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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ug 12. 2019

사고 잊어버림

샀던 물건을 슬슬 잊어버린다 이사온 집은 제법 사용한 태가 난다

혼자 살기 시작한지 약 3개월이 흘렀다. 

나는 친구가 준 과일이 잘 변색되지 않는다는 봉투를 찾으려고 찬장을 열었으나 없었다. 

싱크대 아래 찬장에도 햄과 참치 뿐이었다. 

쓰레기봉투들을 모아 둔 옷장 안 서랍을 열어보았지만 그곳에도 없었다. 

변색되지 않는다는 그 봉투를 한 무대기를 주고 갔는데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찬장과 서랍을 다 열고 스툴을 끌어다가 높은곳으로 올라가서 방을 보았다. 

찬장 안 쌓여진 라면 밑에 깔개처럼 변색방지봉투가 깔려있었다. 

봉투를 꺼내다가 씻어놓은 청포도를 넣었다. 

이 집에고작 3개월 밖에 살지 않았는데 

그래도 사람이 살았다고 물건의 위치를 잊어 버린다. 

이제 이 집은 제법 사용한 태가 난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집주인은 풀옵션이라고 했다. 

냉장고 싱크대가 다 있고 옷장이 있고 침대도 있다. 그런데도 채울 것이 많았다. 

인간이 사는데 이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구나 싶었다. 


처음 밥을 먹기 위해서는 

전기밥솥, 쌀, 주걱, 밥그릇, 숟가락, 젓가락 등이 필요했다. 

밥만 먹기 위해서도 이런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살 것은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자잘하게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필요한 것들을 사들이고 조립하는 데에 시간을 들였다. 

그 뒤에는 사들인 것들을 더 편하게 쓰기 위한 것을 샀다.  

그 후에는 그것을 치장하기 위해 또 다른 것들을 사는 시간을 들였다. 


이제 나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린다. 

없어서 꽉꽉 채워 넣다가,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린다. 


신기하게도 6평밖에 안 되는 비좁은 원룸인데 

물건이 하나 없어지면 거대한 미로 같은 느낌이 든다. 


방 탈출을 하기 위해 힌트를 찾는 사람들처럼, 물건을 찾아 헤매인다. 

의자를 이용해 높은곳에서 방을 보고, 핸드폰 플래쉬를 이용해 미아가 된 물건을 수색하고 구출해 낸다.

물건을 사용했을 때, 그때의 내마음을 다시 유추하고 풀어낸다. 

드디어 찾았다. 이제 탈출할 수 있어. 

이제 나도 청포도를 봉투에 옮겨 담을 수 있다고!



정기적으로 착착 진행되는 무엇인가를 보면 나는 기분이 좋다. 

통장에서 꼬박꼬박 자동이체 되는 돈, 

어젯밤에 내놓은 쓰레기가 그 다음 요일이면 사라진 것을 보면 

시계가 째깍째깍, 삶은 척척 제시간에 돌아가는 느낌이 들며 기분이 온화하다. 


내가 가진 일종의 강박이다. 

그래서 최초의 나는 내 생활을 규칙하고 잘 정리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때가 되면 빨래를 했고, 화장실 청소를 했고, 방바닥을 자주 닦았다. 


가끔씩 놀고 더럽혔지만 금방 치웠고 

그 또한 일정한 규율에 의해 반복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집은 벌써 내게 과일봉투를 숨기는 기만을 범했다. 


딱 알맞게 채워 넣었다고 생각했다. 

테트리스처럼 균일한 평형의 삶과 일정한 속도로 유지되는 감정을 원했는데 곳곳에 오류가 있다. 


청소를 끝냈다고 땀을 닦아내면서 머리카락은 떨어지고. 

맛있게 먹기 위해 준비한 음식은 곧 음식쓰레기가 된다. 

물건이 없어 사들이다 보면 물건이 쌓여 어지러움을 만든다.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준비한 것들도 곧바로 행복이 아닌 무언가로 탈바꿈 한다. 


자취를 하기 전 자취하는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매일 나가서 놀고 밤에 늦게 들어오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이럴 수 있을 줄 알았다. 

글도 쓰고 영화도 마음껏 보고 말이다. 

그런데 밤에 늦게 나가서 노는 것은 무섭고 불안하고,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내가 혼자 산다고 해서 친구들의 시간이 나지는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몰입이 되면 즐겁지만 여전히 책상까지 가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충족이 된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까 라는 생각도 든다. 

빨래를 해서, 널고, 개고 또다시 입고 다시 빨다 보면 집안일을 하기 위해 나왔나? 

라는 생각도 든다. 계획한대로 모든 것이 되지 않으며 그대로 된다고 해도 좋을 것도 없다.


그러면 나는 그만 사야 할까. 사대고 잊어버리는 과정은 그저 괴롭기만 한가? 

내가 생각한 온전한 행복은 없을지언정, 딸을 부르는 부모님의 살갑고 귀찮은 소리 대신에, 

스피커에서 노래와 팟캐스트 방송이 BGM으로 주어지는 생활을 얻었다. 


나의 사고 잊어버림을 진지하게 고찰하게 되었다. 


또한 홀로가 되면서 나는 어떤 소음이 나를 방해한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소음이 나를 방해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정렬이 된 삶이 아니라도, 혼돈의 구렁텅이에서 

가 이리저리 튀어다니며 무게를 맞추고 균형을 잡으려 애썼구나를 알았다. 


끊임없이 사고,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벌려놓고, 치우고, 버린다. 


나는 계획적인 편이었는데 그 계획에는 치우는 것과 잊어버림, 

실패와 머뭇거림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계획에는 실패를 포함해야해, 잊어버림도 계획해야 해 슬슬 그렇게 궤도를 수정 한다. 

잃어버림도 잊어버림도 어쩔 수 없다. 


막으려고 버둥거려봤자 괴로울 뿐이겠지, 

그저 이제 막 돋아나는 구멍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이렇게 되었구나. 

구멍이 생겼구나 라고 곱씹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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