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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Dec 12. 2021

서비스는 다정한 게 아니다

관계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면 결국 그 관계는 점차 소모된다.


서비스는 다정한 게 아니다.


“돈 줄 것 까지는 아니고, 그냥 한번 조언을 구해봐.”


조언을 한번 구해보기 위해 그쪽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곳은 우리에게 업무를 맡기고 있지 않은 대행사였다. 내가 이전 회사에서 대행을 맡기고 함께 일하던 곳이었다. 지금 회사에서는 일을 맡기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초반에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었다. 대표는 내게 대행 계약을 요구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부탁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데 통화음이 무거웠다. 


“식사하셨어요? “


오후 시간에 전화를 할 때 으레 하는 말인 인사말을 필두로,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저런 상황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냐.라고 말하자 대표가 말했다.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딱 잘라 말하는 말을 듣자,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건데도 기분이 나빴다. 냉정하게 들렸다. 그래서 더 길게 통화를 하지 못하고 몇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끊었다. 그는 당연히 그럴 수 었었다. 어떻게 대가 없이 계속 조언을 해주겠는가. 이상한 건 내 마음이었다. 이런 부탁을 하는 걸 미안해하고, 어려워해야 되는 건데 상대방의 거절에 오히려 상처를 입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서비스를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나?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는 파트너사나 대행사를 선정할 때 늘 비딩(경쟁)을 시킨다. 경쟁을 해서 업체가 정해지더라도, 단가를 제시하면 그대로 진행하기보다 “네고해 줄 수 있냐.”라는 말을 한다. 그게 아니면 다른 서비스를 받아내려고 한다. 나 또한 ‘협상의 기술’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등의 책을 읽으며 협상에 대해 고민했다. 그렇게 상대방에게 많이 ‘깎고’ ‘얻어내야’ 그게 담당자의 능력으로 인정받는다고 느꼈다.


마케팅 업무를 하며 상사가 “아는 인플루언서나 누구 없어? 인맥 좀 뒤져봐”라고 말했다. 정당한 값이 아닌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거였다. 인맥이 실력이고, 저렴하게 진행을 하면 상급자 입장에선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당연시’ 된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점점 내 살을 깎아먹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기분은 물건을 살 때도 숱하게 드는 기분이다. 특히나 핸드폰이 그렇다. 기기변경, 통신사 변경, 온라인에서 거래 등등 정가가 아닌 여러 가지 각종 편법으로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잘 모르고 사면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든다. 핸드폰을 사면 주변에서는 꼭 ‘얼마에 샀냐?’라고 물어본다. 그리고 ‘야 이렇게 사면 싼데’ ‘이렇게 하면 좋은데’라는 말을 건넨다. 다양한 정보를 잘 활용하는 게 좋은 거지만, 마치 정가에 사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수많은 정보가 널려있기 때문에 여러 정보를 활용해서 더 많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모자란 것처럼 되어버린다. 


아마 회사에서도 직원의 연봉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인사과에서는 최대한 깎고 깎아서, 더 적게 주고 더 많이 일을 시킬수록 능력이 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하지만 깎여진 사람 입장에서는 손 해본다는 기분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제공해주고 있는 서비스는, 어떻게든 비용을 지불하게 되어있다. 돈이 아니라도 감정적 비용이라도 금액은 지불되고 있다. 내게 조언을 거절한 대표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그에게 감정적 비용을 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 사이에 이루어졌던 호감도와 신뢰는 무료 서비스로 인해 점점 떨어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관계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면 결국 그 관계는 점차 소모로 달려갈 것이다.


저렴하게 잘 샀다. 서비스를 많이 받았다. 이런 걸 너무 미덕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걸 받았다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때문에 ‘월급루팡’이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몫만큼 일을 하지 않고, 시간을 잘 때운 게 자랑 삼을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면 고마운 것이지만. 알맞게 쓰고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것도 중요하다. 따스한 말과 다정한 태도는 무료가 아니다. 겉보기에는 무료인 것 같지만 누군가의 마음 쓰임이 담긴 행동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비스도 당연하고 다정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지불하고 있는 감정의 비용도 있을 것이다. 고마운 사람을 만날수록 이 모든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상기하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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