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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pr 11. 2021

여행은 해시태그가 아니야

여행을 계획하며 상상하는 이미지는, 시간을 다 생략한 해시태그다.


여행은 해시태그가 아니야


“아직도 아니야?”


땡볕 아래서 20분 정도 걷던 그가 외쳤다. 강릉에서 칼국수를 먹고 계획에 없던 ‘오죽헌’을 찾아 걷던 길이었다. ‘거의 다 왔어, 다 왔어’ 남편을 달래며 네이버 지도 좌측 아래 나침반 모양을 연신 누른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파란색 화살표들이 총총총 오죽헌을 향해 이어져 있다. 빨리 거리가 줄어들기를 생각하며 기지개를 켜고, 남편의 어깨를 두드린다. 


여행지에서 지도를 펴거나 앱을 킨 채로 걷고 있을 때, ‘여행’을 왔다는 실감이 난다. 길치인 나는 길을 가고 있는 동안은 늘 확신이 없다. 맞는 길로 가도 도착 전에는 늘 헤매는 것 같다. 하지만, 그 헤맴이 즐겁다. 쌓인 헤맴의 길들이 실처럼 꿰어 여행이 된다. 혼자 떠난 네팔 여행에서도 땡볕 아래 종종 걸었다.  


2010년 여름 혼자 네팔로 떠났다. 땡볕 아래서 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을 찾았다. 파괴의 신인 시바 신전, 원숭이인 하누만 신전 등.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비는 신들의 신전을 보았다. 이후 부처의 눈이라는 커다란 보우더 나트도 보았다. 크고 웅장한 신전들이 눈 위로 펼쳐졌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것은  저녁에 생수를 사러 들어간  슈퍼 한구석에 놓인 작은 불상과 그 앞에 향을 피우고 기도하는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아이의 이마에 제3의 눈이라는 빨간 티카를 찍어주는 엄마의 손길이 보우 더 나트의 눈동자보다 선명히 남았다. 


진정한 걷기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이었다. 평소에도 별로 하지 않던 산행이 내키지 않아 두려웠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오기로 산행을 시작했다. 힘들다고 느낄 때쯤 보이던 산 중턱의 학교와 맨발의 학생들, 그리고 닭장을 이고도 산을 묵묵히 오르던 큰 소. 말 못 하는 풍경과 동물들이 등을 떠밀어주었다. 


이틀 동안 올라 도착한 곳, 새벽이슬이 맺힌 수풀림을 지나 만난 푼힐 전망대에서의 일출은 서울에서의 태양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높은 곳에 올랐다는 뿌듯함이 기뻤다. 


오롯이 혼자였던 여행길에서도, 혼자이지 못했음을 알았다. 첫날 호객꾼들에게 친구와 온 것으로 가장했던 것처럼 홀로이지 못했다. 고요히 걷는 길들마다 수많은 이들을 떠올렸다. 그래도 시선을 이끄는 것이 무엇인지는 깨달았다. 걷다가 마주하는 작은 표정들과, 사소한 정성들 만날 때 행복해졌다. 혼자 헤맨 시간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이후로도 자주 걷고, 천천히 보게 되었다.


멀리 가건, 근거리에 있건 이따금 홀로 걸었다. 그러면서 겪는 좌충우돌들은 짜증이 나기는 해도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여기서 좀 쉬자”


오죽헌에 도착한 남편과 나는 사물함 짐을 맡기는 곳에서 잠깐 쉬었다. 오죽헌은 까만 대나무가 뜰 안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검은 대나무를 오죽이라고 했다. 우리는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이이가 태어난 방, 공부한 방 등을 보고,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 등의 문구를 보며 이이와 신사임당의 정신을 만났다.


오죽헌에는 작은 기념품 샵이 있었다. 초충도도 있었고 부채도 있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신사임당 화폐인 오만 원이 덕지덕지 붙여진 노트, 또는 오만원권이 크게 만들어진 열쇠고리 등이었다. 오죽헌에는 이이의 ‘청렴’과 ‘검소’를 몸소 실천하고 ‘사치’를 멀리하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정작 모델들은 율곡 이이나 신사임당의 정신이 아니라 ‘돈’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기념품에 표현되어있었다. 신사임당이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이러니한 장식품을 보며 우리는 킬킬댔다.


강릉에서 인스타그램을 뒤져 찾아간 팥빙수 맛집은 생각보다 달콤하지 않았다. 끈적임이 가득한 여름날의 여행은 날파리와, 쏟아지는 땀이 함께 했다. 


여행을 계획하며 상상하는 이미지는, 해시태그로만 축약되는 이미지다. 하지만, 나는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과 땡볕을 걷고 길을 헤맨다. 해시태그가 선사하는 멋진 이미지가 아닌, 예상에 없던 고생을 선물함에 때로 미안함을 느낀다. 


반짝이는 이미지 속에서는 뜨거운 햇살과, 땀으로 살갗과 엉겨 붙는 티셔츠와, 윙윙대는 날파리들이 생략되어있다. 그 모든 과정들을 천로역정처럼 감내하여도 결과론적으로 우리는 해시태그의 이미지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몇 번의 여행을 함께하며, 그런 과정을 기꺼이 감내해 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여행은 해시태그가 아니라 헤매임이다. 그리고 그 헤맴을 혼자 겪던 시간을 지나, 함께 해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여정은 무르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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