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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Nov 30. 2021

와식생활 : 내 척추에 기름칠

인간이라면 낮시간 내내 앉아있었는데 누워있을 시간도 필요하다.


나는 사지가 멀쩡하고 건강하지만, 하루에 일정 누워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건 차가 기름을 넣듯 필수적인 일이다. 칼퇴를 했다면 7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밥을 먹기 전에 소파에 눕는다. 또는 침대에 눕기도 한다. 식사를 하고 여유로운 저녁을 먹고 나면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한다. 이런 나를 두고 남편은 게으르다고 한다. 하지만 낮시간 내내 앉아 있었던 만큼 누워있을 시간도 필요하다. 


누워서 하는 일은 몇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핸드폰으로 커뮤니티 사이트 보기, 주로 주간에 웃긴 글, 일일로 웃긴 글들을 쭉 본다. 그다음에는 요일별 웹툰 보기, 오늘자로 업데이트된 웹툰을 네이버, 다음 순으로 본다. 가끔 놓치는 요일도 있으므로 어제 요일자도 잊지 말고 들어가서 점검한다. 세 번째로는 책 보기가 있다. 누워서 글자를 읽다 보면 졸리지 않을 때는 오! 하며 감탄하며 읽는다. 읽는 와중 괜찮은 구절을 발견하면 포스트잇으로 체크를 해 두기도 한다. 졸릴 때는 글자가 점점 희미해지며 어느새 잠들어 있다. 누워서 하는 취미는 이 세 가지의 반복이다. 누워서 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는데 영상은 잘 안 보게 되고, 커뮤니티나 SNS를 한다.


이런 시간은 주말에는 몇 시간이 되기도 하고, 평일에는 30분~1시간으로 짧은 경우도 있다. 누워있는 와식 생활이 길어질 경우 스스로도 불안감이 온다. ‘대체 내가 이렇게 게을러서 되나?’ 하는 불안감, 하지만 식기세척기를 사면 손 설거지를 하던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아 하지만 너무 편하다.’라고 생각하며 이내 눕방에 적응해 버린다. 


그리고 하루 중 이런 시간이 아예 없는 경우, 기분이 허전하다. 평일에 야근이 있거나, 주말에도 일이 있어 바깥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올 때가 있다. 이런 날은 누워있다기보다 빨리 씻고 잘 채비를 하기에 깬 채로 누워있는 와식 생활을 길게 즐기지 못한다. 그런 날은 알찬 느낌도 있지만 아쉽다. 디저트를 먹지 못하고 식사를 마친 것처럼 허전하다. 그건 오래 잠을 자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메인 요리인 소고기를 잔뜩 먹는 것과. 소고기를 적당히 먹은 후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다르듯 말이다. 와식의 시간이 없는 건 부드러움이나 달콤함이 없는 텁텁하고 퍽퍽한 시간만 남은 기분이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감탄한다. “어떻게 저렇게 게으를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이런 와식의 시간을 게으름이 아닌 (아주 거창함을 동반한다면) 소요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잠은 죽어서도 평생 잔다는 말이 있지만, 누워서 핸드폰을 하는 건 죽어서는 할 수 없다. 밍기적의 시간이 있어야 내 척추에 기름칠을 한 듯 하루가 굴러간다. 키보드를 청소하고 나면 타자를 칠 때 손맛이 더 미끈해지는 느낌이랄까?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전혀 밍기적 거리지 않겠지? 나처럼 누워있지 않겠지? 그럼 그 사람의 시간을 내가 쓰는 게 아닐까. 어떤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 시장을 가고, 신문을 돌리고 배달을 할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누워있는 분량을 내가 누워 있는 게 아닐까?라는 얼토당토 한 생각을 한다. 가끔은 무섭다. 한 사람이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시간은 지정되어 있는데 난 이미 그걸 계속 땡겨쓰고 있고, 다 써버린 건 아닐까?라는 공포감도 든다. 그만큼 누워있는 게 달콤하다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식생활을 포기할 수 없다. 휴식의 시간을 세 가지로 나누자면, TV나 영화 같은 것을 보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 글을 쓰거나 책 리뷰를 남기며 콘텐츠를 만드는 시간, 그리고 누워서 어찌 보면 허망한 짓을 하는(?) 허송세월의 와식의 시간 세 가지가 있다. 게으르다고 남들이 뭐라고 하고, 스스로 에게도 손가락질할 때가 있지만 와식의 시간은 포기가 안 된다. 단 30분이라도 누워서 뒹굴 거릴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은 뒹굴 거릴 때, 뇌가 쉴 때 가장 창의적이 된다고 하는데 음 양심의 손을 얹고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 것 같긴 하다. 다만 스스로에게 가장 ‘쉼’을 주는 행위 같다고 와식생활을 변호해 본다. 핸드폰을 하다가, 책을 보다가 스르르 잠드는 와식의 시간. 나 자신에게 그 정도의 다정하고 게으른 시간은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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