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살은 성격 자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잘 못 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느니 그냥 자기가 상처받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성정이 바보같이 착한 친구다. 그런데 그런 김보살이 우리에게 말했다.
“오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짜증도 나고, 우울하고 뭔가 계속 마음이 힘들어.”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속으로 좀 놀랐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관해서 이야기를 잘 안 꺼냈던 친구기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라는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날은 김보살에게 소중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난 날이기도 하기에 기분이 좋다고 했었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친구를 만나러 의정부까지 (*우리 동네에서 의정부까지는 차로 약 2시간 정도 거리다) 운전하고 다녀온 것이 피곤한 것인지 고민하면서도 신경 쓰고 있었는데 그날 밤, 김보살에게서 온 전화를 통해 마음이 심란했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결론은 김보살의 몸에 애기 귀신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친구가 사는 아파트에서 장이 열렸었는데 거기서 붙여온 것 같다고. 오래전 아파트 근처에 군부대가 있었는데, 부대 인근 작은 슈퍼 골목을 돌면 있는 집에서 살던 ‘미선’이라는 5살 아이였다. 생전에 엄마가 기다리라고 해서 자기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계속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김애동은 혹시 엄마가 아이를 버린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그때 상황을 물어봤다고 했다. 알고 보니 당시는 전쟁 중이었고, 엄마가 아이를 숨겨둔 것이었다고. 그런데 엄마는 아이에게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숨어있을 만한 곳을 푹푹 찌르며 다니던 것에 찔려 아이도 삶을 마감했던 것.
오랜 시간 엄마의 말만 머릿속에 간직한 채 아이는 그곳에서 엄마를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 우울해하면서도 끝까지 올 거라고 믿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천신 할머니께서 아이를 올려보내 주었다는 말에 엄마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다행히 엄마와 천사(*김보살에겐 빛나는 존재로만 보였기에 천사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천사라고 했다고) 손을 잡고 가는 걸 봤다고 했다.
김보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아이는 얼마나 오랜 시간 그곳에 홀로 서 있었던 것일지 생각했다. 전쟁 때 죽었다면 정말 오래전의 이야기인데, 그 긴 시간 자신을 알아보는 이 없는 곳에서 홀로 그곳에 서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그 아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무섭고 외로웠을 텐데 그 부정한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원귀가 되지도 않고, 홀로 그곳에서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덧.
우리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엄마는 아이에게 숨어있으라고 했던 엄마에게 화를 냈다.
“아니, 아이가 잘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귀신이 되어서 가보지도 않아? 애한테 기다리라고 했으면 어떻게 됐는지 찾아가 봤어야 할 거 아냐!”라고.
2. 지박령이 된 아이를 위하여
내가 사는 건물은 귀신이 그득그득하다. 세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째는 애초에 동네 자체에 귀신이 좀 많다. 과거 무덤 터였던 곳에 세워진 동네라고 한다. 둘째는 내 영이 인간의 영이지만 영물에 가까운 영이고, 용궁 기운이 충만해지면서 신수 다음으로 맛있는 먹잇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나는 문수문수보살님께서 나에게 악한 마음을 푼 영적인 존재들은 나를 볼 수 없게 기운을 넣어주신 액세서리를 늘 하고 다닌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동자님들이 우리 집에 매일 같이 왔다 갔다 하시다 보니 집이 신성한 공간이 되었는데, 그 기운이 강하지 않다 보니 귀신이 노리고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매일같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김애동이 집에 돌아가는 길엔 장군 할머니께서 나오셔서 부채로 주변을 정화하면서 돌아가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날도 역시 김애동이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계단에서부터 귀신이 많아서 장군 할머니께서 부채질하시면서 오셨다고. (*김애동이 당시 오간 이야기도 전달해 주어 대화체로도 작성하도록 하겠다.)
그러다 우리 건물이 있는 골목을 빠져나와 정육점을 지나는데 거기도 느낌이 찐득해서 할머니께서 부채질하시니 갑자기 옆에서 “시죠 시죠. 부채질 시죠 시죠.”라고 말했다고.
(*이 이야기를 나눌 때, 김보살은 자기가 ‘부채질 시죠 시죠’라고 말했을 것을 생각하며 현타가 온 것 같았다.)
“나는 네가 더 싫다. 에잉~” 아이의 말을 들은 장군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고.
