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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Dec 15. 2020

올해, 결혼한 이야기-2

이탈리아의 진한 에스프레소 대신 제주도를 기다리며 참아냈다

올해 결혼한 이야기-2


그녀와 그는 결혼을 하기 위해 한정식집을 빌렸다. 

이제 하나하나 준비를 해가야 했다. 그녀는 식순과 도와줄 사람 등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셀프 웨딩 사회’ ‘셀프 웨딩 식순’등을 검색했다. 

남들이 다한다는 결혼의 순서는 대략 아래와 같았다. 


<화촉점화-신랑 입장-신부 입장-혼인서약-성혼선언-주례사-행진>


우선 화촉점화부터 문제였다. 화촉점화, 어머니들이 촛불에 불을 밝히는 것은 보았지만, 

이걸 막상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녀는 그전까지는 화촉점화의 뜻도 알아본 적이 없었다. 

내용을 찾아보니 부모님의 결합, 신랑 신부의 앞날에 불을 밝혀주는 등 좋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식당에서 화촉점화를 하는 것도 안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식순에서 화촉점화를 뺐다. 


신랑 신부 입장은 동시에 하기로 했다. 그것도, 신부가 신랑의 왼쪽에 서야 한단다. 

신랑이 누군가 신부를 채가려고 할 때 (??) 오른손으로 막아야 한다나 뭐다나. 그런

 이야기를 찾아보면서, 다 비슷해 보이는 결혼 식순에도 이런저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걸 알게 되었다.

혼인서약과 그들의 성혼선언문을 읽어주는 건 그녀의 아버지가 해 주시기로 했다. 

이렇게 식순을 짜고 혼인 서약서까지 무슨 내용으로 할지 쓰고 나니, 그들은 결혼이 실감이 났다. 


구성을 짜 뒀어도 그 안에 필요한 준비물을 생각하는 것은 또 일이었다. 

축의금 봉투, 사인펜, 식당 바깥쪽에 둘 포토테이블, 그리고 축의금 명부, 혼주 장갑 등… 

그녀는 도대체 결혼하는데 이렇게 뭐가 다 필요한 걸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혼식 당일에 또다시 놓치는 게 있을까 두려워서 

그냥 혼주 용품 세트로 아예 달라고 업체에 말했다. 

물건 용품 외에도 BGM을 선곡해야 했다. 한정식집이니까 너무 요란스러운 건 말고, 

그렇다고 취향과 너무 다르거나 조용한 것도 말고.. 서칭과 리스닝의 연속으로 음원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들이 결혼을 하는 곳은 식당이었지만, 시어머님의 ‘저 병풍이 거슬린다’라는 말이 자꾸 맴돌았다. 

그들은 식장을 꾸미는 업체에 연락하여, 간단한 꽃과 버진로드 장식을 하기로 했다. 

너무 식당 느낌이 나는 병풍도 치우기로 했다. 

결혼의 형식은 유사하게 갖추되, 장소와 형식을 간소하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제 아마도 이런 결혼이 점점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연애를 할 때 그녀에게 한 말이 있었다. 

“너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노는 거 좋아하잖아, 결혼할 때도 친한 친구한테 사회 부탁해.” 

하긴 사회를 늘 남자만 보란 법은 없었다. 

그녀는 8살 때부터,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같이 땅따먹기를 하고 

서로의 연애 횟수와 그만큼의 흑역사를 알고 있는 한 친구를 대번에 떠올렸다. 

친구는 172cm로 키가 크고 긴 생머리에 날씬해서 정장을 입고 사회를 보면 정말 멋질 것 같았다. 

친구는 사회를 흔쾌히 수락했고, 사회비를 준다는 말은 재차 거절하면서 

밥 한 끼 술 한잔에 사회를 승낙했다. 

그녀와 친구는 사회 내용을 논의하면서 준비했다. 그 외에도 축가, 사회자 등을 주변인들로 섭외했다.


장소와, 준비물, 식순, 도와줄 사람들에 대한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났다. 

마지막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누구를 노아의 방주에 태울 것이냐, 누구를 초대하냐였다. 

그녀는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 회사 분들 등 가까운 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50명 이상의 집합 금지 상태, 신랑의 손님과 절반의 인원을 나눈다면 

각자에게 할당된 손님은 25명이었다. 이 중 친척들을 제외하면 가까운 사람이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그녀는 부모님께,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게 가능하냐고 여쭈었고, 

어머니는 친척을 조금만 부를 테니 그렇게 하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나누어 초대하는 게 쉽지 않았다. 


모임도 권장하지 않으니 청첩장을 주려고 부르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청첩장을 주지 않는 것도 미안한 일이었다. 

여러 모임들 중 몇 개만 선택하여 친구를 부르려니 그것도 애매했다. 

그녀는 결국 사회를 봐주는 친구 외에는 지인을 초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초대 인원이 한정적이라는 장문의 카톡을 썼다 지웠다 하다가 주변인들에게 보냈다. 


대부분이 ‘이해한다.’라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은 ‘아쉽다’라고 말했다. 

‘예쁜 모습을 친구들 앞에서도 보여주고 축하도 받고 싶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분 들은 초대하지 못하니까 청첩장도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추후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왜 청첩장도 안주냐고 핀잔을 들으며 축의 봉투만 받게 된다. 

가족끼리 하니 부담감을 가질까 봐 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는데 또 섭섭하다는 말을 들었다. 

방주에 태울 이들을 선별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주님도 정말 힘드셨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예쁜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마음처럼, 

무엇하나 실수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남의 결혼 입장 영상을 몇 번이고 보며 머릿속으로 어떻게 구현될까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코로나 19 때문에 결혼을 이렇게 하는 게 아쉽기도’ 하다가, 또 언젠가는 

‘행복한 일인데 긍정적인 마음을 갖자’라는 다짐으로 혼자 열심히 마음의 균형을 맞추었다. 


그녀는 평소 노는 것을 좋아했기에 결혼 전에 여기저기 놀러 가고 여행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대 코로나 시대는 그녀를 정숙하게 만들었다. 어디든 가서 놀 아재 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결혼을 준비했다. 결혼 다음은 출산, 출산을 하게 되면 양육 등등 

그녀는 결혼도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는 했다. 

두세 번 ‘아 너무 빠르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다가,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2번이나 밀린 결혼을 생각하니 진저리가 쳐져서 ‘빨리 끝내자!’라는 다짐을 했다. 


선물같이 남아있는 신혼여행도, 결혼 준비를 할 수 있는 위안이 되었다. 

올해 초 그들은 신혼여행지를 이탈리아로 표를 끊어놨었다. 

자유로 갈까 패키지로 갈까 심각하게 고민한 게 무색하게도, 그 표는 당연히 환불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카페가 있다는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를 음미한다는 기대는 와장창 깨졌다. 

그러나 제주도 바닷가를 보며 해물뚝배기를 찐하게 들이켤 생각을 해도 기분이 좋았다. 

‘신혼여행’

지금밖에 가지 못하는 꿀과 같은 허니문을 생각하며 그녀는 차차 마음의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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