렇게 다 놓아버리고 싶지? 우울하고, 무기력해. 그냥 죽고 싶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는 김보살에 김애동과 나는 동시에 김보살을 바라봤다. 김보살도 지금 자신의 상태가 의아한 듯 ‘왜 이러지?’만 계속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김보살의 내면을 살펴보셨고 이내 인상을 찌푸리셨다.
“이 녀석들이 이 아이의 정신을 건드렸구먼. 정신을 쳤어.”
선생님께서는 살을 날리라고 한 악신을 퇴치할 명분이 생기셨다며 그대로 김애동의 큰할머니와 함께 그 무당에게로 가셔서 그 무당이 모시는 악신들을 쓸어버리셨는데, 눈을 감고 있는 김보살은 그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고 했다.
큰할머니께서 들고 계시는 창으로 조무래기 악신들은 그대로 찍어버린 후 찢어서 드시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에 그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망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손을 앞으로 펴시고 우두머리를 향해 숨을 후 불으셨는데, 우두머리 악신이 숨을 못 쉬면서 발버둥 쳤다고 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선생님께서 왜 조무래기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다며 김보살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놀아주려고 했더니, 애를 치고 그래?”
선생님께서는 잡아 온 악신을 통통 치듯 손을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그 악신은 선생님께서 가지고 놀면 좋겠다면서 잡아 오신 것이었는데, 선생님이 김보살 몸에 들어가자마자 김보살이 자기도 모르게 먹어 버렸다.) 그리고 다른 악신들은 다시 날을 잡아서 싹 없애버릴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악신을 없애려는 계획을 악신들이 알게 되면서 또 한 번 큰 사건이 발생하게 됐다.
*덧
악신을 모시는 무당은 악신이 죽으면 무당도 죽게 되는데, 이렇게 죽을 경우 그대로 위로 올라가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셨다. 이에 “악신의 종노릇을 하는 것보단 이렇게 죽는 게 더 나은 것 아닌가요?”라고 여쭸는데 “과연 그게 더 좋을까?”라고만 답해주시곤, 더는 말씀이 없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