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나의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문수문수동자님이 김애동이 모시는 호랑동녀님께 대시 아닌 대시(?)를 했다가 차였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짧게 설명하자면 문수문수동자님은 하트 머리를 한 호랑동녀님께 한눈에 반했는데, 계속 하트 머리로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곧 보살이 될 건데 보살이 되면 연애는 할 수 없다고 하여 호랑동녀님께 차였었다...)
그렇게 문수문수님께서 결국엔 포기를 하나 싶었는데, 문수문수님께서 계속 관심을 보이면서 두 분은 연인관계가 되셨다. 어렵게 쟁취한(?) 사랑이었지만 두 분은 비밀연애를 하셨는데, 문수문수님이 곧 보살이 되기 때문. (*보살이 된 뒤에도 몰래 연애를 하기 위해선 비밀로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문수문수님과 호랑동녀님의 원활한 데이트를 위해 김애동은 호랑동녀님의 공간에 물로 장벽을 만들어 드리기도 하고, 기꺼이 약왕보살님의 매화동산을 내어주기도 했다. (*김애동이 모시는 신님들께서는 두 분의 데이트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셔야 했다...)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문수문수동자님은 호랑동녀님과 하루에도 몇 번씩 데이트를 즐기셨는데, 김애동이 신님들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문수문수동자님이 계셨다고. 초반에는 마주칠 때마다 문수문수동자님이 쑥스러운 듯 ‘헤헤’라며 웃으셨었는데, 이후로는 그냥 당연하게 마주치고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함께 지내는 두 분 사이는 진도가 살짝 더뎠는데, 연애 한번 해 본 적 없는 문수문수동자님은 모태솔로(?)다 보니 뽀뽀하는 법도 잘 모르는 분이었기 때문. 하루는 두 분의 진도를 여쭈었다가, 손잡고 걷는 데이트를 한다는 말에 호랑동녀님과 데이트하다가 몰래 뽀뽀 한번 해보시라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간식을 드시러 오신 문수문수동자님을 잡고 여쭸다.
“뽀뽀 성공하셨어요?!”
“호랑동녀가 화냈어...”
“왜요?! 뽀뽀했다고요?”
“뽀뽀했는데... 치아랑 치아가 부딪혔어.”
“네...? 그건 박치기...”
“보살님이 박치기하면 된다고 했는데...”
김애동과 나는 이마를 탁 쳤다. 그리고는 김애동과 내가 아예 자세를 잡고 이렇게 하시라고 뽀뽀하는 척하며 코치를 해드렸고 결과는 the 성공...♥
그렇게 두 분은 다른 동자님을 몰래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나가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문수문수님이 보살이 되셨을 때 호랑동녀님과 혼인한 사이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동녀님을 떠나보낼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 했던 김애동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했다. 그리고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속으로 힘들어하는 김애동의 모습을 보고 호랑동녀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트리게 했다.
사실, 문수문수님이 호랑동녀님께 반한 것 모두 계획된 것이었다는 것! 호랑동녀님께서 문수문수님이 마음에 들어 문수보살님과 딜(?)을 하고 문수문수님을 꼬시기 위해 이곳으로 내려오신 것이었다. 그래서 호랑동녀님께서 김애동에게 자신이 내려와 있었던 짧은 시간 동안 자신에게 이렇게 많이 마음을 줄 줄은 몰랐다고 하시며 김애동을 달래주셨었다.
(*나중에 두 분이 결혼 후에 동자님들이 하나같이 ‘호랑동녀 걔는... 원래부터 가지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가져야 했던 애야...’라고 하셨었다.)
신들의 계획에 우리 인간들이 무어라 할 수 없는 법. 12월에 문수문수님이 보살이 될 거라는 것은 미리 예정되어 있기에 그즈음 호랑동녀님을 보낼 것이라고 예상하며 두 분의 결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10월의 어느 날 김애동이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우리 동녀님... 혼례복 입고 계시는데...?”
“내일이 가는 날이니 보낼 준비 하렴.” 선생님께서 김애동의 말에 답해주셨다. 그 말에 우리는 다급하게 문수문수동자님을 불렀다. 그때가 밤 9시경이었다.
“왜 불렀어?”
“동자님! 내일 결혼하신다면서요?!”
“응? 누가 그래?”
“저희 애기씨 혼례복도 입고 계신데요?”
김애동의 말에 문수문수동자님이 충격에 빠진 듯 잠시 멈춰있다가 다급하게 말하셨다.
“아니! 왜 그걸 나한테 말 안 해? 호랑동녀 불러 봐!”
