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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ug 15. 2023

협동심과 의사소통_매너가 방탈출러를 만든다

방탈출의 효능: 갇히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사실 저는 개인주의자이지만요




냉기가 쏟아져 나오는 물류센터에서 마케팅 팀원 모두 손에 입김을 불며 물건을 나르고 있었다. 하필이면 우리가 위치한 곳은 식품 냉동 창고 앞이라 추울 수밖에 없었다. 추워도 어쩔 수 없지,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자리를 맡아 일을 했다. 내 역할은 옆에서 건네어 온 물건을 받아서 위쪽에 쌓아 올리는 일이었다. 


"소포장은 어려우신 거예요?"


과장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추석 선물세트로 기획한 신제품 MD상품이 있다. 그 안에는 컵도 들어가고, 원두도 들어가는데 업체에서는 소포장을 못한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도 구해보고 여러 방법을 모색했지만 특별히 방법이 없었다. 결국 우리 팀이 모두 공장에 가서 직접 포장을 하기로 했다. 한 명은 물건을 봉투 안에 넣었고, 한 명은 봉투를 밀봉했다. 밀봉된 봉투는 박스 안에 들어갔다. 나는 박스를 쌓는 일을 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 팀은 100 box의 제품을 만들었다. 하루 꼬박 시간이 들었다. 그래도 다 같이 웃으면서 일을 했다. 


나는 원래 혼자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남에게 의견을 잘 묻지 않는다.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면 잘 도와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아도 가서 먼저 살펴보지 않는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도 “무슨 일이야?”라며 쪼르르 달려가 묻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다. 묻지 않았는데 도와주려고 손을 내미는 것도 신기하다. 저거 너무 오지랖이 아닌가 하고 생각도 한다. 하지만, 물류센터에서 일을 한 일은 모두의 협동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그런 일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혼방 불가해, 손이 네 개가 필요하거든


 나는 개인주의자이지만, 방탈출은 협동이 필수이다. 방탈출을 가려고 예약을 하다 보면 “물리적 혼방 불가능”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 ‘혼방’은 혼자 하는 방탈출이라는 뜻이다. 혼방을 하면 혼자 문제도 풀어볼 수 있고, 많이 성장한다고 한다. 아직 나는 혼방을 해본 적은 없다. 이런 혼방러를 위한 방탈출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최소 인원을 2명으로 해두고 혼방이 불가한 방이라고 명시해 둔 곳들이 있다.


그런 곳에서는 협동심과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는 미션들이 있다. 예를 들어 다 같이 무엇을 쌓아 올려야 하거나, 아니면 따로 떨어져서 의사소통을 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함께 미션을 해결해야만 한다. 어떤 장치를 누르기 위해서 손이 네 개가 필요하기도 하고, 다 같이 특정 문장을 외쳐야 하기도 한다.



Manner Makes 방탈출러



 꼭 함께하는 미션이 아니라도, 방탈출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협동심이다. 함께 간 친구들의 능력치가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를 풀 때, 생각이 났다고 해서 혼자 쫙쫙 풀어버리면 함께 간 사람들은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아니면, 문제가 어려울 때 남과 상의 없이 힌트를 써버리면 그것도 기분이 불쾌할 수 있다. 좀 재미있는 장치가 나왔다면, 누가 할지 물어보는 게 매너다. ‘장치’는 방탈출을 하면서, 자물쇠가 아닌 어떤 물체를 움직여 작동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봉투를 연다든지, 물을 식탁에 올린다든지 하면 미션이 풀리는 방식이다. 이런 신기한 장치를 만났을 때, “해볼래?”라는 방식으로 넌지시 말해주면 참 기분이 좋다. 기본적으로 방탈출은 의사소통과 협력, 즉 매너가 중요한 게임이다.



꼭 필요한 옆 사람의 눈



 가끔 방탈출을 하다가 체력이 탈진하면, 좌우도 헷갈리고 상하도 헷갈리는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 "오른쪽이요!" 말하면서 왼쪽을 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마음이 급하면 그렇게 된다. 그럴 때면 옆에 있는 동료가 차가운 눈빛으로 말해준다. “정신 차려요.” 그러면 정신이 번뜩 든다. 내가 자물쇠를 계속 돌려도 열리지 않는 괴현상도 일어난다. 답이 맞는데 귀신이 들렸는지 도무지 열리지 않는다. 그러면 옆에 친구에게 자물쇠를 돌려보라고 말한다. 또 귀신같이 열리는 경우가 있다. (아마 실제로 귀신이 왔던 것 같다.) 혼자서 열심히 해봤는데 잘 안 되는 경우 어이없는 실수일 때가 있다. 자물쇠 선은 우측에 있는데, 나는 앞쪽 선에 맞추어서 정답을 맞혔거나 하는 이유 때문에 틀리기도 한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답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럴 때 옆사람의 눈과 손이 필요하다. 




함께 봐야 보이는 것들



회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 눈에는 안 보이던 오탈자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인다. 내 머릿속에선 영 떠오르지 않는 답이 동료의 입에서는 나오기도 한다. 내가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답이 아닐 수 있다. 예전에는 오지랖이라고 생각하고, 민폐라고 생각해서 물어보지 않았던 것을 동료에게 묻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보이는 것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오지랖을 부린다. "혹시 도와줄 거 없어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친절하고 쉽게 말하려 노력한다. 방탈출 문제를 풀 때도 다정한 말투를 해야, 상대방의 지적능력이 높아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빠지고, 모자라고를 떠나, 모두의 힘으로 신제품 MD를 완성한 일이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함께했기에 해낼 수 있었다. 나 혼자 사는 인생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 누군가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방탈출을 많이 하다 보니, 의사소통 능력과 협동심이 발달되게 되었다. 오지랖도 덤으로 따라왔다. 남과 함께 탈출했을 때 더욱 기쁘다. 사회에서도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 더욱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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