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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Dec 04. 2021

피우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의 정원

호감 가는 사람들의 좋은 점을 생각하며 혼자 아카이빙 한다.


피우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의 정원


“서식이 다 빠져 있더라고요, 서식 걸어서 보내드려요.” 그가 보낸 카톡과 엑셀 파일에 감동을 느꼈다. 사람이 엑셀 서식으로도 감동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나라면 “이거 빠졌어요.”하고 추궁하거나 타박할 것 같은데, 서식을 먼저 걸어서 보내 준 것에 감탄하고 놀랐다.


호감에 잘 빠진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는 순간이 많다. 방금 언급한 사람은 나이가 비슷한데도 친절하고, 다른 이의 분야에도 지식이 많은 면에 감탄했다. 내 단점 중 하나는 알앤알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더 들여다보지 않는 점이다. 그리고 알고 있어도 오지랖을 떨지 않는 면이다. 하지만 그는 좋은 면으로 지식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아서 오지랖을 떨고 그게 타 부서의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주고 있어서, 닮을 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마음이 가는 포인트는 어떤 걸까 생각을 해봤다. 너무나 얌전해 보이는 사람이 팔목에 문신이 있다거나, 굉장히 활발한 사람이 조용한 음악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모습들. 의외의 일면을 보면 관심이 생긴다. 그 외에도 많은 부분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혼자 좋아해도 사람들은 잘 모른다. 회사에서는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도 있고, 막역하게 지내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관계보다는 마음이 앞선다. 관계가 오래 걸린다. 


관계가 좋아지려면  충분한 건 시간을 들여야 한다. 시간이 짧게 주어진 관계에서는 흥미는 있을 수 있지만 신뢰가 없다. 종종 마음을 주었는데, 그가 퇴사하거나 볼 수 없게 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그러면 행방 잃은 마음은 쓰리다. 진하게 친하진 않더라도 일정 시간 함께 기간을 보내다 보면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고 마음이 깊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러기엔 오래 걸리니 관계에 드는 시간을 단축하려면 장난 또는 대화를 해야 한다. 아주머니인 과장님이 옆에 남자 동료에게 삐죽 나온 뱃살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이거 뭐야”라고 놀리는 모습을 보았다. 옆의 남자 동료도 허허허 웃으며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평소 그런 장난을 친구끼리도 안 하는 나는 속으로 경악을 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 간에는 그런 장난을 해도 서로 이해한다는 암묵적 신뢰가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할 것이다. 뱃살 찌르기는 나는 못할 것 같은 행동이다. 반면 나는 그냥 회의시간을 예로 들며 상황을 극화시켜 장난을 치거나, 웃긴 얘기를 하거나 칭찬을 하고는 한다.   


관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이기도 한데, 자신의 취미, 퇴근 후 뭐하는 지의 이야기들을 넘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개인적 습관이나 기호에 대해 말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우리는 반말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별명이나 애칭을 만들기도 한다. 직급이나 직위, 이름을 넘어 별명이 생기면 좀 더 친근해지는 기분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사람의 정원에 둘러 쌓여 있는 기분이다. 꽃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그들은 모두 각자의 향기로 빛난다. 단점도 있지만 모두 저만의 장점으로 빛난다. 반면 애정과 친절은 한정되어 있어 다정을 마구 퍼주게 되면 나에게도 무리가 될 수 있다. 정원 속 꽃을 만나는 것처럼 좋은 점을 생각하며 향을 맡는다. 구태여 교감하지 않아도 ‘이런 은은한 향기가 있구나.’ 생각한다. 모든 꽃을 다루고 가드닝 하며 애정을 주기에는 내 마음이 벅차다.   


몇몇 이들과는 장난도 치고, 애칭도 부른다. 반면 모두와 그럴 수 없으므로 호감 가는 사람들의 좋은 점을 생각하며 짝사랑을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아카이빙 한다. 인스타그램 속 게시물을 저장하듯이, 좋은 구절을 메모하듯이 꼭꼭 새겨둔다. 회사생활이 힘들 때, 화병의 꽃을 보듯 누군가를 떠올려 꺼내본다. 스스로가 미워질 때 받았던 배려를 생각하며 동기부여를 한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 다정한 사람들이 많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리고 나도 그리 되리라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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