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은 Oct 30. 2021

죄다 낭떠러지 속에서 기꺼이 비행하기

불행의 비행과 후방의 행복(feat.아이유_Strawberry moon)

죄다 낭떠러지 속에서 기꺼이 비행하기

불행의 비행과 후방의 행복 (feat. 아이유의 Strawberry moon)

 

밤 9시, 회사 문밖으로 나와 ‘경비’를 누르고 카드키를 댄다. 출입문 밖으로 나오자 비로소 벗어난 느낌이 든다. 오늘 업무시간을 더듬어 본다. 업무 시간 내내 카톡과, 메신저, 여러 가지 의사소통이 오갔다. 퇴근 이후에는 드디어 내가 보고해야 할 자료를 만든다. 카톡, 메일, 전화, 대면, 회의, 그리고 여러 가지 자료 만들기 등 하루의 고단함에 대해 상기한다. 불행하기 짝이 없는 금요일 밤이다. 


2호선으로 귀가하는데도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카드를 찍고 지하철 문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다행히 자리에 앉는다. 다른 사람들은 10시까지 술을 마시고 놀다가 귀가할 텐데, 부럽다. 이제 서울의 통금은 10시가 되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다. 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길거리와 지하철 안은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으로 변한다. 가사에 맞추어 내 멋대로 눈앞을 편집한다. 노래를 들으며 딴 걸 하는 사람도 많다던데, 난 가사에 맞추어 혼자 상상하는 편이다. 걸으며 듣는 음악은 값싸고 효과적으로 한 편의 전시회가 된다. 


 아이유의 신곡인 ‘Strawberry Moon’을 들었다. 노래 자체는 굉장히 익숙한데, 몇 줄의 가사가 마음을 울렸다.


‘오히려 기꺼이 헤매고픈 밤이야. 너와 길 잃을 수 있다면, 맞잡은 서로의 손으로 출입구를 허문 이 무한함의 끝과 끝 또 위아래로’


헤맴과, 잃어버림 등은 일상적으로 부정적인 단어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런 단어를 행운으로, 그리고 기꺼이 해내겠다는 아이유의 담담하면서도 용감한 가사가 마음에 들었다. 읽어보기에는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지만 나는 ‘삶’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실패도, 헤맴도 담대히 받아들이고 그저 ‘삶이 어떻게 더 완벽해’라고 선언적으로 말하는 강함을 느꼈다. 


‘죄다 낭떠러지야, 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플지도 모르지만 내 손을 잡으면 하늘을 나는 정도 그 이상도 느낄 수 있을 거야 눈 딱 감고 낙하- 하-‘


이후 내가 평소 좋아하던 악동 뮤지선의 <낙하>를 들었을 때도 감동이 이어졌다. (이 곡도 우연인지 아이유가 피처링했네) ‘어차피 봐, 떨어지겠지만 그건 필연적이겠지만.. 우리는 불행 속에 비행할 거야.’라는 다독거림이 느껴진다.


남들과 대화를 하며 느끼는 상처는 필연적이다. 야근을 하며 청춘은 흘러간다. 어려움은 피해 가고 싶지만 눈앞에 닥치고 만다. 누군가와 이별하고 또다시 만난다 나는 그저 그 낙차를 견딜 수밖에 없다. 어떤 이와 손을 잡고, 아니면 묵묵하고 담대히…


긍정심리학에서는 행복을 ‘회복력’이라고 정의한다는 글을 봤다 행복은 즐거운 마음 상태가 아니라, 정신적 유연함이라고 한다. ‘낙하’를 ‘비행’으로 유연하게 생각하는 마음. 기꺼이 헤매고 싶은 마음, 그런 유연함이 ‘행복’일 수도 있겠다.


대학교 때 나는 ‘100%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100%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만나면 그것만 하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안정감’ 그리고 ‘완벽함’에 많이 집착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없다는 걸 안다. 그런 생각만 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하더라. 그저 지금의 낙하를 비행하며 즐기거나, 아니면 지금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행복과 불행은 양면적이며, 행복은 불행의 후방에서 찾아 내지 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퇴근하며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처럼, 원망스러운 일들을 떠올리고는 했다. 갈퀴로 모든 상처를 긁어모아 스스로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삶이 뭐 얼마나 더 완벽하겠나. 그냥 지금 이대로도 즐겁다. 이 무한함의 낙하와 불행 속에서 비행하자. 기꺼이 헤매자. 귓가에는 실패마저 달콤하게 변화시키는 아이유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하철의 출입문을 나서고, 집으로 들어서는 대문가에서 나는 스스로 불행의 문을 허문다




작가의 이전글 불행을 금연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