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 중고라서 더욱 좋은 것들

중고가 주는 다정한 덤이 있다.

by 오지은
2021-02-07 19;13;45.PNG


우리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던 중고 선물


친구가 틴케이스를 주었다. 민트색으로 되어있는 화려한 케이스에는 웅장한 성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티백하나가 빠져 9개의 티백이 들어있었다.

“티백 하나는 내가 먹었는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딱히 나를 위해 산 건 아니고, 다른 티세트를 샀는데 받은 사은품이라고 했다.


티는 달큰한 배향이 나는 후발효티라고 했다. 여러 차가 섞인 블렌딩 티였다. 친구는 하나를 먹어봤는데 상큼한 맛이 나서 본인보다는 네 취향에 맞는 것 같아서 가져왔다고 했다.

“예전에 너 그 카페 갔을 때 블렌딩티 맛있다고 그랬었잖아.”


쓰던 것, 또는 한번 쓴 것을 가져다주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먼저 상대방이 떠올라야 한다. 내가 그런 상쾌하고 달콤한 맛을 먹고 좋아한다고 표현한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그런 취향을 알고 공유해 줄 수 있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 또한 한번 쓴 제품을 개의치 않고 받아 줄 수 있는 서로의 관계에 대한 확신도 있어야 한다. 그건 그다지 친하지 않은 관계 사이에서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베스트 제품’을 사서 선물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둘의 만남이 결정된 날 그걸 잊지 않고 가져오는 일.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파우치와 늘 가지고 다니는 짐을 챙기면서 내 선물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쇼핑백 하나를 드는 건 한 손의 부자유를 감내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티백 하나가 빠진 티세트가, 온전한 새 제품보다 고마웠다. 우리의 관계를 떠올려보게 하는 선물은, 중고라서 더욱 다정했다.


의미부여가 남았던 중고 선물


“이거 내 선물이에요. 인디언 인형이에요. 나는 이걸 보면 용기가 나더라고.”


내 자리에 있는 인디언 인형은 퇴사를 한 대리님이 주고 간 선물이다. 그녀의 책상에 놓여있던 작은 인형이 내 자리로 이사했다. 대리님은 항상 밝고 당당하던 사람으로 회사에 에너지를 주던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구조조정으로 떠나게 되어 마음이 심란했었다. 그녀가 주고 간 선물은 아직도 내 책상에 있다. 불합리한 업무 지시로 타 팀 담당자와 싸워야 할 때, 인형이 들고 있는 손도끼를 그 자리를 향해 겨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걸리기만 해 봐 죽었어.’ 어려운 일들이 많아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할 때, 인형을 명상하듯 앉힌다. ‘용기를 내 잘할 수 있어.’ 인디언 인형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퇴사한 대리님의 태도가 당당하고 용기 있었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회사의 일에는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던 그녀. 맡은 바 일에는 두려움보다는 소신 있게 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던 그녀. 그런 그녀의 태도가 선물하고 간 물건에도 남아, 내게 힘을 주었다.


그녀에게도 내게도 의미가 있는 물건이어서 더욱 뜻 깊은 선물이었다.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거나, 그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던 ‘의미’가 있는 물건은 중고라서 더욱 뜻깊다.


배려심이 담긴 중고 거래


*---캠 사용법

1) USB 선을 노트북에 연결합니다.

2) 캠을 노트북의 카메라 위쪽에 부착합니다.

3) 노트북 캠을 켠 뒤, 설정에서 ‘---캠’ 연결을 선택합니다.

*캠도 화질이 좋지만, 밝은 조명을 사용하시고 렌즈를 한번 닦아주시면 더 잘 나와요~

저도 영상 찍을 때 많은 도움받은 제품입니다. 면접 잘 보시기 바랍니다!^^


동생은 당근 마켓에서 웹캠을 거래했다. 그 웹캠에 저런 포스트잇 쪽지가 붙어있었다고 한다. 동생은 1차 서류 합격 후 면접을 보기로 했는데, 코로나 19 시국을 이유로 비대면 면접을 본다고 했다. 동생은 캠으로 면접을 보니, 화면빨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웹캠을 구매해서 도움을 받아보려고 했다. 한 번 쓸 것 비싸게 살 필요가 없으니 당근 마켓으로 거래를 한 것이다. 판매자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며 ‘면접 볼 때 쓸 껀데 잘 나올 것 같냐?’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판매자는 영상을 찍을 때 쓰던 제품이라 문제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둘은 스타벅스 앞에서 만나 어색한 거래를 마쳤고, 내 동생은 집에 가서 저런 쪽지를 발견했다.


판매자는 한 번 써봤기에 동생에게 추천을 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저런 쪽지도 남겨주었다. 동생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면접 응원을 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저렴하게 구매해서 좋은데 배려에 더욱 감동했다고 한다. 물론 온라인으로 새 제품을 살 수도 있고, 후기를 찾아볼 수 도 있다. 하지만 구매자의 사정을 고려한 친절한 설명과 응원의 메시지는 동네 중고거래에서만 만날 수 있는 친절한 덤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술자리에서 친구가 '너 변했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