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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Mar 07. 2021

미용실을 고르듯, 기분 좋고 두렵게

머리를 하러 가는 건, 매우 기분이 좋고, 실로 두려운 일이다.



미용실을 고르듯, 기분 좋고 두렵게


머리를 하러 가는 건, 매우 기분이 좋고, 실로 두려운 일이다. 특히나, 평소 가지 않는 곳을 발굴해야 할 때가 그렇다. 우선,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남이 해주는 게 기분이 좋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도 고달프지만, 머리 냄새 걱정에 온전하지 않은 정신으로 머리를 감는다. 드라이가 덜 되어 곱슬대는 머리카락을 보고, 주변인들이 이상히 볼까 봐 드라이기로 한 올 한 올 주욱 피고 쑤욱 감는다. 스스로 해야 하는 이 고행을 남이 해준다는 건 매우 즐겁다. 게다가, 아이가 놀다가 던져 놓은 슬라임 같은 내 드라이 실력에 비하면 디자이너 선생님의 드라이는 잘 빚어놓은 빗살무늬 토기 수준이다. 반면 두려움도 있다. 선생님과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아야 하고, 가격이 비싸 지갑이 털리고, 머리가 마음에 안 들까 봐, 소중한 주말의 3시간을 허비할까 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무서워지기도 한다. 이에 심사숙고하여 미용실을 고른다.  


이 동네에 이사 온 후 미용실을 갈 일이 생겼다. 열심히 후기를 뒤지고 가격도 보며 갈 곳을 골랐다. 다행히도, 새로 간 곳은 친절하고, 말도 잘 걸지 않아 어색한 대화를 피할 수 있었다. 평소 읽던 책을 읽으며 머리를 편안하게 했다. 머리도 마음에 들었다. 온라인으로 예약 후 방문으로 20% 할인도 받을 수 있었다. 흡족스럽게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계산대에 ‘멤버십 적립 시 30% 할인’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멤버십은 일정 단위의 금액을 충전해 놓고 쓴 돈을 차감해나가는 형태였다. 멤버십으로 가입하면 내가 할인받는 20%보다 10% 더 저렴한 금액이었다. 나는 미용실에 또 올 의사가 있었으므로 멤버십을 하겠다고 하고 충전을 해서 30% 할인을 받았다.


이전에 다니던 미용실도 멤버십 할인이 있었다. 그때 디자이너는 첫 방문부터 멤버십 혜택을 말해주었다. 그 직원과는 달리, 우리 동네의 디자이너는 멤버십을 할 때 한 번에 큰 금액을 내기에 부담이 될 까 봐, 권유를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머리 손상이나, 클리닉 등에 대해서 받으라고 제안을 하듯, 다양한 혜택을 설명을 해 줬어도 좋았을 것 같다. 


이전 회사에서, 짬을 내 중국어 학원에 다녔다. 그때 함께 회사에 다니던 동료가 돈도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학원에 다니냐고 물었다. 그때 ‘내일 배움 카드’를 발급받아 나라의 지원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고, 학원비가 카드로 일정 금액 나갔다. 때문에 시간은 없어도, 돈은 정부에서 많이 지원해준다고 답했다. 동료는 그 카드를 몰랐는데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신청해 봐야겠다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후 그 친구는 카드를 신청했고 나보다 더 많은 강의를 들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덕분에 혜택을 봤다면서 커피도 샀다. 지식의 공유가 좋은 계기가 되자 뿌듯했다. 이후 ‘내일 배움 카드’ ‘중소기업 청년 소득세 감면’등을 주변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녔다. 이제는 ‘조언’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혜택’이라고 느끼면 그 내용을 공유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이지안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장애를 가진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 돈이 없어서 요양원에서도 쫓겨났다. 이에 박동훈은 자식이 없고 장애가 있으면 정부의 지원으로 요양원에 무료로 모실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때 이지안은 지금껏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은 놀라는 표정을 보인다. 그녀는 지금껏 그런 방법을 알려줄 어른들이 곁에 없었던 것이다. 돈이 없어 할머니를 침대에 숨겨서 도망쳐 나온 나날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후회가 될까. 그 모든 고생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던 것이다. 몰라서 받지 못했으면 물었으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구석진 곳에 있는 사람은 빛을 찾아 나서기 이전에, 빛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 있다. 이지안이 몰랐던 좋은 정부의 지원책을 알려준 박동훈처럼, 꼭 필요한 말은 전해주는 게 다정함이다. 


타인에게 지식을 공유하는 건, 매우 기분이 좋고, 실로 두려운 일이다. 상대방이 좋은 리액션을 하며 일상에 적용할 수도 있고, 꼰대 소리를 들으며 이미지가 ‘라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래도 강의비를 아낀 친구가 있고, 연말정산에서 환급을 더 받은 친구도 있다. 오늘도 내뱉기 전 불확실한 관계 손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지랖’ 일지 ‘혜택 제공’ 일지를 저울질해본다. 멤버십 일거라 믿으며 복부에 힘을 주고 “저기.. 그건..”이라고 서두를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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