“그래도 시죠 시죠. 하지망~”
“왜 여기 있누? 좋은 곳 보내주랴?”
“나 못 가.”
“너 여기에 묶여있니?”
“응 못가.”
아이의 말에 어디까진 올 수 있는지 보려 집으로 걸어가니 아이가 있던 곳에서부터 50m 정도 거리에 있는 전봇대를 지나자 김보살의 몸에서 아이가 쑥 빠져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뒤로 돌아가니 아이가 김보살의 몸에 들어왔다고.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께서 아이에게 물어보셨다고 했다.
“너 진짜 올라갈 테냐.”
“응... 올라가고 싶어.”
아이의 말에 장군 할머니께서 물러가시고 지신 할머니께서 나오셨다고 했다.
“발이 묶여 있구나. 애기, 너 여기서 죽었구나?”
지신 할머니께서는 아이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씀하셨고, 아이는 이곳에서 죽은 게 맞다고 긍정했다고. 그리고 지신 할머니께서는 발목 부근에 부채를 대셨는데, 김애동의 말에 따르면 그때 무언가 끈을 자르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며 내가 교통사고로 죽은 영은 거기에 그대로 박혀있다고 들은 게 생각난다고 하니 김보살이 사고가 맞는 것 같다고. 전봇대를 지나는 데 오토바이 소리가 나니까 무서웠다고 했다.)
“다시 걸어 보거라.”
지신 할머니의 말씀에 다시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그 전봇대를 지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제 걸릴 것 하나 없으니 그대로 쭉 집으로 가면 되는 것이었는데, 전봇대를 지나 아이가 그대로 멈춰 서있었다고. 그래서 김애동이 의아한 마음에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 뒤쪽의 땅에서 끈이 나와 아이를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고 했다. 지신 할머니께서 그걸 보시더니 부채로 탁 쳐내시고, 아이가 집으로 들어올 때까지 계속 뒤에서 부채질해 주셨다고.
집에 들어와서 영을 보내주는 천신 할머니께서 나오셔서 아이를 보내주려고 하니, 아이가 장군 할머니께서 보내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아이의 바람대로 장군 할머니께서 나오셔서 아이를 위한 길을 만들어 줬는데, 아이가 길을 못 찾고 헤맸다고. 그래서 김애동이 몸속에서 키우고 있는 수련을 한 송이 먹이니 아이가 길을 찾았다고 했다.
“문이 보이는데 멀리 있어. 그런데 길이 무서워...”
아이의 말에 장군 할머니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 주시면서 무섭지 않게 길 옆으로 꽃밭도 만들고 동물들도 뛰어놀게 만들어 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장군 할머니와 함께 문 앞까지 이동한 아이는 문 안에 있는 날개 달린 사람이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했고, 장군 할머니께서 아이를 달래주셨다고 했다.
“그 손 꼭 잡아라.” 장군 할머니의 말에 아이가 날개 달린 존재의 손을 꼭 잡았고, “따듯하지?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라고 말씀하시며 장군 할머니께서는 계속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을 놓아주시면서 머리를 꼭 안아주셨다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아가...”
장군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그 아이를 보내주셨다. 안타깝게도 이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지박령으로 땅에 묶여있었던 그 아이가 그곳에서는 자유롭게 뛰놀 수 있기를 바랐다.
덧.
나중에 선생님께 여쭤보니 교통사고를 난다고 다 지박령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원한에 따라서 지박령이 되는데, 이 아이는 그곳에서 기다리는 어떤 존재가 있었던 것. 그리고 땅에서 나와 이 아이를 잡고 있고, 아이를 잡으려고 따라왔던 끈은 땅에 스며들어있던 이 아이의 원한이라고 하셨다. 즉, 스스로의 원한에 메여있었던 것이다.
3. 학교를 다니고 싶었던 아이를 위하여
* 이번 이야기는 카톡으로 나누었던 것들을 캡처하여 그대로 올리려고 합니다. 살짝 과격한(?) 자음들이 있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개인정보들이 들어간 부분은 삭제하고 올립니다.)
** 브런치가 30화까지 밖에 되는것을 알지 못했던 터라 쭉 작성할 수 있는 밀리로드로 이동하려고 합니다. '대한신녀실록'이라는 제목으로 다음주부터 연재하려 하는데 이 전과 시작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