“애기씨 잘 안 나오세요.”
(*결혼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신 뒤, 계획을 위해 준비해야만 하는 게 있어 점사도 보지 않으시고, 동녀님의 공간 안에서 홀로 무언가 준비하고 계셨었다.)
“지금 급하잖아! 빨리!” 문수문수동자님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빨리 나오라면서 계속 다그쳤고, 결국 동녀님께서 오랜만에 김애동의 몸으로 나오셨다.
“말했는데.”
“말 안 했어!”
“같이 길일 잡았잖아.”
“그냥 길일이라고만 했잖아!”
“길일 같이 잡았잖아.”
“길일이 그거라고 말을 해줘야지! 빨리 가야겠다. 준비해야 해!”
문수문수동자님은 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서둘러 돌아가셨다. 결혼식에 올 수 있게 주변에 청첩장도 돌려야 했고, 결혼식 준비도 해야 한다며 바쁘다고 한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호랑동녀님께 여쭤봤는데, 문수보살님께 말해두었기에 문수문수동자님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혹시 우리도 그 결혼식을 보거나 할 수 있는지 여쭤봤는데, 우리들은 꿈으로라도 볼 수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새벽 4시에 치러진 두 분의 결혼식은 동자, 동녀님들 사이에서 엄청난 이슈가 되어 시끌시끌했다고 한다. (*문수문수님은 결혼 준비를 서둘러서 하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고) 다만, 용궁동자님은 매우 삐지셨었는데 문수문수동자님과 절친인 줄 알았는데 자신에게는 연애에 대해서 말도 안 해줬다며 결혼을 지켜보는 동안 인상을 찌푸리고 계셨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문수문수동자님과 같은 절의 희 동자님께서는 호랑동녀님과의 연애를 눈치채고 계셨다고. 문수문수동자님께 어느 날부터 호랑이 냄새가 나기 시작했는데, 우리에게 자주 오다 보니 그런가 보다 생각하셨다가 문득, 이렇게 냄새가 날 정도라면 딱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분이 결혼한 뒤, 호랑동녀님께서는 조금 성장하셨다고 한다. 보살이 될 동자의 배우자로서 동녀님도 성장을 하고 계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점사가 아니라 뒤편에서 김애동의 내면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신다고 하셨다. 문수문수동자님께서 보살님이 되신 뒤엔 A사에 계시거나 김애동의 몸속에 계시거나 하면서 왔다 갔다 하실 예정이라고. (*문수문수동자님은 12월의 어느 날 A사의 보살님이 되셨는데, 그때 호랑동녀님도 선녀님이 되셨다고 한다.)
호랑동녀님께서는 내게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나를 다독여주셨던 만큼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대화는 못 하더라도 계속해서 나를 지켜봐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다.
** 문수문수님은 보살님이 되시기 전, 두 분의 만남이 호랑동녀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고...
2. 용궁동자님
용궁동자님의 연애사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끔 와서 이야기를 해주신 것들을 바탕으로 짧게나마 적어보려고 한다.
용궁동자님께서는 천신동녀님과 연애를 하고 계신데, 천신동녀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하는 우리를 위해 그분께 우리를 찾아 가보라고 말을 해주신다고 했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분께서는 오지 않으셨는데, 다른 동자, 동녀님께 이 일을 말씀드리니...
“걔가... 가란다고 가는 애가 아닌데...”
라는 반응을 보이셨다. 그래서 김애동과 나는 생각했다. ‘아... 한 성격 하시는 분이시구나.’ 그래서 어느 날 용궁동자님께 여쭤 봤다.
“천신동녀님께서 가란다고 가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어... 그건 맞아.”
“성격이 좀 세신가 봐요?”
“화끈해! 그런데 좋은 쪽으로 화끈해.”
“오~ 그럼 어떤 부분에 반하신 거예요?”
“음... 얼굴 못생겼다고 하면 죽을 텐데... 그래도 안 예쁜 건 안 예쁜 거야! 그래도 성격이 화끈한 게 정말 매력이야. 거기다가 나를 잘 다독여주기도 하는 포용심도 가지고 있어.”
(*천신동녀님이 못생기신 게 아니라 용궁의 기준이... 살집이 어느 정도 있는 똥똥한 몸을 예쁘다고 한다. 그래서 마른 몸을 가진 분들을 못생겼다고 한다...)
