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군 사냥 사건 이후, 선생님께서는 용 사냥도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선생님과 큰할머니께서는 그 사냥 전에 악신들을 싹 잡아 용 사냥 자체를 없앨 계획을 세우셨다. 두 분 이서 달력을 보고 길일을 잡기 시작하셨는데, 고심하신 끝에 22일로 정하셨다. 그래서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평소와 같이 보내던 우리에게 갑작스러운 사건이 터졌다. 17일 새벽 1시, 우리 집에서 같이 수다를 떨고 놀던 김보살과 김애동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김애동이 계속 기분이 나쁘다면서 왜 그러지 그러면서 신발을 신었는데, 신발을 다 신고 뒤돌아서서 신발을 신으려 기다리던 김보살을 보며 말했다.
“누가 저한테 ‘오늘 만나기로 했잖아!!’라고 씩 씩 거리면서 화내시는 것 같은데요...? 급하다고 오늘 봐야 하는 일이라고 해요.”
김애동의 말에 선생님께서 일단 다시 집에 들어오라고 하셨고, 두 사람은 결국 다시 우리 집에 들어와서 앉았다. 김보살이 그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해 자세를 잡고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는데, 찾아온 존재가 김보살의 몸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몸 밖에서 그 존재가 이야기하는 것을 김보살이 듣고 내용을 전달하기로 했다. (*이 당시는 아직 김애동의 귀가 완전히 열리지 않아 제대로 들리지 않았었다.)
“누구셔요?” 김애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용을 모시는 자다.” (*김보살이 듣고 전해주는 말투 그대로 적었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악신이 자신들을 싹 없애려는 계획을 알게 되어 용 사냥이 당겨졌다.”
“언제인가요?”
“12시가 지났으니까 오늘 사냥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래서 22일까지 기다릴 수 없다. 당장 오늘 악신을 제거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장 오늘이라는 말에 김애동과 나는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 용을 모신다는 존재의 말이 이어졌다.
“그동안 용 사냥으로 600마리의 용이 죽었다. 오늘 지켜야 할 용은 총 135마리로 그중에 어린 개체가 9마리 있다.”
“그렇다면 그것의 대가로 여의주를 받을 수 있을까요?”
“여의주는 용이 진짜 용으로 되는 것으로 용 자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줄 수 없다. 대신에 용의 정기와 용의 비늘을 줄 수 있다.” (*용의 정기는 용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뜻하는 것으로 용이 가진 힘과 권력을 쓸 수 있으며, 용의 비늘은 부를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애동이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알겠다고 했다. 만약 악신을 다 처리하기 전, 용 사냥이 시작되거나 악신을 다 제거하기 전에 이 계획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말을 하게 된다면 계약은 파기된다는 조건으로 계약이 진행됐고, 계약의 증표로 용의 비늘 하나를 먼저 받았다. (*다른 이에게 계획을 말하면 주변에 있던 다른 존재들이 듣고 악신에게도 그 이야기가 전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계약을 끝내고 용을 모시는 존재가 사라졌을 때, 갑자기 김애동이 입을 열었다.
“저긴 벌써 시작했는데? 무당들이 춤추고 난리 났어.”
악신을 모시는 무당들이 용 사냥 시작과 악신들을 위한 제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김애동과 김보살 그리고 나는 서둘러서 김애동과 김보살의 집으로 향했다. 악신을 제거하기 위해선 신당에서 일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보살은 방에서 죽비를 가지고 와서 김애동의 신당으로 향했다. 선생님께서 악신 퇴치 때 필요하다고 사놓으라고 하셨던 죽비였다. 어느새 선생님과 큰할머니가 내려온 두 사람은 신당에 나란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선생님께서 먼저 눈을 감으셨고, 큰할머니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더니 “나도 시작하오.”라고 말씀하시곤 눈을 감으셨다.
“휩쓸자꾸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더니 죽비로 손을 탁, 탁 내리치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가 흐른 뒤 선생님께서 먼저 눈을 뜨시곤 옆을 바라보셨다. 아직 싸우고 있는 그 모습을 보시더니 부채를 가지고 오셔서 큰할머니께 부채를 부쳐주셨다. 그리고 잠시 후 큰할머니께서도 눈을 뜨셨다. 10여 분만에 몰려왔던 한국의 모든 악신들과 조무래기들이 몰살당한 것이었다.
“어찌하는 게 좋겠어? 소멸이야? 양분이야?” 선생님께서 큰할머니를 보시며 악신의 처우에 대해 말씀하셨다.
“양분.”
“어찌 나눌까?”
“우두머리 2마리만 주시오.”
“그래 그럼 증표로 머리는 모으자. 그리고 정점에 있던 애를 잡았는데 어찌할까? 따로 벌을 주는 게 좋겠어? 아니면 갖다 줄까?”
“벌을 주시오.”
“내 방식을 알 텐데, 잔인해서 싫다고 할 줄 알았더니.”
“그러니 우리 아이가(*김애동) 더 좋아합니다. 배워오라던데? 그 무당들은?(*악신을 모시던 무당들)”
“죽어. 하나는 이미 죽었어. 좋은 곳으로 갈 수 없어.”
