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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Oct 05. 2020

뉴욕에서 밤새기

난 그때 미쳤었죠...

지난 가을 미국 코네티컷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보냈다.


코네티컷을 선택한 것은 뉴욕시랑 가까워서였다. 기차 타고 2시간이면 갈 수 있으니 뉴욕을 자주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위에 매사추세츠, 아래가 바로 뉴욕주다.

정말 자주 갔다. 우울하면 기차타고 뉴욕, 심심하면 뉴욕이었다.

뉴욕. 돈이 없어도 타임 스퀘어에만 들어서면 이상하게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세계에서 가장 밝은 밤을 품었고, 뉴욕 주민이 아닌 사람들로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다.

미국 상륙 첫 날의 풍경.

돈이 많이 없어서, 또 먹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뉴욕 가서는 그저 걸었다.

가끔 재즈바에 들어가거나 큰 맘 먹고 브로드에이 뮤지컬을 보거나. 미술관을 가거나.


도착하자 먹은 셱셱버거 이때 시간이 아마 오후 네시였는 듯.

어떤 날은 그랬다. 뉴욕에 도착했는데 해는 이미 어슷어슷 지고 있었다.

원래 일곱시 차를 타고 학교로 갈 생각이었는데 또 돌아 가기가 싫었다.

호텔, 에어비앤비는 이미 예약을 할 수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밤이나 새보자. 

미친 짓이었다. 미국은 정말 위험한 곳이니까. (맨하탄은 그나마 안전한 곳이라고는 한다지만...)




남부맨하탄 Greenwich Village

늦은 밤까지 사람이 가장 많은 곳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어디가 있을까 어디가 있을까 하다가 찾아낸 곳이 바로 

Greenwich village였다. Birdland, Mezzlow 등 유명 재즈바들과 술집들이 즐비해있다.

저녁 즈음에 가면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뉴요커(혹은 관광객)들이 야외 테라스에서 저녁을 먹는다. 

(이 사람들도, 나도 몇달 뒤 코로나가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사람들의 거리는 50cm였다.)

Madison Square Garden은 NBA나 가수들 공연장 / 항상 증기가 굴뚝으로 나오는 뉴욕의 도로.
9.11 Memorial Pools. 관광지가 되버린 듯한 추모공간. 여전한 충격.


안전한(?!) 뉴욕 밤샘 플랜은 이거였다.

새벽까지 하는 재즈바에서 시간을 2시정도까지 보내다가

네시까지 여는 술집 구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해는 여섯시 쯤에 뜰 거 같고, 그 시간까지 길거리에 사람들이 좀 있을테니

버텨보자!


참고로 뉴욕의 주소는 크게 AvenueStreet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맨하탄은 블록으로 구획되어 있어 수평선과 수직선이 지도상 명확하게 보인다. Avenue는 지도상 맨하탄 땅에 수직선으로 표현된다. 1st Avenue, 2nd Avenue 등의 숫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이스트사이드에서 웨스트사이드로) 갈수록 커진다. Street은 수평선이다. 남부 맨하탄을 시작으로 북부맨하탄까지 1부터 160 이상은 있는 듯하다.  월스트리트는 10st Street이하인 경우가 많고, 할렘은 130 부터로 기억한다.

pat metheny 진짜 볼 수 있을 줄.. 

재즈바의 끝물(오전 1시 정도)은 무명락밴드의 락음악이었고(심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곡을 연주했는데도..!)

길거리엔 자기들끼리 노는 사람들이었다.(백인, 아시안은 거의 없고 흑인, 히스패닉 계열 분들이 많으셨다.)

문제는 네시부터다. 해는 여섯시면 뜰텐데 그 두시간 동안 난 어딜 가있어야 하나.

갈 곳이 없었다. 되는대로 걸었다. 술집 주변은 사람들이 북적여서 그나마 안전했다.

그들도 다 자기 집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면

뭔가 되게 있어보이는 흑백사진...

새벽은 오갈데 없는 이들(나를 포함?)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뉴욕 쥐들도 이상하게 더 많이 보였다.

약 혹은 술에 취해 비틀대는 사람들, 

걷지 못하는 사람들,

무리지어 다니는 양xx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위험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어째 내가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는 게 

이 사람들을 보고싶어서였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바닥에서 한시간 걸어다닌 내가 하도 대견해서 시간을 찍었다.


뉴욕엔 이런 피자들이 많은데 크기도 크고, 맛있다. 미국 사람들은 해장으로 이런 피자를 먹는 듯?






아까 사둔 후드티 깊숙이 내 모습을 감췄다. 여성 혼자 밤길을 걷는 게 위험하다는 것을 한국에서는 체감해 본 적이 없는데 여긴 그랬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 지 모르겠다.

해가 뜨기를 바라며, 졸린 눈 억지로 뜨면서 이리저리 걸었다.

1달러짜리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으면서 시간을 좀 보냈던 거 같다.







까만 밤이 푸른 어스름으로 바뀔 때 나왔다.