천신동녀님의 매력이 어찌나 깊은지, 용궁동자님도 천신동녀님과 결혼할 거라고 진작 말 하 셨었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두 분이 결혼하기에 조화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
선생님께 여쭤보니 신들의 결혼은 연애결혼과, 조화를 맞추기 위한 결혼으로 나뉘는데 연애결혼을 하려면 결혼을 했을 때 조화가 잘 맞아야 한다고 하셨다. 만약 조화가 맞지 않음에도 사랑을 위해 결혼을 강행하게 되면, 두 신은 벌을 받아 인간세계로 떨어져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그래서 용궁동자님과 천신동녀님이 결혼을 못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는데, 용궁동자님과 천신동녀님이 B사의 지붕동자님께 조화를 맞출 방법을 상담하셨다고. 이후 만나 뵌 용궁동자님은 매우 어려져 계셨었는데, 왜 이렇게 어려지셨냐고 여쭤보니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하셨었다. 아마도 두 분이 결혼할 방법을 찾으신 것 같았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가까운 미래에, 두 분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3. 희 동자님
희 동자님은 우리에게 자주 찾아오시는 동자님 중 한 분이신데, 우리가 궁금한 게 있으면 가장 많이 찾는 분이기도 하다.
희 동자님께서는 김애동이 모시는 분들 중 용궁동녀님(*용궁애기씨)와 연애를 하고 계신데, 연애를 하시는 게 확정되었을 때 김애동은 ‘A사의 동자님들은 저희 동녀님들 킬러세요?!’ 라며 장난스럽게 여쭈었었다...
용궁애기씨와 희 동자님의 첫 만남은 다소 의아스러웠다. 용궁애기씨가 김애동의 몸에 내려오시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희동자님이 김보살의 몸에 들어오셨다.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에 원치 않게 오시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용궁애기씨의 꼬리에 목덜미가 채여서 그대로 끌려왔다고. 그렇게 A사로 돌아가셨다가 다시 채여 오기를 여러 번, ‘이거 왜 이래!’라고 살짝 짜증(?)이 나신 동자님을 위해 용궁애기씨가 기운을 잘 갈무리해 주셨다.
이후 두 분은 그것을 인연으로 친구로 지내기로 했는데, 그것을 용궁동자님께 말하는 순간 ‘동자야, 동녀야?’라고 여쭤보시더니 동자라고 하자 ‘친구로만 지내라고 해!’라고 경고 아닌 경고를 날리셨다. (*용궁애기씨가 용궁 직계 자녀분들 중 막내로, 금지옥엽이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평소처럼 간식을 먹다 희 동자님께서 용궁애기씨가 귀엽다고 말하신 것을 우리는 놓치지 않았다. 혹시 좋아하시냐고 여쭙는 말에 희동자님은 우리를 외면하며 고개를 돌리셨다. 결국 용궁애기씨가 나오셔서 “나 좋아해?”라고 하니 희동자님께서는 “돌직구...”라면서 부끄러워하셨다.
우리는 희동자님께 선물도 드리고, 그러면서 마음을 전하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희동자님께서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며칠 뒤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여쭤보니 희동자님께서 시무룩해하셨다. 그리고는 “끝났어...”라고 하셨는데 가슴 아파서 이야기하지 못하겠다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용궁애기씨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하셨다.
“동자님, 저희에게 말씀해 주셔야 다시 잘 될 수 있게 이야기라도 해드리죠.” 김애동이 말했다. 희동자님은 잠시 고민하시다가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문수가 나한테 이것저것 조언을 해줬는데, 진짜 이상한 조언을 하는 거야.”
“무슨 조언이요?”
“진짜 확실한 거라고 하면서... 꽃을 한 아름 주고, 그럼 용궁동녀가 양손으로 받으니까 손이 없을 거 아니야. 그때 치마를 들추고 거기에 머리를 집어넣으라고...”
(*나중에 문수문수님께 여쭤보니 호랑애기씨께서 알려주신 방법이라고... 그 말을 듣고 김애동은 ‘우리 애기씨 취향이...’ 라며 말을 아꼈다.)
김애동과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김애동과 나는 이것을 풀기 위해선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과하세요. 진심을 담아서... 사과하세요.”
“문수동자님이 확실한 거라고 조언해 준 거라고 꼭 말씀하시고요.”
“괜찮을까...”
“진짜 마음을 꼭 담아서 진심으로 사과하셔야 해요!”
희동자님께서는 알겠다고 하시며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떠나셨다.
다음날, 희동자님이 오셔서 어떻게 됐는지 여쭤보니 용서를 받으셨다고 했다. 용궁애기씨가 잠시 외출한 틈을 타 용궁애기씨의 공간을 꽃으로 가득 채우고 기다리고 있다가 용궁애기씨가 들어온 순간 그랜절 자세로 사과하셨다고... 그랬더니 용궁애기씨가 웃으면서 알겠다며 사과를 받아주셨다고 했다.
