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은 Dec 07. 2024

커피 회사에서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은.. 오해 금지



커피 회사의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은 쉬자는 건 아님


 

“저희 커피 한 잔 할래요?”


이전에 내게 커피 만드는 법을 알려주신 천사 같은 매니저님의, 메신저가 왔다. 당연히 나는 커피를 타 주신다고 하는 줄 알고 좋아했다. 이전에 OJT 갔을 때 엔젤매니저님이 내려 주신 드립 커피가 엄청 맛있었기 때문이다. 매니저님은 옆 건물에 있는 알앤디 센터로 오라고 하셨다. 그곳은 OJT를 받을 때 휘핑을 짜느라 손이 얼얼한 느낌까지 들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오늘은 커피 한 잔 대접받으러 온 거니까!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몇 분 뒤 나는 알게 된다.


R&D: Redsearch and development의 약자로, 외식업계에서 알앤디 부서는 주로 메뉴를 개발한다.

OJT : On the job Traininig의 약자로, 직무 교육훈련이다. 오사원은 얼마 전 커피를 배우는 OJT를 들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많은 음료를 만들어 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음.. 상황이 뭔가 이상한 걸? 테이 블위에는 달콤해 보이는 빨간색과 초록색 형형 색깔의 음료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늘 그랬듯 엔젤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자. 오 사원님! 올 11월에 나올 신메뉴입니다. 라떼 2종과 티 1종이에요"


아 그녀는 메뉴 개발도 한다고 들었는데.. 이번 겨울 시즌 메뉴 개발을 하는 사람이 바로 엔젤 메니저님이었다. 그녀는 내게 3잔의 음료를 마셔보라고 주었다. 겨울시즌에 나올 제품이라면서 토피넛 라떼, 치즈폼 라떼, 캐모마일 과일티라고 했다. 먹어보고 맛을 표현해 달라고 했다. 먹는 것도 그냥 따라서 마시면 안 됐다. 그녀는 바닥까지 들어있는 음료들을 잘 저어 (보통 바닥에 깔려 있으니까) 음료를 따른 후, 바닥에 깔린 과일 토핑들을 바스푼으로 덜어 내 종이컵에 담아주었다. 아아 그녀의 몸짓이 더 우아할수록 나는 왠지 부담스러웠다. 이거 그냥 커피 마시는 자리 아닌 것 같은데? 맞다. 이건 신메뉴에 대한 감상평 및 추후 과제에 대한 자리였다. 엔젤 매니저는 역시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입 안으로 들어온 음료의 맛은 훌륭했다.


“오 사원님 맛이 어때요?”


"음 맛있어요! 음 이건 달고~ 음 고소해요"


엔젤 매니저는 한 수 가르쳐 준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척추를 쭉 펴고 그 달콤한 음료들을 다시 한번 천천히 맛볼 수밖에 없었다. 



환영받는 피드백의 법칙



“식감, 맛, 비주얼, 당도 이런 게 어떻다고 말해주시면 더 좋아요! 안 그러면 제가 재차 물어보게 될 것 같아요”


“식감은 과일티 아래 깔린 펄이 쫀득쫀득해서 맛있어요, 그런데 빨대에 비해 펄이 너무 큰 것 같아요. 비주얼은 빨간색이라 크리스마스 느낌이 연상돼서 지금 시즌과 잘 어울려요! 당도는 너무 달지 않아서 좋네요.”


자세한 피드백을 듣고, 에인절 매니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음료가 나갈 때는 큰 빨대를 고객에게 드리라고 매뉴얼을 작성해야겠네요.”


나중에 알았지만 자세한 피드백은 마케터서 필요한 자세였다. 만약 누가 디자이너가 자신이 제작한 홍보물에 대해서 어떤지 의견을 달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 브랜드와 느낌이 어울리는지, 폰트의 형태가 괜찮은지, 카피는 만족스러운지, 색상은 어땠으면 좋겠는지 등을 자세하게 말한다. 어찌 보면 참 까탈스러운 것도 같다. 좋은 것에는 이유가 없는 게 아닐까? 아니다. 마케터로 생활해 보며 느낀 것은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섬세하게 파고들어, 어떤 것이 ‘좋은 점’이고 ‘나쁜 점’인지 말해 줄 수 있는 게 말 잘하는 마케터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지 않고 더 부드럽게 말하는 게 어떤 방법일까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안 될 경우 함께 해결책을 고민이라도 해봐야 한다. 제품 개발자인 알앤디 담당자나,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와 함께 그 고민을 하는 역할도 마케터의 역할이다. 


최대한 상세하게 의견을 표현해 주니 엔젤 매니저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제 커피 한 잔 하기 미션이 끝난 건가 보다. 뒤돌아 나가려는 엔젤 매니저가 나를 불러 세워 한 마디 거들었다. 



"맛있게 드셨죠? 네이밍은 가제이니까 마케팅팀에서도 좋은 의견 부탁드릴게요~ㅎㅎ"



음 아직 미션이 끝나지 않았던 것 같다. 커피 브랜드에서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은 정말 커피 한 잔 하자는 말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메뉴를 먹고 표현함에도 어떤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본사로 돌아가는 길. 입가에 남은 달콤함을 혀로 핥으며, 어떻게 하면 더 잘 말할까 고민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