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프로를 보는 건 한 편의 문학작품을 보는 것 같다
힙합 : 에세이 대신 힙합
바지를 내려 입은 래퍼가 ‘옥탑방에서 복덕방에’ 가서 성공할 것을 자신감 있게 예고한다. 더벅머리의 래퍼가 무대에서 ‘왜 모델이 런웨이를 겁내’냐고 묻는다. 금요일 저녁이면 쇼미더머니10을 본다. 나는 힙알못이다. 힙합이나 랩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이 가진 지식만큼은 없다. 그래도 프로그램을 보며 즐긴다. 쇼미 더 머니 시리즈부터, 고등 래퍼를 보면서 힙합 프로를 보는 건 한 편의 문학작품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랩에서는 비슷한 말로 끝내거나, 비슷한 모음, 자음들을 넣어서 라임을 살린다. 기가 막힌 라인들을 보면 뛰어난 슬로건이나 카피를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업무를 할 때 카피를 쓰는 경우가 있어서 인지 뛰어난 라임을 구성하는 래퍼들을 보면, 카피나 네이밍도 잘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대단한 펀치라인이나 인상 깊은 훅을 보면 귀에 남으면서 한 편의 시 같다고 느낀다. 평생 가는 시구가 있듯, 기억에 남는 훅은 여운이 맴돈다.
그리고 래퍼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는 한 편의 에세이 같다. 최근 스트릿 우먼 파이트를 볼 때도 알게 된 건데,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코로나19 시기에 수입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공연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TV에 나올 만큼 유명하더라도 투 잡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더독에 대한 관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래퍼들 중 생계를 고민하며 랩을 하는 경우에 뭔가 더 마음이 갔다.
계속해서 알바를 하고 있다는 신스와, 한 번도 CD를 사본적이 없는 아티스트라는 원슈 타인의 가사를 들으며 공감을 했다. 이전에 고등래퍼를 봤을 때도 빈첸과 하온의 캐릭터가 인상 깊었다. 명상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삶은 여행이니 자신은 트레블러’라고 소개하는 래퍼 하온. 눈을 가리는 긴 머리와 어두운 옷을 주로 입는 우울증도 있었다는 래퍼 빈첸. 그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삶의 태도를 담아낸 가사들이 인상 깊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FLEX를 하거나 SWAG를 과시하는 래퍼들 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가 감동을 준다. 힘든 일을 노래로 승화하는 것도 감동의 포인트이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이 사춘기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래퍼들은 가사는 나의 대학시절 떠올리게 한다. 내가 겪은 일들이 노래로 표현되었기에 감동이 왔다. 친근한 친구의 일기를 읽은 것도 같고 말맛이 살아 있는 한 편의 에세이를 본 듯했다.
‘힙합’이라는 걸 네이버에 검색해 보면 꼭 랩뿐 아니라 “그라피티, 춤, 디제잉 등 여러 요소를 담고 있고, 이제 ‘문화현상’의 하나라고 뜻하기도 한다.”라고 기재되어있다. 한 때 “이게 힙합이지..”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만큼 ‘힙합’은 ‘멋지다’는 것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아닐까? 힙합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지코의 <Artist>다.
제일 감각 있잖아 자기 집 거울 앞에선 yeah
Life is short Art is long
너나 나나 쟤나 I make'em say
Ah We are we artist baby
이 노래를 들으며, 아트 그리고 힙합이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느꼈다. 자신의 스토리를 랩에 담는 래퍼, 춤을 추는 댄서, 기획서를 쓰는 회사원 모두 힙합이고 아트다. 하는 일에서 의도를 담아 ‘설득’ 시킬지, ‘감동’시킬지를 고민한다면 말이다. (물론 그것보다는 ‘보고’ 에만 초점을 둔 적도 솔직히 많지만) 지코의 노래를 들으면 감화되고 ‘나 또한 아티스트이니 의도를 담아보자.‘라는 다짐을 하고는 했다. 내가 퇴근 후나 주말에 브런치에 쓰는 몇 줄의 글도, 누군가에게 감흥을 준다면 한 편의 아트나 힙합이지 않을까?
오늘도 쇼미더머니10을 돌려보며,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 과는 또 다른 자극을 받는다. “오늘도 죽을 듯이 노력하세요” 라는 책 속 글보다. “왜 런웨이를 겁내?” 라고 묻는 가사에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게 된다. 예술의 껍데기를 담은 메시지는 잘 포장되어 있어 거부감이 없는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나도 누군가에게 다정한 울림을 줄 글 속 펀치라인을 고민하며, 래퍼들에게 샤라웃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