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은 Feb 02. 2022

천 원으로 소년소녀였던 부모님을 만나다

이렇게 단체로 목 운동을 하는 때는 그 언제겠는가


천 원으로 소년소녀였던 부모님을 만나다


“여기 공기도 있어요?”


알파문구에서 공기 2개를 샀다. 발단은 이전에 엄마가 보여준 공기 쇼였다. 집에 방문한 우리에게 엄마가 돌을 다섯 개 주워왔다며 치매 예방도 할 겸 공기놀이를 한다고 했다. 엄지손가락 반 정도 돼 보이는 조약돌은 들어보니 무게가 꽤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지와 검지로 돌을 위로 던지고 잽싸게 바닥에 있는 돌을 쓸어 담는 엄마의 실력은 대단했다. 위로 돌을 쏘아 올리면 모든 가족의 눈은 하늘로 향하고, 돌이 아래로 내려옴과 동시에 현란한 손아귀로 시선이 간다. 언제 이렇게 단체로 목 운동을 해본 적이 있던가. 엄마의 현란한 공기 실력은, 우리의 방문을 축하하는 갈라쇼 같았다. 남편에게는 그 현란한 동작이 꽤나 인상 깊었나 보다.


남편 부모님 댁에 간 날. 예상한 대로 우리는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고 과일까지 먹었다. 식후 어머님이 설거지를 하시려고 해서 급하게 붙잡아 공기 내기를 하자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공기를 거의 몇십 년 만에 본다며 반가운 물건을 본 듯 살짝 웃으셨다. 한 알씩 올려 공기를 받는 남편의 실력을 보더니 어머니는 제법이라며 웃으셨다. 마치 어린애가 걸음마를 하는 표정을 보신 것 같았다. 나의 실력을 보시고는 다른 방면으로 놀라 하셨다. 꽤나 못해서 “어째 저렇게 손가락이 긴대 못할까?” 라며 신기해하셨다. 


드디어 어머님의 차례 어머님은 짧은 손으로도 공기를 꽤나 잘 올리고 받으셨다. 네 알까지 다 받으신 후에, 꺾기를 해야 할 때였다. 갑자기 두꺼비집 같이 손 모양을 만드시더니 한 알씩 공기를 넣는 고급 스킬을 선보이셨다. 우리는 처음 보는 광경에 “이건 어떤 스킬인가요?” 어머니께 여쭈었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는 이렇게 하셨단다. 공기를 던진 채로 한 손가락으로 바닥을 쓸어내는 ‘고추장’이라는 스킬도 선보이셨다. 다양한 스킬에 남편과 나는 소스라쳤다. 옛날 놀이의 바리에이션은 매우 무궁무진했다. 익힌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얄밉게 공기를 잘하는 남편과, 고급 스킬을 구사하는 어머님 덕분에 저녁 설거지는 내가 했다. 스스로에게 ‘졌지만 잘 싸웠다.’ 칭찬하며 우리 집에 가서는 이기리라 다짐했다. 


결전의 날 다음날, 우리 부모님 댁에 가서 또다시 공기판을 벌렸다. 어머님 댁에서는 이불 위에서 손바닥을 쓸었다면, 이번에는 방바닥에서 판을 벌렸다. 고창의 고인돌이라 불리는 무뚝뚝한 아버지는 거친 손으로도 공기를 잘 잡으셨다. 엄청나게 높이 던지면서도 다 쓸어 담는 그의 실력은 안정적이었다. 대신 공기를 놓칠 경우 아버지는 “눈이 잘 안 보인다.”라는 속상하면서도 납득이 되는 핑계를 대셨다. 엄마는 처음에는 공기를 잘 못 잡았다. 이는 본인의 ‘조약돌’에 익숙해져 있다가 지나치게 가벼운 공기를 쓰는 것에 대한 감도의 차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다가 금세 감을 잡고는 종횡무진 점수를 내셨다. 꺾기까지 와서는 “이번에는 3년만 먹겠다.”라고 선언하고는 5년의 점수를 따는 그녀는 공기놀이계의 한 마리 여우 같았다.


공기 낙제생인 동생과 나, 그리고 공기계의 신흥강자인 남편이 한 편을 먹었다. 전북 고창에서 공기로 한 획을 그으시던 우리 부모님이 한 편이 되었다. 이 두 팀이 피자 내기를 했다. 첫째판은 엄마 아빠에게 졌고, 두 번째 판은 내 남편의 하드 캐리로 우리가 이길 수 있었다. 내 남편이 팔목을 꺾을 때마다 우리 부모님은 감탄하셨다. “어휴 우리 사위는 꺾기도 잘해!” 공기를 던질 때도 좋아하셨다. “어휴 야무지게 잘하네! 공부를 잘해서 그런가? (무슨 상관일까?)” 역시 사위사랑은 장인 장모다. 


꺾기를 해도 최대 2년을 따는 내 실력. 그리고 평소 총 게임을 잘하더니 그 영향인지 공기를 총 쏘듯 사방으로 날리는 내 남동생. 이 두 명의 빌런을 이겨내고 남편은 우승을 따냈다. 세 판 중 두승을 얻어내 우리는 피자를 쟁취할 수 있었다. 놀이를 하며, 내가 손이 아프다고 징징거리자, 아버지는 예전에는 흙바닥에서 게임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사방이 뭉툭한 각설탕처럼 잡기 좋은 공기 모양이 아닌 조약돌을 직접 주워오셨다고 했다. 과거의 부족한 인프라를 들먹이시자 더 이상 징징거릴 수 없었다. 이후에는 윷놀이도 하고, 전통적인 고전 놀이인 그림 맞추기 놀이도 했다. 대화를 해도 즐겁지만 이런 게임을 통해 대화거리를 더해가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한 얘기가 기억난다. “너랑 고무줄 하고 놀았을 때, 그때가 가장 걱정 없던 시기였어.”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골목길에서 고무줄을 했다. 학교 마치고 돌아오면 고무줄을 붙잡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놀이를 하며 서로 시비에 휘말리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그저 힘껏 발과 몸을 움직이며 즐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학원도 많이 다니지만, 우리는 그저 고무줄 하나만 있으면 마냥 행복했다. 


내가 아직도 그 즐거움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부모님의 공기 실력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녹슬지 않는 실력이 신기했다. 그네들도 아직 이렇게 공기를 잘할 수 있음에 놀라워하셨다. 코로나 19로 인해 먼 곳을 가지 못했지만, 천 원짜리 공기 알만으로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소녀, 소년이었던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엿보았다. 어린 그들과 함께하는 듯 순수하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놀이를 함께 하는 것, 그로써 새로운 추억을 만든 것이 이번 설의 기억으로 남았다. 

작가의 이전글 잔소리 대신 돈으로 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