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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Feb 07. 2021

중고 : 중고라서 더욱 좋은 것들

중고가 주는 다정한 덤이 있다.


우리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던 중고 선물


친구가 틴케이스를 주었다. 민트색으로 되어있는 화려한 케이스에는 웅장한 성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티백하나가 빠져 9개의 티백이 들어있었다.

“티백 하나는 내가 먹었는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딱히 나를 위해 산 건 아니고, 다른 티세트를 샀는데 받은 사은품이라고 했다. 


티는 달큰한 배향이 나는 후발효티라고 했다. 여러 차가 섞인 블렌딩 티였다. 친구는 하나를 먹어봤는데 상큼한 맛이 나서 본인보다는 네 취향에 맞는 것 같아서 가져왔다고 했다. 

“예전에 너 그 카페 갔을 때 블렌딩티 맛있다고 그랬었잖아.”  


쓰던 것, 또는 한번 쓴 것을 가져다주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먼저 상대방이 떠올라야 한다. 내가 그런 상쾌하고 달콤한 맛을 먹고 좋아한다고 표현한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그런 취향을 알고 공유해 줄 수 있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 또한 한번 쓴 제품을 개의치 않고 받아 줄 수 있는 서로의 관계에 대한 확신도 있어야 한다. 그건 그다지 친하지 않은 관계 사이에서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베스트 제품’을 사서 선물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둘의 만남이 결정된 날 그걸 잊지 않고 가져오는 일.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파우치와 늘 가지고 다니는 짐을 챙기면서 내 선물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쇼핑백 하나를 드는 건 한 손의 부자유를 감내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티백 하나가 빠진 티세트가, 온전한 새 제품보다 고마웠다. 우리의 관계를 떠올려보게 하는 선물은, 중고라서 더욱 다정했다.


의미부여가 남았던 중고 선물       

                                                  

“이거 내 선물이에요. 인디언 인형이에요. 나는 이걸 보면 용기가 나더라고.” 


내 자리에 있는 인디언 인형은 퇴사를 한 대리님이 주고 간 선물이다. 그녀의 책상에 놓여있던 작은 인형이 내 자리로 이사했다. 대리님은 항상 밝고 당당하던 사람으로 회사에 에너지를 주던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구조조정으로 떠나게 되어 마음이 심란했었다. 그녀가 주고 간 선물은 아직도 내 책상에 있다. 불합리한 업무 지시로 타 팀 담당자와 싸워야 할 때, 인형이 들고 있는 손도끼를 그 자리를 향해 겨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걸리기만 해 봐 죽었어.’ 어려운 일들이 많아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할 때, 인형을 명상하듯 앉힌다. ‘용기를 내 잘할 수 있어.’ 인디언 인형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퇴사한 대리님의 태도가 당당하고 용기 있었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회사의 일에는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던 그녀. 맡은 바 일에는 두려움보다는 소신 있게 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던 그녀. 그런 그녀의 태도가 선물하고 간 물건에도 남아, 내게 힘을 주었다. 


그녀에게도 내게도 의미가 있는 물건이어서 더욱 뜻 깊은 선물이었다.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거나, 그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던 ‘의미’가 있는 물건은 중고라서 더욱 뜻깊다.


배려심이 담긴 중고 거래


*---캠 사용법                                       

1) USB 선을 노트북에 연결합니다.

2) 캠을 노트북의 카메라 위쪽에 부착합니다.

3) 노트북 캠을 켠 뒤, 설정에서 ‘---캠’ 연결을 선택합니다.

*캠도 화질이 좋지만, 밝은 조명을 사용하시고 렌즈를 한번 닦아주시면 더 잘 나와요~

저도 영상 찍을 때 많은 도움받은 제품입니다. 면접 잘 보시기 바랍니다!^^


동생은 당근 마켓에서 웹캠을 거래했다. 그 웹캠에 저런 포스트잇 쪽지가 붙어있었다고 한다. 동생은 1차 서류 합격 후 면접을 보기로 했는데, 코로나 19 시국을 이유로 비대면 면접을 본다고 했다. 동생은 캠으로 면접을 보니, 화면빨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웹캠을 구매해서 도움을 받아보려고 했다. 한 번 쓸 것 비싸게 살 필요가 없으니 당근 마켓으로 거래를 한 것이다. 판매자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며 ‘면접 볼 때 쓸 껀데 잘 나올 것 같냐?’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판매자는 영상을 찍을 때 쓰던 제품이라 문제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둘은 스타벅스 앞에서 만나 어색한 거래를 마쳤고, 내 동생은 집에 가서 저런 쪽지를 발견했다.


판매자는 한 번 써봤기에 동생에게 추천을 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저런 쪽지도 남겨주었다. 동생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면접 응원을 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저렴하게 구매해서 좋은데 배려에 더욱 감동했다고 한다. 물론 온라인으로 새 제품을 살 수도 있고, 후기를 찾아볼 수 도 있다. 하지만 구매자의 사정을 고려한 친절한 설명과 응원의 메시지는 동네 중고거래에서만 만날 수 있는 친절한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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