“그렇지. 뭐 좋은 일을 했다고.”
악신을 위해 제를 올렸던 무당 중 하나는 피를 토하면서 그대로 죽었다고 하시면서, 함께 제사를 올렸던 제자들은 스승님이 악신을 모신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도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씀하셨다.
“한 방이면 군대 하나가 사라지니 재미가 있어야 말이지.”
“베는 느낌도 없고...”
“악신이라고 해서 기대했을 텐데 악귀보다 못하니...”
(* 참고로 우리 세 사람 중 그 누구도 악신과의 전쟁을 기대한 적 없다...)
“악귀한테 악신 타이틀을 줘야 하는 거 아니오?”
“그게 무슨 군단이라고 불러.”
이후 김애동의 신님들은 악신들의 머리를 모은 것으로 액세서리를 만드셨는데, 어떤 분은 목걸이로 만들었다고 하시고 반지로 만들기도 하셨는데, 큰할머니께서는 귀걸이로 만드셨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작게 만들었냐고 선생님께서 물으니 ‘이런 애들이랑 전쟁한 게 쪽팔리니까 작게 만들었죠!’라고 하셨다.
그렇게 악신들 퇴치가 끝나고 김애동은 용을 모시는 존재로부터 용의 정기와 비늘들을 받았는데, 그 순간 김보살의 귀에 다양한 연령대의 목소리가 ‘고맙다’‘고마워’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도 보답을 주셨는데, 용의 기운으로 눈을 가려주셨다. 이렇게 하면 내 귀안이 트는 것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는 전쟁의 모습이 어땠는지 김보살에게 물어봤는데, 김보살이 이야기해 준 악신과의 전쟁 모습을 이곳에도 적도록 하겠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 하늘에 선생님과 큰할머니는 서로 등을 돌린 채 좀 떨어져서 계셨다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과 큰할머니의 앞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군대가 몰려왔다고. 조무래기들은 인간의 형상이었는데, 까맣고 피부표면이 일렁이는 모습이었고 우두머리들은 굳이 표현하자면 얼굴은 사천왕님 같았고(*사천왕님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두 눈은 커다란데 엄청 깊게 파여있어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같다고 했다. 머리에는 기다랗고 앞으로 구부러진 뿔 한 쌍이 있었으며, 도마뱀 같은 꼬리를 가지고 있다고. 우두머리들은 장군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는데, 삐까번쩍하며 선녀 날개 같은 것이 뒤로 보였었다고 했다.
그리고 시작된 전쟁에서 선생님께서 부채질하니 약 1만의 적이 깍둑썰기처럼 썰렸고, 위에서 알 수 없는 긴 무언가가 위에서 찍으니 꽃잎이 펴지듯 악신들이 쫘아악 벌어지듯 갈라 졌다고. 그리고 선생님께서 손을 위로 돌렸는데, 우두머리가 빨래 짜지듯 꼬이며 짜지더니 나중엔 목만 남았다고 했다. 제일 잔인하다면 잔인했던 부분은 선생님께서 싸우실 때, ‘탁’ 소리가 들렸는데 이것은 강제로 모든 군단들에게 깨달음을 주셨다고 했다. 그로 인해 군단들이 자신들이 이곳에 온 것이 잘못이고, 원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죽이셨다고.
이후 선생님께서 눈앞의 적을 다 없애고 뒤를 돌아보셨을 때가 되어서야 큰할머니의 싸움을 볼 수 있었는데, 큰할머니께서는 칼을 들고 싸우셨다고 했다. 큰할머니께서 칼을 들으니 악신들이 스스로 딸려와서 썰렸고, 내리치니 그대로 짓이겨졌다고. 그리고 봉이 하나씩 머리부터 아래로 꽂혀서 무수히 많은 적들이 꼬챙이처럼 껴져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세로로 한 번 써시고 가로로 3~4등분을 하시기도 했는데, 선생님과 다르게 잔챙이들의 머리는 남기셨다고.
그렇게 한국에 있는 악신들은 모조리 처치되었는데, 악신들은 2~3년이 지나면 다시 태어난다고 했다.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악신들은 적이 많아 태어날 때부터 성체로 태어난다는 사실도 알려주셨다.
사실, 아무리 악신이라고 하더라도 신님들이 함부로 몰살시킬 수 없는데 이번에 김애동과 김보살을 건드려 인간은 건들면 안 된다는 규율을 어겼기에 명분이 생겨 없앨 수 있었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악신들은 인간을 건들면 자신들이 큰일 날 것이라는 훗날을 생각하기엔 머리가 매우 나쁘다는 TMI도 알려주셨다. (*악신들이 머리가 나쁘다는 것은 다른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 일이 생겼었는데, 그것은 나중에 다시 풀도록 하겠다. 작은 스포를 하자면 다행히(?) 한국 악신만 머리 나쁜 것이 아니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일 1월 1일 특집(?)으로 동자, 동녀님들의 러브스토리를 올리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