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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Nov 20. 2021

반찬 : 터질듯한 택배 속 다정함

이미 다 큰 자식에게 반찬을 꽁꽁 싸서 보내는 마음



일이 끝나고 집 앞으로 오니 택배 하나가 도착해있었다. 꼼꼼하게도 덕지덕지 테이핑이 되어있었고 들기도 묵직했다. 문을 열고 신발장 턱에 걸쳐 겨우 신발장 안쪽으로 택배 상자를 집어넣었다. 안까지 들고 갈 여력이 없어, 커터칼로 택배 상자를 주욱 뜯었다. 강렬한 버건디 색에 위쪽은 반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똑딱이가 되어있는 상자 여러 개가 나왔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반찬들이었다.


이번에 한 새빨간 김장김치가 가장 묵직하게 꾹꾹 눌려 있었다. 평소 남편이 좋아하는 갓김치, 보기만 해도 고소한 멸치볶음, 그리고 어머님이 직접 따오셨다는 밤을 갈아 보내주신 밤 가루. 다양한 반찬들이 종합 선물세트처럼 쏟아져 나왔다. 택배 상자가 엄청 크다 싶었는데, 반찬의 양을 보니 오히려 박스가 본인 안의 터질듯한 부피를 감당하느라 고생했겠구나 싶었다. 


오는 동안 고생한 박스는 칼로 뜯어, 가로로 늘씬하게 눕혀주고 반찬들은 하나둘 냉장고에 테트 리스하듯 수납했다. 새빨갛고 탐스럽게 익은 김장김치를 몇 개만 접시에 덜어 놓는다. 그리고 밥솥에 밥을 퍼서 김치와 함께 먹는다. 어머님은 음식을 좀 맵게 하시는 편인데 이번에는 음식이 맵지가 않다. 뜨거운 밥알과 아삭한 김치가 입안에서 만난다. ‘아 정말 행복하다.’ 야근을 한 탓에 저녁 늦은 시간이라 어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보내기가 적절치 않았다. ‘내일 아침에 꼭 문자 보내기’를 나에게 보내는 카톡으로 보내 두고 잠이 들었다.


결혼을 하기 전 혼자 자취를 할 때는 엄마가 반찬을 자주 챙겨주었다. 엄마는 김치, 멸치, 시금치 무침, 고사리, 때때로는 계란말이까지 해주며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조금씩 다양하게 챙겨주었다. 반면 어머님은 김치와 나물류를 많이 주셨고, 손이 크셔서 음식을 많이 주신다. 결혼을 하고 초반에는 남편과 나의 입맛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적당한데 남편은 심심하다고 했다. 난 짠데 남편은 적당하다고 했다. 어머님의 반찬은 우리 집 반찬보다 간이 셌다. 남편이 나보다 짜게 먹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하튼 어머님은 손이 크고 반찬을 왕창 챙겨주시는 편이다. 댁에 놀러 갔을 때도 권하셔서 지금도 집에 있는 반찬이 많다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결국 어머님은 내 가방 안에 반찬을 넣으셨다. 그래서 나는 어차피 거절해봤자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음에는 그냥 받는다. 나중에는 이렇게 택배로 보내주시기까지 한다. 


어머님과 반대로 조금씩 여러 가지를 챙겨주는 친정엄마, 엄마는 날 주겠다며 작은 반찬용기들을 샀다. 우리가 더 길게 못 먹고 주말에는 외식을 자주 한다는 걸 알고 작은 용기까지 사신 것이다. 우리의 식성을 알아보고, 어던 패키지가 좋을지까지 생각해주심에 감사했다.


 반찬을 받는 것도 참 고맙고 좋은 일이지만, 용기를 돌려드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내가 반찬을 해서 반찬통을 드려볼까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과일이라도 사서 보내드릴까 하다가. 것도 어색할 것 같았다. 결국에는 별다른 답례를 해드리지 못했다. 그저, 다른 걸로 잘해드리자 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에 받기만 한 것 같아서 마음에 부채감이 있다. 


시어머니와 친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을 보며 항상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긴 하지만, 그 수고는 정말 헤아릴 수가 없다. 두 분 다 일을 하고 계신데 언제 이렇게 반찬까지 해서 보내실까 싶다. 시간과 노동에 감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남편을 생각해주심에 감사하다. 엄마는 얼마 전, 밥은 어떻게 먹고 있냐 묻더니, 사 먹는다면 사 먹는 반찬은 어떤 종류 나교 물으셨다. 두부조림도 사고, 감자채도 산다. 그런 얘기를 들은 엄마가 왠지 다음 무대로 그 반찬을 준비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떨어져 있는 자식, 이미 다 커서 결혼까지 한 자식에게 반찬을 해서 보내는 다정한 마음이 고맙고 놀랍다. 아직 그 마음이 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다정함과 상냥함은 그런 애정이 담긴 반찬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반찬과 부모님의 상냥함을 원동력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을 쓸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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