이날 이후 두 분의 사이는 더욱 가까워졌는데, 희동자님은 매일매일 꽃을 준비해서 용궁애기씨에게 찾아가셨고, 용궁음식을 그리워하는 애기씨를 위해서 용궁음식이 있는 다른 절에 가서 음식을 구해다가 선물로 주시기도 하셨다. 거기에 용궁이 그리울까 봐 용궁에서 피는 꽃을 주기도 하고, 해마 두 마리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고. 이런 마음이 통한 것인지, 용궁애기씨는 희동자님께서 꽃으로 만들어준 머리핀을 꼭 하고 다니셨는데, 희동자님은 그 모습이 매우 귀엽다면서 좋아하셨다. 서로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지만, 이 두 분의 관계는 비밀로 해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용궁애기씨가 용궁의 금지옥엽이기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밀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희동자님과 같은 절에 계시는 룡동자님께서 놀러 오셨다.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룡동자님께서 희동자님 이야기를 하셨다.
"하하하... 저희가 속이려던 건 아니고... 용궁동자님한테 들키면 사달이 날 테니까..."
우리의 말에 룡동자님은 왜 그랬는지 이해한다면서 비밀로 지켜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소문의 메카인 A사의 특성상 희동자님께 자기가 알게 됐다고 말하다가 다른 동자님이 듣고 소문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도 비밀로 하시겠다고 했다.
(*나중에 희동자님께서 '아니, 연애 사실을 알게 됐는데 당사자한테도 비밀로 한다고?'라고 하셨다가 비밀로 한 이유를 들으시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룡동자님께서 희 동자님이 가져온 물건들로 연애 사실을 알게 된 후, 용궁애기씨의 공간에는 커튼이 쳐지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분은 알콩달콩 몰래 데이트를 즐기셨다.
늘 희동자님께서 김애동에게 찾아와 데이트를 하는 터라 들킬 일이 적어, ‘이제는 입단속만 하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생각은 매우 안일했다. 며칠 뒤 문수문수님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두 분의 연애를 용궁동자님께 들키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그것이 정말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우리가 무언가 대비를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사건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보살에게서 전화가 와서 받으니 "용궁궁~"이라고 희동자님께서 귀엽게 나를 부르셨다. (*희동자님은 카톡도 잘 보내시고, 전화도 잘하신다)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지으면서 어쩐 일이시냐고 여쭈니 김애동도 옆에 같이 있었는지 "희동자님과 용궁애기씨 용궁동자님한테 들켰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쭈었고, 희동자님께서는 전화로 구구절절이 설명해 주셨다!
"용궁동녀랑 같이 있는데, 갑자기 용궁동자가 찾아온 거야! 그런데 하필 그때 내가 용궁동녀랑 마주 보고 앉아서 두 손을 꼭 잡고 있었거든. 그걸 보자마자 용궁동자가 내 뒷목을 확 잡아서 그대로 용궁으로 끌고 갔어. 끌려가는 동안 '아... 난 이렇게 성장하지 못하고 소멸하는구나...'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용궁에 도착했는데, 용왕님이 떡 하고 앉아계시고, 직계들이 쫘아아아악 서 있는 거야! 용왕님 앞에서 강제로 무릎 꿇리고 머리 딱 대게 하더라고.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마라!'라고 그랬거든. 그래서 내가 '마음이 자하고 비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라고 했어. 무슨 말인지 알지?"
"자비 말씀하시는 거 아니세요?"
(*너무 '자비'라서 혹시라도 틀린 건 아닌지 순간 고민했다.)
“맞아. ‘자’는 상대가 진정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거고, ‘비’는 고통에서 해방되길 바라는 거야. 그리고 ‘마음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관계는 공하고 허하지 않을진대 어떻게 우리가 만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더. 그랬더니 잠깐 멈칫하시더라고. 그래서 ‘너의 마음이 어떠하냐’라고 해서 ‘네, 사랑하고 애정하고 많이 아끼고 자하고 비합니다.’라고 했어.”
희동자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곁에 있을 거고, 가장 고통스럽거나 힘들 때 내가 모든 걸 다 지켜줄 수 있는 보호막이 될 거다.’라고 했어.”
“엄청 멋있네요.”
