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생기는 보약을 먹기 위해 펼친 탕비실의 첩보작전
“여기 한 번 가봐”
아버지가 내게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고모들이 소중한 정보라면서 알려줬다고 하셨다. 거기에는 ‘OO한의원’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게 뭔데요?”
“고모들이 유명한 한의원이라고 가보라고 하더라.
거기 가서 약 먹으면 무조건 애가 생긴데.”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친척들 간 대화를 할 때, 내가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 것을 말하고 다닌다는 것과, 고모들이 자연스레 한의원을 추천해 준다는 것. 그 대화 내용이 모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 애를 못 가지니까 추천을 해 줄 수 있는 건데.. 순간 심하게 긁혔다. 아버지한테 그런 이야기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본인은 걱정돼서 물어본 건데 뭐가 문제냐고 했다. 맞다. 우리처럼 정보가 많은 세대도 아니고 어른들은 더욱 주변에 이야기하면서 정보를 얻겠지… 본인도 그저 딸의 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여하튼 나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싫었다.
남편은 나보다 어른스럽게, 장인어른이 추천해 주신 곳이니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어느 날 주말 아침 나와 남편은 OO한의원을 방문했다. 새벽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난임 보약을 짓기 위해서 인 것 같았다. 이런 광경을 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저출산 국가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 기다림 끝에 한의원 안에 들어갔다. 원장님 분명히 돈 많이 버실 것 같은데, 시설은 굉장히 올드했다. 교회 의자 같이 생긴 딱딱한 긴 나무 의자, 그야말로 앉는 역할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엉덩이가 아플 것 같은 의자. 그리고 군데군데가 까져 있는 원목 테이블. 무엇보다 진동하는 약 냄새. 아 그야말로 한의원에 왔음을 후각으로 먼저 느꼈다. 우리는 생년월일을 말하고 접수한 후 잠깐 기다렸다.
진료실에는 하얗게 백발인 원장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은 내 맥을 짚고, 남편의 맥을 짚었다. 그리고 내 눈동자를 빤히 보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욱하는 성격이 있어 마음은 착한데.”
그러면서, 난임인 이유는 착상력이 약하고 착상이 돼도 유산이 의심되니 착상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보약을 지어준다고 했다. 남편한테는 정신이 맑다(?)는 그야말로 욱하는 처방을 내렸다. 내 남편은 이런 점쟁이 같은 처방을 듣고 신이 났는지, 정말 선생님 용하시다면서 칭찬을 했다. 내게는 운동을 안 한다고 하셨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운동인 줌바댄스나 필라테스는 운동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운동은 기력이 떨어진다며 오히려 걷는 게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두 달 치 약을 받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생리기간을 물어보셨다. 생리일자를 듣고 나서는, 기간에 맞춰 일명 ‘숙제’라고 불리는 잠자리를 언제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못내 억울한 마음으로 한의원을 나왔다. 나보다 성격 안 좋은 사람도 애 많이 가지는데.. 내 욱하는 성격이 문젠가? 아니 이것도 욱한 건가.. 심호흡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먹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방전에는 돼지고기, 밀가루, 술 기타 등등 금지 음식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래서 그걸 다 지키지는 못했다. 거의 비건식 수준이었는데 그렇게 먹으면 약과 별개로 그냥 몸이 좋아지긴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웠던 미션은 회사에서 약 먹기였다. 남에게 보약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누가 “무슨 보약 먹어?”라고 말하면 “아 애 생기는 보약” 이런 말을 하기가 좀 그랬달까. 그냥 둘러대도 됐을 텐데 결혼한 여자니까 괜히 남들이 상상할 것 같다는 엉뚱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는 첩보 작전을 펼쳤다. 몰래 배 쪽에 보약을 숨겨서 탕비실로 가지고 가고,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 후 약봉지를 가위로 잘라 재빨리 종이컵에 넣는다. 그리고 약봉지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래도 막상 약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냄새만큼은 숨길 수가 없다. 흡사 첩보작전과 유사한 약 데우기 +약 먹기를 회사에서 반복했다. 몰래 하느라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누가 탕비실에 들어오면 괜히 흠칫 놀랐다. 아마 냉장고에서 우유라도 훔친려던 사람처럼 보였으리라.
그렇게 보약을 먹은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보약을 6개월 정도 먹었지만 아이가 생기진 않았다. 그때쯤 슬슬 약의 효능에 의심이 갔다. 그래도 한 번만 더 먹어볼까? 그런 심경으로 2개월마다 약을 지으러 갔다. 그러나 전국적인 한파가 온 날, 그날도 보약을 지으러 가야 하는 날이었다. 추운 날 아침에 병원에 전화를 하니 와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동안 보약을 먹다가 끊기면 효과가 사라질까 봐 복용을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갑자기 너무 피로하고 괴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울컥 화까지 났다. ‘재방문인데 계속 이렇게 줄을 서서 타야 하나?’ 그래서 그날 보약을 지으러 가지 않았고. 우리는 보약에 의존하는 일을 포기했다. 남들이 보면 참 간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선생님의 처방 중 맞는 게 있었다면, 내가 욱하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그날 늦게까지 늦은 주말 늦잠을 즐겼다. 아빠 명함도 줬는데 미안해.
선생님은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욱하는 성격도 고치라고 하셨다. 그게 아이를 갖는 것과 연관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아버지가 고모들에게 내가 난임이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회사에서도 난임인 것을 들키는 것 그것이 매우 싫었다. 임신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타인이 그 주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이 1차로 싫었고, 2차로는 내가 ‘난임’ 임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사실은 커다란 문제도 아닌데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대학교 때 가발인 ‘하이모’의 마케팅 기획서를 써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조사한 자료 중 대머리인 많은 사람들이 가발을 쓰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대머리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라는 이유를 본 적이 있다. (※당시 자료를 봤던 것 같은데 지금은 찾기가 어렵네요. 찾으면 첨부하겠습니다) 자신이 ‘탈모’ 임을 인정하는 것에 마음에 저항이 있는 것이다. 나도 내가 난임이라는 것과, 그 사실을 남들이 알게 되는 게 싫었다. 하지만 보약을 먹은 반년 이후로도 우리 부부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후 난임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 병원에 방문하는 것 부터가 인정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