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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Nov 28. 2021

동네 : 기억이 살고 있는 나의 동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로 빛났던 사소한 골목, 사소한 것들을 아낀다.

동네 : 기억이 살고 있는 나의 동네 


역에서 내려서 아래로 한참 내려오면 아직도 그 커다란 목욕탕이 보인다. 목욕탕 옆의 콩나물 집, 커다랗게 있었던 LG 가전 샵, 잡지를 몰래 보던 문고, 그 가게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고 다른 가게들이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목욕탕은 변하지 않는 문신처럼, 그곳에 오래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목욕탕이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시작이 유치원 버스를 그곳에서 타고, 그곳에서 내렸던 것이므로, 연식이 굉장한 건 맞는 것 같다. 그 자리에서 터를 잡으신 목욕탕 아저씨는 구의원이 되셨다. 아버지가 그 아저씨와 친구라며 한 표 찍어주라고 말한 게 생각이 난다. 추억의 장소인 것만 같은데, 돈을 꽤 많이 버셨나 보다. 여하튼 나의 동네를 생각하면 목욕탕이 떠오르며 푸근하지만 매캐한 내음으로 기억이 시작한다. 목욕탕에서 길을 우회전하거나, 길을 따라 내려오면 다녔던 두 개의 초등학교가 있다.


학교에서의 시간도 의미 있었지만, 골목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다. 나와 친구들은 골목을 점령했다. 한 골목에서 열다섯 집 정도가 살았고, 그곳에 나 포함 또래 여자 아이들이 5명이었다. 5명의 아이들은 오늘내일할 것 없이 나와서 고무줄을 하고, 도둑과 경찰 놀이를 했다 독특하게도 골목은 집과 집으로 연결되어있었다. 보통 어른들은 큰 길로만 다닌다. 하지만 어릴 적의 아이들은 새로운 길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 골목과 골목 사이를 윗집과 아랫집 사이의 틈새로 다닌다. 도둑과 경찰 놀이를 하면 친구가 눈감는 사이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된다. 우리는 열심히 남의 집 틈 사이로 쏘다녔다. 마치 좀도둑처럼. 지금은 몸이 훌쩍 커버려 그런 공간을 발견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초등학생일 때는 도망치는 몸이 되니 기가 막히게 찾아낼 수 있었다. 먼지가 쌓인 그곳들을 돌아다니며 옷을 참 많이 버렸다. 


좀 더 몸이 크고 나서는, DDR과 펌프에 빠졌다. 방학 아침이면 친하던 쌍둥이 자매와 DDR을 300원에 할 수 있는 가게에 매일 갔다. 사장님이 오시기도 전에 우리는 문을 열기를 기대려 모아둔 용돈으로 DDR을 했다. 시장에서는 핑클, 베이비복스가 부른 노래가 들어있는 카세트테이프를 샀다. 집에서 각자 자신이 이효리를 할지 이진을 할지 멤버를 나누어 놓고 춤을 췄다. 춤을 추다 보면 밑에 집 할머니가 시끄럽다고 올라오셨다. 그럼에도 춤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는 없어, 이불을 깔아 자체 방음을 하기도 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쫀드기를 구워 먹고, 떡볶이 집에서는 떡볶이 천 원어치를 사 와 친구와 토요 미스터리를 같이 봤다.  


이후 중학교에 가서는, 집 앞 개천을 많이 돌아다녔다. 하수구 냄새가 나는 내천의 시작을 지나, 양옆으로 꽃과 나무가 즐비해있는 길을 걷는다. 마을 주민들, 그리고 그들만큼이나 많은 강아지들이 천 옆의 산책로를 활보한다. 버스정류장 2~3개 거리인 중학교를 버스를 타기 싫어 천으로 등하교를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고, 걸어서 간 날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내천 쪽으로 우당탕 넘어졌던 날도 있었다. 


강에는 실제로 잡으면 너무 무서울 것 같은 커다란 잉어들이 살았고, 왜가리가 울었다. 천을 걷다 보면 여름에는 아이들이 물장구를 쳤고,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졌다. 계절의 바뀜이 쉽사리 보여서 굳이 어딘가를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내천 옆의 카페들은 잠깐 앉아 시간을 보내기에 좋았다. 쭉 걸어가다 보면 올림픽 공원, 그리고 한강까지 이어졌다. 수능을 마치고 성인이 되기 전의 한가한 시간, 나는 플라이투더스카이 음악을 MP3에 잔뜩 채웠다. 혼자 노래를 들으며 집에서 한강까지 걷는 게 내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동네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일을 쉬었던 여름에는, 동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두고 글을 쓰거나 이력서를 썼다. 책을 읽기도 했다. 하루 종일 멍하니 그곳에서 있기도 했다. 


몸이 크고, 지금 와 떠올려보면, 정말 동네에 놀 곳이 하나도 없다. 프랜차이즈라고는 롯데리아 하나였다. 그래서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다른 시내로 차를 타고 나가곤 했다. 이제는 스타벅스 하나가 크게 들어와 주민들이 그곳에 줄을 서며 대기하는 걸 볼 수 있다. 그 광경을 보면 ‘우리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카페를 좋아했나? 그런데 왜 동네 카페엔 사람이 없었지?’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글에서 ‘어디엔가 있는 나의 도시’라는 글을 읽었다. 저자는 파리를 언급했다. 읽어보며 내게도 어떤 도시, 어떤 동네가 나의 곳인가 생각해 보았다. 핫플이 많은 성수, 고급진 곳이 많은 신사, 예스럽고 정겨운 종로, 좋아하는 많은 동네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어릴 적 살던 동네가 나의 장소인 것 같았다. 파리나, 뉴욕, 강남이나 성수에 비하면 너무 소박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로 빛났던 사소한 골목, 사소한 것들을 아낀다. 


이제는 동네 옆에 신도시가 생겼고 그곳과 길이 뚫리며 집값이 오른다고 한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걸어 다녔던 내천이 있고, 시장이 있고, 친구들과 문방구를 가던 곳으로 기억한다. 어릴 적에는 재미없고 지겨워 떠나고 싶었지만, 또다시 가고 싶고 그립기도 한 곳이다. 그 이유는 별 것 없던 것을 소중히 보던 어릴 적의 시선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추억의 이름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이 있다는 건 마음 한편에 담아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간질간질하고 다정한 느낌이다. 포근했던 나의 동네, 그 동네가 잘 지내기를, 누군가에게도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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