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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ug 31. 2019

공룡과 사슴, 그리고 빚쟁이

나는 공룡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얼마 전 돈을 빌렸다.

처음 대출 상담을 받는 자리에서

은행은 연봉 정도의 돈을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그 돈을 빌리고, 지금까지 모은 돈을 보태도

서울에서 혼자 힘으로 전셋집을 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만약 전세자금이 아니라 사업을 한다거나

어떤 위기가 온다고 했을 때,

녀가 모은돈에 대출금을 합쳐도

대처하기에는 자란 돈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벌고 모았다.

그러나, 지금껏 그녀에게 발 디딜 수 있는

작은 섬 같던 저축자금은

언제든 바닷속으로 파묻힐 수 있는

부표같이 불안정한 것이었다.

 

그녀가 최근 즐겨 듣는 노래는

악동뮤지션의 Dinosaur다.

가사의 주인공은 어릴 적 꿈에 나오던 공룡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비명을 질렀지만,

더 큰 지금, 어린 시절 무서워 한 공룡을 만난다면

공룡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를 거라는

귀여운 내용의 가사였다.


그러나 가사는 가난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가난하지 않다.

세 끼를 먹을 돈도 있으니 오히려 풍족한 편이다.

그러나, 온전히 부유하지도 않다.


그녀는 생각했다.

외식을 할 때 언제쯤이면

돈 계산을 머릿속으로 하지 않게 될까,

그런 날이 올까, 아니 돈을 많이 벌고

연봉이 배로 뛴다고 해도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고는 했다.


그녀에게는 어쩌면 떼어내지 못하는

가난뱅이 DNA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공룡과 맞서는 힘은

그 DNA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지,

아니면 메뉴판을 안보고 계산 해야지,

라는 마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당당하게 생각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어야 공룡에 맞서서 소리지를 수 있다.


그녀는 여전히 공룡에 대한

두려움을 스멀스멀 느끼지만,

그래도 눈을 뜨고 차분히 맞서나가리라 생각했다.


그녀의 상대가 공룡이라고 해도,

그녀는 이제 생쥐가 아니다.

따지자면 사슴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그녀는 아직 작고, 

무서운 공룡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래도, 사슴인 그녀가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하다보면

공룡의 몸통에 생채기정도는 낼 수 있다.


공룡이 있어도, 그녀는 식사를 위해 들로 나설것이다.

공룡이 조는 사이에, 필살기를 개발 할 것이다.

때로는 계략으로,

룡이 독을 먹게 할 수 도 있을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공룡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공룡이 자신을 죽일 수 없음을 계속 떠올릴 것이다.


그녀는 생쥐들을 보며

'내가 쟤보다 낫지'라고 비교하는 일을,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며,

'저들이 부럽다'라고 자학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누군가는 작은 사슴을 처량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래도, 공룡, 사슴, 하늘을 나는 새,

모두 서울에서 미세먼지를 먹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마실 수 있는 물과 초원이 있잖아 그걸로 된 거야'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날 밤에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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