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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Dec 02. 2023

매주 서약서를 쓰는 사람

이 방에 들어가기 전에 서약서를 하나 쓰셔야 해요.


매주 서약서를 쓰는 사람



‘블로그에 비밀 댓글이 달렸습니다.’ 핸드폰에 알람이 떠서 내용을 읽어 보았다. 얼마 전 작성한 방탈출 테마 리뷰 글에 비밀 댓글이 달렸다.

  

“저.. 제가 이 테마를 가기 전인데, 결말에 대해서 알려 주실 수 있으세요?”

“이 테마 중간까지만 풀고 실패했어요. 혹시 결말이 뭐에요?”


이런 댓글이 달리면 고뇌에 빠진다. 그래도 첫 번째 댓글의 경우 단호하게 거절 할 수 있다. 


“아앗.. 죄송하지만 그건 어려워요. 직접 가보시겠어요? 재미있는 테마니까 모르고 가시는 게 더 즐거울 거에요!”


두 번째 댓글은 결말을 알려줘야 하나 고민한다. 그래도 중간까지는 봤다는데, 얼마나 결말이 궁금할까? 마음이 안타깝다. 반전이 있는 결말을 댓글로 달아주려다가 멈칫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죄송하지만, 결말 부분은 알려드리기 어렵습니다.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그래도 내 블로그에 와준 사람인데..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다 방탈출 문화를 위해서다.

영화, 드라마, 소설도 마찬가지이지만, 방탈출은 특히 테마의 내용 유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게임을 하기 전 일종의 서약서도 쓰고 들어간다. 서약서 내용은 기물 파손 시 변상한다는 부분도 있지만, 테마의 정보를 유출하지 않겠다는 발설 금지의 조항이 꼭 있다.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직접 서명한다. 서명을 하기에 스포일러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책임감이 더욱 생긴다. 모든 방탈출 테마에서 이런 서약서 받는다. 서약서는 종이로 받거나, 태블릿PC나 구글폼으로 받는 등 여러 방법으로 받고 있다. 심지어 핸드폰이나 스마 워치 같은 전자기계도 보안의 이슈로 방탈출 하는 동안은 사용할 수 없다. 생각해 보니 방탈출 테마를 할 때마다 서약서를 쓰니, 나는 매주 서약서를 쓰는 사람인 셈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볼 때 발설 금지 서약서를 쓰지는 않으니 그것보다 방탈출이 더 내용유출에 엄격하다. 



스포일러를 못하면, 리뷰는 뭐라고 써요?


방탈출 카페에서도 방탈출 스포일러는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자주 둘러보는 방탈출 네이버 카페 ‘오프라인 방탈출’ 에서는 <스포일러 관련 규정 안내>공지사항이 있다.


“플레이 해 본 테마일지라도 매장 측에서 알려주지 않은 내용은 설명 요구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예시 : 진행하지 못한 뒷부분, 서브 문제, 이스터 에그 등) 스포일러는 입장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사실과 매장 측에서 알려주지 않는 사실을 모두 포함합니다. 이런 것도 스포일러인가? 싶은 부분과 이미 공공연하게 알고 잇는 사실 (특히, 매장 홈페이지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분리, 야외 구간 여부)도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본인이 스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테마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카페: 오프라인 방탈출 ‘스포일러 관련 규정 안내 ’ 中


 아주 상세한 설명이고, 하단에는 문제 개수나, 구체적인 활동성, 드러나지 않은 테마의 연출 등도 써서는 안 된다며 각각 예시도 나와 있다. 카페에서는 테마에 대해서 리뷰도 쓰고, 방탈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스포일러에 더욱 유의하고 있다. 스포일러를 할 시 글은 블라인드 처리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방탈출러들은 방탈출을 다녀온 후 후기를 어떻게 작성하란 말인가. 방탈출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 할 수 없으니 대부분 감정표현 위주로 글을 쓴다.



“너무 ~ 진짜 재미 있었다!”

“(무서워서 벌벌 떠는 고양이 짤을 올리며) 두려움에 바닥을 쓸며 구석에만 쪼그려 앉아 있었다. 정말 무섭다.”

“온 몸에 땀이 뻘뻘 났다. 활동성이 장난 아니다.”


 자신의 감정의 상태나, 몸의 상태, 느낌을 위주로 리뷰는 한정 된다. 음식이나 가게에 대한 리뷰, 소설이나 영화에 대한 리뷰보다 기준이 더 엄격하다. 리뷰를 쓸 때 어느 정도 언급해도 되고 허용이 되는 기준은 홈페이지나 포스터 설명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비밀의 화원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새벽 베이커리' 테마의 포스터와 홈페이지 설명이다.


#혼방불가 #배고플때금지 #갬성맛집

새벽 2시부터 5시에만 오픈하는 신비로운 빵을 만드는 베이커리가 있다는데...?


홈페이지에 스토리 설명이 되어  있는 부분은 내 리뷰에 써도 무방하다. 빵집이 배경이라는 점, 그래서 빵집 인테리어가 정말 잘 구현 되어있고, 감성적인 느낌이 가득한 점을 위주로  작성 할 수 있다.


“이 테마는 영화 OOO이 생각난다.”

“언니 그거 근데 스포일러 아니야?”

“그런가.. 그럼 그 부분은 지워야겠다.”


 스토리가 어떤 영화나 드라마와 유사하다는 것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함께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두 리뷰를 작성하다 보니, 우리는 서로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도와준다. 스포일러 하지 않기, 정말 애매하고 어려운 부분이다.



왜 이렇게 스포일러에 예민할까? 그건 알고 가면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갔을 때 작동하는 장치의 신선함, 문제를 푸는 괴롭지만 즐거운 유희, 인테리어의 아름다움, 인상 깊은 연출 등. 내용을 모르고 가야 오는 쾌감이 더 신선하기 때문이다. 스토리 속 주인공은 여정이 시작되기 전,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어떤 방과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른다. 인생도 방탈출도 스포일러가 없어야 더 재미있다. 그것처럼 우리도 스토리를 모르고 게임을 해야 더 흥미진진 하지 않을까?


그래서 방탈출 스포일러는 물어보지도 말고, 하지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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