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 또 자책.
이 나이 먹도록 마음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다니.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잉크 한 점이 순식간에 백지에 번지는 것처럼, 지나간 사랑의 과정이 온 마음을 까맣게 물들였다.
“그때 참 좋았는데
내가 마음을 좀 더 들여다봤다면,
불안을 잘 풀어냈다면 우린 달라졌을까?”
한 번 시작된 자책의 말은 끊김도 없이 반복 재생됐다. 그리고 그 끝은 '나 때문에'로 귀결됐다.
예뻤던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자책은 더욱 심해졌다. 연애 초반 그와 나는 서로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라 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예쁜 말들을 모아 전했다. 왜, 사랑하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주변에서 소소하게 지나치던 것과 그의 연결 지점을 찾으며 종일 사랑스러워했다.
당시 나는 낮에는 회사, 밤에는 대학원으로 쉴 틈이없는 한 주를 보내며 지치기 일쑤였지만, 시간을 쪼개어 그를 만나고 진심을 꼭꼭 눌러 담은 손편지를 전하는 게 행복이었다. 나로 인해 기뻐하는 그를 보면 지쳤던 마음이 힘을 얻었다.
그러다 마주한 이별, 모든 게 끝났다. 사랑이 담겼던 눈빛은 차가워졌고, 온기 가득한 입술엔 비난이 담겼다. 항상 함께일 거라 믿었는데, 이제 모든 걸 순간으로 남겨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게 괴로웠다.
헤어지자는 말의 무게도, 그 괴로움도 감당할 수 없는 어른스럽지 못한 내가 싫었다. 그러길 여러날. 과거의 나를 탓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제는 찾아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속단했다.
“너 그런 사람 다시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그때 알았어야 했다. 나는 나를 가장 아프게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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