“그래서 용왕님이 ‘하지만 말뿐이지 않냐. 실천을 어떻게 보여줄 거냐.’라고 하셔서 ‘실천은 지금도 보여드리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보실 수 있는데 어찌하셔서 미래를 아시는 분이 그거에 대해서 여쭙니까.’라고 했어. 그래가지고 용왕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셔서 나를 일으켜서 끌어안았어. 그리고 용궁동자도 되게 함박웃음 지으면서 미래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어봤어.”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공하고 허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했어. 그래서 정식으로 허락받고 ‘우리 사위’라는 말도 들었어.”
이후 ‘하늘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니 어찌하여 인간들이 원하는 세상이 펼쳐지지 않겠습니까.’라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하시면서 용궁에서 엄청 융숭한 대접을 받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소처럼 생긴 분이 등에 태워도 주셨다면서 자랑하셨는데, 선생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더니 그분이 용왕님의 첫째 아들이라고 하셨다.
이후 용왕님께서 직접 용궁을 안내해 주셔서 구경한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셨는데, 심연이 깊고 어두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그다음으로 구경하신 곳은 금은보화 방이었는데, 방 안에 들어가니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의아한 마음으로 나오신 뒤, 옆의 무(無)라는 방에 갔는데 그 방 안에는 금은보화가 가득 있어서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욕망이라는 방이 있어서 들어가니 금은보화 방처럼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방안에는 금은보화 방과는 다르게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게 보였다고 한다. 기포에도 의미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 기포가 ‘인간의 숨’이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럼 인간은 숨을 쉬는 모든 순간에 욕망이 담겨있는 건가요?” 희동자님의 말씀을 듣고 궁금한 마음에 여쭸다.
“맞아. ‘나는 욕망이 없어요.’라고 하는 건 있을 수 없어. 하물며 신도 그럴진대, 신을 본떠 만든 인간이 어찌 그러겠어.”
(*나중에 이것을 김보살에게 말해주니 김보살은 욕망이라는 것은 결국 덧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는데, 희동자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는 그 또한 맞다고 하셨다.)
그렇게 용궁에서 정식으로 허락을 받은 희동자님은 전국의 모든 절을 돌아다니면서 용궁애기씨와의 관계를 이야기하셨고, 이 사건으로 한동안 동자, 동녀님들이 또 시끌시끌하셨다고 한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께, 신은 한 번 결혼하면 이혼이라는 것이 없는데 신들은 자신과 평생 할 것이라는 것에 확신하는지에 대해 여쭤보았다. 그러자 확실한 이끌림이 있어서 그것은 헷갈릴 수 없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신을 본떠 만든 인간들에게도 그런 이끌림을 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한 분들의 이야기 중 간혹 가다가 첫 만남부터 ‘난 저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라는 걸 느꼈다는 분들이 계시니까. 하지만 그런 만남만을 찾고 기다리기엔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므로,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혹은 결혼 후 이혼을 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하게 됐다.
2025년 새해에는 많은 분이 동자, 동녀님처럼 미래까지 함께할 수 있는 인연을 만들 수 있기를. 그리고 연인과 함께하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그분들의 인연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덧.
나중에 용궁동자님께서 오셨을 때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여쭤봤다. 원래는 김보살의 몸에 들어가서 간식을 먹으며 동생과 이야기하실 생각이었는데, 김보살이 자고 있어서 바로 용궁애기씨의 공간으로 갔다가 희동자님과의 데이트를 목격하셨다고. 그래서 이성을 잃을 것 같아 일단 잡아서 용궁으로 가셨다고. 용궁으로 가시는 길에 모든 직계에게 비상소집령을 내려서 직계분들이 오시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후 '희 괜찮더라. 어려운 말도 잘하고, 똑똑해 보여. 아주 괜찮은 애 같더라고.'라고 하셨다. 희동자님께서 이대로 소멸되는지 걱정했다고 하니까 희희희 웃으시면서 '소멸까지는 안 시키지. 만약 별로였으면 안 만난다고 할 때까지 차원에 가둬둘 뿐이야.'라고 하셨다...
희동자님께서 완전 인정을 받으신 후에는 용궁애기씨가 희동자님과 같이 있다고 하니 '그럼 어쩔 수 없지! 희랑 있는 거면 괜찮아.'라고 하실 정도.
*덧 2.
희동자님이 용궁에 잡혀갔다는 소식은 희동자님이 소속되어 있는 A사에도 전해졌는데, 희동자님께서 잘못 됐을 경우 전쟁을 벌이기 위해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그래서 전쟁을 하면 어디가 이기냐고 여쭤보니, 누가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더 높은 곳에서 중재가 나올 때까지 전쟁이 계속 이어졌을 것이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