맥도날드는 여전히 오픈을 하지 않았지만

하늘에 빛이 들어온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정말 긴 밤이었다.


금융맨들이 출근하기도 전인 아침 여섯시의 Wall Street.


지하철 첫 차를 타고 Wall Street를 갔다. 본능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경비 아저씨가 물청소를 하고 계셨다. 아저씨와 나말고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째 그 건물과 대리석 바닥을 보니 긴장이 사-악 풀렸다.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소녀상을 보고 사진을 몇방 찍었다. 

지하철 20분만 타면 맨해튼의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맨 하단부.




좁은 면적의 건물들이 빼곡히 서있고 바닥은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월가의 상징인 불소를 보았다. 긴 줄을 서지 않고 불소상을 만지며 '돈복'을 빌었다.


건물이 너무 좁고 높다.


조금 졸음이 밀려왔다.

일찍부터 여는 스타벅스가 있었다. (미국은, 특히 뉴욕은, 스타벅스 외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많이 없기 때문에, 스타벅스가 엄~~~~~~~~~~~청나게 많다.)

가서 양심상 비싼 커피를 시켰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앉아서 잤다. 한두시간을 그렇게 잤나?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에 깼다. 어느새 시간은 10시 즈음이 되었고 관광객? 들로 카페가 조금 북적였다. 

잠에서 깨니 피로가 삭 가셨다. 그럼 뭔가.

걸어야 한다. 카페를 박차고 나갔다.


월가에 아침이었다. 어딜 가지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역으로 걸었다. 

강을 끼고  아침부터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강 건너가 브루클린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All the Stars - Kendrick Lamar 노래를 듣고 있었다.

이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뉴욕!! 

(뉴욕뽕 제대로 맞았다..)





문득 생각이 났다.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 나오는 그 다리를 가자.

지금이야 그곳이 Dumbo라는 곳임을 알지만 그때는 그 영화 로케로 찍고 갔다.






영화에 나오는 그 다리는 건물 사이에서 보이는 맨하탄 다리였다. 

관광객이 상당히 많이 모여있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도 꽤 괜찮은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다지 좋아한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영화에 나온 그 한 장면만은 너무도 예쁘고 영화 속 뉴욕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서 기억에 남아있었다. 혼자서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이 정도 찍으면 되겠지 싶은 마음이 들어 등을 돌려도 미련이 남을까 봐 다시

돌아 봤다. 

Once upon a time in America와 무한도전 뉴욕편에서 나왔던 그곳 아닌가..


브루클린은 맨하탄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더 허름했다. 

맨하탄의 집값이 너무 비싸서 브루클린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들었다.

지하철 역에 내리자마자 한 성범죄자의 지명수배지가 보였다. 흐윽...

맨하탄과 확연한 차이가 있는 브루클린. 더 자유로운 분위기는 있었음.



이런 곳에..




그렇게 힘든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배도 고프고 그래서... 피자가 먹고싶어서...

Little Italy라는 곳으로 향했다. 


Little Italy는 19세기부터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지역이다. 소호, 차이나타운과 바로 붙어 있다. Wall Street에서 조금만 위로가면 있다. 이탈리안 음식점들이 즐비해있다. 다만, 가격이 좀 쎄다..ㅎ




이날 마침 Little Italy에서는 이런 작은 축제가 있었다. / 보드카 피자. 보드카 소스를 쓴다고 한다.

소호랑 바로 붙어 있어서 그 주변 가게 구경도 좀 했다. 그런데 너무 체력이 달려.. 오후 두세시쯤 결국 학교행 기차를 탔다.

Grand Central 역.

나는 뉴욕에 총 3주 정도를 체류했고, 시카고, LA, 시애틀 등 미국의 여러 도시는 다 가봤다. 물론 난 열성적인 여행가는 아니라서 늦잠을 자고, 어기적 어기적 여행지 거리를 걷는 게 다였다. 유명 관광지, 그 지역의 음식 등 모든 건 와중에 다 해보는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6개월의 교환학기를 마치고, 거의 1년 전이 되어가는 그 때를 돌이켜보면 뭘 했던 건 기억이 안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다만 여행지에서 다른 여행지로 옮겨가는 기차,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 기억에 그렇게 남는다. 아침 여덟시에 뉴욕에서 여덟시간 기차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갔던 일, 거의 매주 학교에서 버스 - 기차 - 기차 장장 세 시간의 지루했던 그 여정이 유독 떠오른다. 물론 코네티컷 기차에서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코네티컷의 풍경도 한 몫 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루함은 지워지고 여행지로 향하는 그 설레임의 감정만이 남은 것이다. 


그 다음은 여행지에서 개고생한 일. 뉴욕에서 밤을 샌다는 발상도 사실 그런 의도도 있었다. 어떻게든 기억에 남기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다시는 못할 일 아닌가. 돈은 없어도 깡은 있는 대학생이었다. 총 맞으면 운이 나쁜거지하고 죽으면(?!) 그만. 내가 더 나이가 들면 다신 못할 일이라는 것을 알아서 객기 하나 부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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