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부정하기
누구에게도 헤어졌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지인들에게 운명이라는 말로 갖은 마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설렘에 빠져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살았기에 달라진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솔직해야 하는데,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두렵고 창피했다. 이별했다 말하면 내가 꼭 하자 있는 사람, 사랑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 인정하는 것 같았다.
“요즘 연애 어때? 잘생긴 남친 잘 만나?”
만나는 사람들은 조건반사처럼 전 남친의 안부를 물었다. ‘제발, 묻지 않았으면’ 모든 촉을 세워 ‘그만’이라고 표현했지만, 그와 관련된 질문은 대화에서 빠지지 않았다. 어떡하지, 사실대로 말할까.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 난 ‘척’을 했다.
“네, 잘 지내요.”
있는 척했지만, 누구나 대답에서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을 거다. 어떤 사설도 붙이지 않은 짧고 간단한 대답이니까.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줄 수도,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없다. 우리는 끝났으니까. 머리는 분명 현실을 알고 있지만, 마음이 그러지 못했다. 그들 앞에서 애써 웃어 보이는 걸로 상황을 모면했다.
‘이건 건강하지 못한 방식이야.
왜 인정하지 못하니.’
마음 한편에서 작은 외침이 들려도 무시하고 넘겼다. “왜 헤어졌어?”라는 말에 “제가 많이 불안해서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내 바닥이 드러날 것만 같아서였다. 조금만 더 있다가, 그래, 조금만 더 있다가.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말하자며 혼자만의 비밀을 만들었다.
어쩌면 난 이별을 받아들이는 시기를 놓쳐 더 아팠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하하, 안 맞더라고요.”라며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 내겐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조금 더 일찍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할 걸'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숨겨 싸매기에 급급했다.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을 숨기는 미봉책은 티가 나는 거짓말이었다. 결국 자책의 시간과 더불어 이별 유예 기간도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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