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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Feb 27. 2023

2/27

졸업이다.

어쩌다 회사라는 곳에서 일도 하게 되고, 지금껏 두달간 하던 글쓰기 과외 커리큘럼도 마쳤다. 내가 항상 그렇듯 순탄하게 끝나진 않았다. 시간 약속에 둔감한 나는 결국 마지막 과제를 이틀이나 늦게 제출해서 선생님으로부터 ‘이건 정도가 넘었다.’라는 말을 들었고, 회사에서는 문자 보내는 것까지 선배한테 물어보다가 선배로부터 ‘여기 회사에요. 애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참 시작도, 끝도 순탄한 게 없다. 나라는 인간은.


그런데 내일은 졸업식이다. 나는 이렇게나 아직 애새끼에 불과한데 내일은 학교를 졸업한다. 지금껏 나는 브런치에다가, 어른이 되었네 뭐네 하고 글을 써왔다. 그런 것에 비해 졸업을 앞둔 지금의 나. 초라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그런데 요즘은 내 스스로를 뒤돌아보며 거꾸로 생각하게 된다. 지금껏 내가 되었다고, 혹은 되고자 했던 ‘어른’은 가짜 어른이 아니었을까 하며.


요근래 내가 가장 많이 해야 했던 말은 이거였다. “~까지 해서 드리겠습니다”, “~해내겠습니다.” 물론 이 말을 뱉는 순간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아주 극단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열두시까지 야근한 뒤에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함에도 밤과 새벽을 투자한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결국 귀가길에 밀려오는 피곤함과 약간의 나태함으로 나는 내가 뱉은 말을 포기해버린다.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어떻게 해… 그렇게까지 안해도 해가가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난 이미 열심히 살고있다. 과할 정도로. 그런데 그렇다고 진짜 어른이라 말할 수 있는가. 가끔은 이루지도 못할 말을 뱉어놓음으로써 타인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나. 진짜 어른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럼 극단적으로 노력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진짜 어른은 아무래도 (자신이 질 수 있는 만큼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내가 질 수 있는 책임을 최대한 정확히 측정해 전달하는 것이 어른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어른이 이 사회에서 자신의 신뢰를 유지해가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나. 학생 때부터 그랬다. 혼나기가 무서워, 무시받는 것이 두려워서 내가 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성취와 노력을 약속했다. 스스로에게도, 누구에게도. 그러다보니 열심히는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 지친다. 그리고 자책한다. 왜냐하면, 난 열심히는 했어도 목표 미달이거든. 막연히 완벽해지려다보니 지킬 수 없는 악속을 상대방에게 한다. 물론 그렇게 해서 난 완벽했던 적도 없고, 오히려 작은 약속들을 많이도 어겼다. 가장 단순하게 시간 약속.


이제는 정말 그러면 안될 것 같다. 누가 내게 앞으로 무엇을 언제까지 할 수 있냐. 라고 물으면 내 체력이나, 시간, 쏟아부을 수 있는 노력의 양까지 고려해서 내가 지킬 수 있는 ‘기한’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마 진짜 어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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