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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Mar 10. 2021

첫 시도는, 시식용도 괜찮다

나는 시식용으로 내놓은 첫 시도를 이렇게 망상하고, 합리화한다.


첫 시도는, 시식용도 괜찮다.


“지금, 이 강의는 시식용이야.”


강의 제안이 들어왔었다. 그런데 보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껏 강의를 해보지도 않았지만, 열정페이와 경력 없음이라는 사유로 무보수가 매겨진 것 같았다. 우선은 슬퍼했다. 일단은 제의를 듣고 ‘아 네. 네..’라고 말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여러 번 강의를 해본 남편에게 얘기를 해보니 경험을 근거로 우선 해보자고 했다. 꼰대 같다고 생각했지만, 처음이 중요한 거라는 생각으로 시도를 해봤다. 첫 강의는 꽤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한번 해보니 다음에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 B는, 맛있는 디저트를 판매하는 게 꿈이다. 원데이 클래스도 여러 번 들었고, 관련 자격증도 땄다. 장비도 전부 구매했다. 디저트 하나만큼은 기갈나게 예쁘게 만들어 올린다. SNS상에 올려진 화려한 디저트만 보면 그녀는 한 올의 치밀함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우아한 느낌이다. 실제의 B는 노가리도 시켰냐며 머리도 안 감고 호프집에 나타나는 친구다. 나는 친구의 특성을 심사숙고하여 생일에 드라이 샴푸(물 없이도 감을 수 있는 샴푸)를 선물로 줬다. 그녀는 이를 두고두고 기뻐했다. 여하튼, 인스타의 노력이 빛을 발해 B에게 많은 구매 문의 DM이 왔다. 하지만 B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직 개시를 못하고 있다. 준비가 안됐다는 둥, 만들 시간이 없다는 둥… 나는 B에게 차라리 50% 가격에 팔아보라고 했다. 그녀가 첫 고객에게 실망을 안길까 봐 시작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렴한 가격 또는 시식용으로 증정해보는 게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시식용을 먹고 불만을 늘어놓거나, 한탄을 늘어놓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가지고 있는 재능을 오픈하려면 시식용으로 나눠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남이 후려치거나, 내가 시장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스스로 베풀어준다고 생각하는 거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인 연회장, 코로나 19로 다들 마스크를 하고 있지만, 눈빛만큼은 살아있다. 버건디의 커튼이 걷히고, B의 작품이자, 헌신인 디저트가 드러난다. 사람들이 외친다. “저요! 저요!” 치열한 경매 열기 속 가장 고가를 부른 이에게 B의 걸작이 낙찰된다. 그리고 그녀는 마스크로 가려져 입매가 보이지는 않지만, 인자한 눈웃음으로 충분히 여유를 드러내며 말한다. “그냥 드릴게요, 가지세요.” 나는 시식용으로 내놓은 첫 시도를 이렇게 망상하고, 합리화한다.


그 정도 상상은 자유이지 않을까, 좀 뻔뻔해져야 뭐든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신 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시식 물량을 까는 거다. 내가 깔아 둔 시식용 강의, 시식용 음식, 시식용 글, 시식용 작품을 나는 시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다. 


물론 그걸 계속할 수는 없다.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두둔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준비가 안되었다고 시작을 빼거나, 정당한 값을 받지 못하는 상태라고 여겨진다면, 우선 그렇게 시식을 깔며 발을 담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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